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교 Oct 23. 2021

나의 영어 표류기

나의 영어 표류기

희교     


아주 잠깐 영어생활권 나라에 가서 공부를 했다. 우리말과는 달리 높낮이뿐아니라 리듬이 좋아 일찌감치 사랑에 빠졌지만 특히 영국영어는 트트거리는 발음에 매료돼 미국영어에 길들어 있던 발음을 일부러 고치기까지 하며 열심히 공부했다.     


국내에서 영국문화원 어학원에 다니며 나름 높은 레벨에 배정받았기에 공부하러 나갈 때 영어에 어지간히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공항에서 간단히 통과한 입국심사로는 마음을 놓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그 다음 날 내 기숙사 방에서 여실히 느끼고야 말았으니 그건 방 청소를 해 주는 청소부와의 아침 대화에서였다.     


뭐라고 묻는데 뭐라고 하는지 몰라서 대여섯 번을 되물었다. 구어에서 편하게 응? 뭐라고 했어? 다시 말해 줄래? 를 쏘리?로도 하면 되는데 입으로 나오지를 않아서 구식 영어 '파든?'을 연신 날려 댔다. 잉글랜드 중부 지방 사투리로 아침인사를 묻는 젊은 여성의 영어를 한참 지나서야 알아들었다. 바야흐로 내 영어가 현실을 직시하는 순간이었다. 아 보통 일이 아니겠는 걸.     


책 <작가들의 정원> 중에서 종이에 펜과 수채 2020 리디아


학기 시작 사흘 전에야 도착한 나는 사정 모르고 널널하게 학기 초를 맞이하고 있었다. 무슨 말이냐면 기숙사 중앙 로비를 지나가다가 공중전화에서 경상도 사투리로 통화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계단 중간쯤 서서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려 한국에서 온 분이냐고 물어 겨우 한 사람과 텄다. 그 언니는 캠브리지에서 파트타이머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학연수 하다 그곳과 여기 두 군데 입학 허가를 받아 고르다 여기로 왔다는데 시골 캠퍼스에 적응이 안 된다며 힘들다고 캠브리지의 친구들과 우리나라의 가족들에게 전화로 하소연 하던 참이었던 터. 강의 가는 시간 이외에는 우리말 할 수 있는 언니와 우리말 나누며 함께 공부하고 맛난 밥 해먹으며 놀멍놀멍 하고 있었던 거다. 

     

나와 같은 전공인데다가 같은 기숙사라서 가까워지기 시작한 일본인 친구 말을 듣고서야 알았다. 다들 석 달이나 여섯 달 정도 어학 연수를 하고 본 학기에 들어왔음을. 아시아인들은 거의 다 미리 와서 영국 문화나 학교 운영 체계에 익숙해지는 기간을 가진다는 것을. 나만 학기 시작 직전 날라와서 아는 사람도 없고 아는 곳도 없어 만날 사람도 갈 곳도 없음을.

     

그렇게 중앙 로비에서 만난 언니와 수다를 떨다가 한국 선배 한 분과도 만나게 되는데 영국 온 지 여러 해 되고 발이 넓던 그 선배가 어느 날 외국인 친구들과 게임 하러 가는데 같이 가겠냐고 해서 따라갔다가 더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말을 하지 않고 주어진 단어를 동작이나 손짓으로 설명해 맞추는 게임이었는데 내가 받은 첫 단어가 'mind'였다. 아직도 도대체 'mind'를 어떻게 그림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가끔 생각해 볼 만큼 막막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다들 저마다 소리쳐 답을 말하는 시끄러움 속에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영어를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환경에 놓이며 급격한 혼란을 경험하고 있었다.       


라틴계 말을 쓰는 나라에서 온 학생들은 금방 영어를 따라잡았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온 학생 하나를 학기 초에 만나고 넉 달쯤 지난 후 만났더니 영어가 많이 늘어 있어 놀란 기억이 있다. 베이스를 깔고 온 이들에게는 당해 낼 재간이 없는 게 언어임을 그때 알았다. 나름 열심히 했다고 자부하던 사람이지만 가서 만난 현실 언어의 벽은 참 깨기 힘들었다.      


어찌어찌 시간이 흘러 첫 학기 열 주가 지나가고 두 번째 학기가 시작된 즈음 설 명절을 맞아 한인들끼리 모여 잔치를 했다. 학교의 체육관을 대여해 체육대회를 진행하는데 우리가 빌린 시간이 되어 웅성웅성거릴 때 관리를 맡은 파트타이머 학생이 와서 우리 측 대표가 누구냐고 묻더니 해당 장소 사용 규칙에 대해 알려주었다. 빠르게 들리는 영어에 대표였던 선배는 아이의 운동화 끈을 묶어 주는 동시에 다 알아듣고는 척척 대답했다. 신세계를 보았다 싶었다. 최대한 집중해야만 들리며 받아적어 가며 천천히 말해 달라고 자주 밝혀야 하는 실력인 나였기에 말하는 사람 입을 보지도 않고 듣기만 하고 다 알아들은 선배의 영어가 한없이 위대해 보였다.     

그 비슷한 시기에 겪은 일도 있었기에 더 그랬는지 모를 일이다. 다행히 첫 학기가 끝나 과제 제출을 다 하고 크리스마스 방학을 맞아 쉬는데 노트북 자판이 이상했다. 에세이 숙제하던 어느 밤 물컵을 들어올리다 살짝 컵이 흔들려 물 몇 방울이 튄 일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때문인지 날이 갈수록 작동되지 않는 키가 하나둘 늘어가더니 급기야 자판 전체가 먹통이 되고 말았다. 한국 유학생들을 수소문해서 다행히 내 노트북과 같은 회사 제품을 쓰며 지난 여름 고장이 나서 수리센터에 갖다 맡긴 경험이 있는 선배 내외를 찾았다. 고맙게도 그분들이 시골에 있는 수리 센터까지 동행해 주었다.     


차로 한 시간 반쯤을 달려 도착했을 때 사실 나는 좀 피로했다. 만일 센터 기사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듣고 중요한 말을 놓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서 가는 내내 긴장했기에. 상담에 들어가서 천천히 말해 달라고 여러 차례 밝혔지만 똑같은 말을 몇 번이나 더 해야 했다. 모국어 사용자들은 자연스럽게 원래 말하는 속도로 돌아가고 돌아갔으므로. 노트북을 맡겨 놓으면 두 주 정도 걸릴 것이며 택배로 배송될 것이라는 

안내를 초긴장해서 듣고 되물어 받아적은 거 보여주며 재차 확인 받고서야 왔다. 노트북이 없으니 나름 한가하게 보낼 수 있는 휴식시간이기도 했지만 내가 들은 게 틀리면 어쩌지 하며 계속 걱정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영어로 말하기의 시작은 고1 수학여행 때로 경주에서 만난 외국인 부부에게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고 물었던 일이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돌아서서 바로 알았다, 아 틀렸구나!를. “How do you think about Korea?”로 물었는데 “What do you think about Korea?”로 물었어야 했구나!를. 이후로는 그 질문은 틀리지 않는다. 한 번 틀린 문장이라서 실수가 먼저 떠올라 한 번 더 재빠르게 읊조려 보게 되므로.     


그런가 하면 영국문화원에서 만났던 한 강사는 단어 'Oxford' 발음으로 나를 당황시킨 적이 있어 이 역시 아직도 가끔 발음해 본다, 남몰래. '악스퍼드' 같이 발음되도록 1음절에 강세가 와야 하는데 18명이나 되는 반 수강생이 다 쳐다보는 가운데 발음을 몇 번이나 따라하라는 강사 앞에서는 도무지 제대로 나오지를 않았다. 지금도 낯이 뜨거워지며 나지막히 발음해 보곤 한다. 그때 그 강의실이기를 바라면서.     


기숙사에서 만난 여러 나라의 친구들이 쓰는 영어를 알아 듣기란 또 숙달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었다. 특히 사투리였는지 다른 언어 베이스가 있던 사람인지 그리도 안 들리던 학생이 있었는데 그리스인이었다. 그 학생이 흥분하면 더 잘 안 들려서 같이 이야기 나누기가 보통 어렵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을 짓고 있는데 그 친구가 흥분한 채 와서는 그때 부엌에 있던 다른 친구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워낙 그 친구 말이 듣기가 힘들어 끼어들어 봐야 소득이 없음을 알기에 내 저녁이나 계속 지으며 안 듣는 척하며 듣고 있었는데 잘 안 들리니 말하는 모드로만 파악하건대 무언가 신나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도 그저 씨익 웃었던 모양이다. 그랬더니 대화하던 상대방에게 그리스 여학생이 눈물을 훔치며 지니(당시 나의 영어 이름이다)가 이 얘기가 웃기는 이야긴 줄 아나 보다면서 혀를 차던 부끄러운 일도 있었다.     


영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여태 살았다. 좋아하는 것을 일로 택하지 않는 게 좋다는 여러 경험자들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자극을 준 영화도 책도 많았지만 영어는 누가 뭐래도 앞서 적은 대로 안주하지 않도록 해 준 분들이 있어서 쉬지 않고 공부할 수 있었다. 다른 일을 면서 들려오는 영어를 알아듣고 싶었고 나가서 한국말 하지 않고 지내며 영어로 꿈을 꾸고도 싶었다. 실제로 석 달 정도를 한국사람 못 만나서 영어만 쓰며 지낼 때 영어로 꿈을 꾸고는 영어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걸 경험하기도 했다. 그 학교 컴퓨터 시스템 상 영어로밖에 작성 불가하여 친구에게 영어로 써서 보낸 이메일이 친구에게서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냐는 말까지 들을 만큼 영어를 잘 구사했던 순간도 있었으니까.     


그런 좋은 시간을 한 번 겪은 사람과 안 겪은 사람의 인생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도전을 해 볼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음은 우리가 받은 축복일 테니, 영어를 잘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진 분이라면 지금이라도 공부 하시라고 용기를 드리고 싶다. 당연히 어렵지만 오랜 시간 영어를 듣고 쓰며 자기를 한 발짝 나아가게 하는 소중한 시간을 누리는 데 늦은 때라고는 없을 것이므로.


브론테 자매들로 유명한 마을 Haworth 골목 종이에 펜과 수채 2021 리디아


작가의 이전글 다정함의 각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