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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교 Oct 07. 2021

다정함의 각도

내가 그리는 이유

다정한 사람들이 좋았다. 무엇을 다정함이라 하는지도 모르면서. 내 눈을 지그시 보며 잘 지내냐고 물어봐 주는 사람이 좋았고 밥 먹었냐고 물어보는 사람이면 나를 사랑한다고 여겼다.


쓸데없이 다정하기만 한 사람들에게 쏠려 마음이 다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아마도 다정함을 무기로 내게 다가오진 않았을 테니 내 마음의 쏠림은 내 탓이지 그 사람들 잘못은 아니리라.


'다정함을 무기로'라고 써놓고 보니 내게는 어쩌면 '이 작자가 감히 다정함을 무기로 내게 다가왔어!' 라고 생각한 적이 틀림없이 있었나 보다. 다정해 놓고 가차없이 떠나간 결과적으로는 안 다정한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한테 상처를 많이 받는 부류라고 치고 말았었는데 방금은 그건 아닌가 보다로 생각이 바뀐다. 다만 어리숙해서 많은 사람과 잘 지내고 싶었던 어린 마음이 낳은 어줍잖은 '인싸지망생'의 실수였다고 치면 되려나. 두루두루 잘 지내고자 나를 속이면서까지 얄팍하기 그지없는 희망을 품었었다.


이제는 누구에게 함부로 다정해지지 않는다. 다정한 사람이 다가오면 일단 더듬이를 곧추 세운다. 거리를 두기도 하고 말을 편하게 안 하기도 한다. 내게 다가오는 사람이라고 무조건 고마워하지도 않는다 절대.


다정한 사람들에게 의심 하나 없이 다정했던 지난 날들로 족하다. 안 다정한 분들도 다시 한 번 보는 다정한 마음을 갖추려고 한다. 매정해 보이지만 나를 소중히 여길 분일 수도 있으므로. 내 다정한 마음이 내 마음을 받는 상대에게도 소중히 다뤄지기를 바라면서. 내 마음을 소중히 여기고 내 다정함을 다정함으로 받아 주리만큼  주파수가 맞는 사람이기를 바라면서.


오랜 친구들의 다정함과 시끌벅적함을 다룬 드라마 <디어마이프렌드> 중에서 2021 펜화 Lydia


다정하게 굴면 상대편에서도 다정하리라는 희망은 터무니 없다는 것을 외로웠던 시절에 알았다. 제 손으로는 밥 못 해먹는 남자유학생들을 밥을 함께 먹자고  부르기도 하며 지내서 내 컴퓨터 자판이 고장났을 때 도움을 받을 줄 알았던 순진한 나. 그 선배는 그쪽 물가나 지리도 훨씬 잘 알고 있었는데도 도와 달라는 부탁에 일언반구 대답하지 않았다. 그 후로 다시는 그 선배들에게 밥을 같이 먹자고 청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대학 때는 연애에 열성이던 친구가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쁘고 싶어서 부단히 밥을 굶고 애쓰며 가뭄에 콩나게 만난 주말 누군가의 집에서 놀게 되면 누워서 벽에 다리를 들어올려 놓고 손톱에 매니큐어를 발라 대던.


세상 만사에 호기심이 많고 시원시원하고 다정하게 말하던. 책도 많이 읽어 늘 얘기 나누는 게 즐겁던이 친구는 시어른들 없을 때 방문한 내게 제 손 방금 씻고 핸드크림 발랐다며 나더러 시어른 위해 저녁 차릴 쌀을 씻으라고 했다. 소중히 다뤄진 존재들은 소중한 친구에게 그리하지 않는다. 동성 친구를 액세서리로만 대한다 싶더니 결국엔 이런 식이었다.


아마도 나는 그 친구가 외모에 신경쓰며 예뻐지고자 하는 취향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연락이 다시 왔을 때 반가움에 그 친구에게 달려가려 했다. 지금은 친구가 그때와 똑같지는 않을 거라는 인생 선배들의 말에 잠깐 헷갈렸지만 우연히 친구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나서 바로 내 몸에 안 맞는 옷을 너무 오래 갖고 있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반가워서 달려가는 내 마음을 한 번 붙잡으며 어울리지 않는 옷을 더 골라내 버려야겠다 싶었다. 말만 다정하다 싶었던 사람들을 두엇 더 정리했다. 나를 나로 사랑하지 않고 다정함을 무기로 다가와서 나를 이용하려 했던 친구들을.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이 내게 치는 철벽은 사실 아무 상관이 없지 않나. 마찬가지로 가깝다 여기는 친구들에게 도구로 여겨지는  일만큼 기분 더러운 일도 없다. 여자사람친구를 괜찮은 이로 두는 일은 쉬이 되는 일이 아닐진대. 친구 하나가 아쉬운 나이가 되었지만 다정함의 각도가 나와 통하는 이를 놔둘 거다, 친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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