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들어 자주 드는 비유 하나..
예전에는 지방에서 가장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이 지방에서의 행사는 이 가수가 다 도맡아 뛰고 행사비도 벌 수 있었으니까. 이런 사람이 100개의 도시에 100명이 있었다고 치자. 계산하기 편하게 다들 1만큼 벌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가정한다.
그런데 TV가 보급되고 고속도로가 깔리고 KTX가 깔리고 나니 지방에서 조금 잘 하는 가수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서울에서 아니 한국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이 온 지방을 돌며 행사 기회를 다 가져가 버렸다. 예전에 100명이 각자 1만큼 나눠 가지던 100 만큼의 가치가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한 사람에게 90만큼 집중되어 버리고 나머지 99명이 10을 나눠가지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인터넷이 보급되고 국가 간 연결도 더 편리해지다 보니 이제는 여러 나라를 합쳐 그 지역(예를 들어 아시아)에서 제일 잘하는 1명의 가수가 99900만큼의 가치를 가져가고 99999명이 100을 나눠먹을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비유가 매우 극단적이긴 하지만 빅뱅(BigBang) 같은 아이돌 그룹이 이미 이런 예에 해당할 수 있고, 다양한 국가를 넘나들며 일할 수 있는 인재(금융, 디자인, 엔지니어링, 컨텐츠 등등 분야에서)도 이런 기회를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극단적으로 뛰어난’ 인재들에게는 앞으로 다가올 세상은 더욱 살만해질 것 같다.
기업들에 있어서도 이런 기회는 다름 아닌데 '극단적으로 뛰어난 기업'이 엄청난 속도로 팽창해서 시장을 다 집어삼키는 일도 앞으로는 더 많아질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극단적으로 뛰어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 기업들을 우리들은 스타트업이라 부른다.
언뜻 보면 희망과 기회가 넘치는 아름다운 세상처럼 보이는데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건 언어적, 지리적 장벽, 제도적 보호 그리고 교통의 비합리성 등에 기대야만 간신히 버틸 수 있는 상당수(혹은 대다수)의 사람들이다.
이게 내가 이해하고 있는 양극화 추세의 기본 로직이다. 경제학적으로 ‘효율’적인, 각종 차별이 사라진, 공평한 시대에 결국은 더 극단적으로 불평등한 결과를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 지금 이 시대의 아이러니 아닐까 싶다.
그럼 여기서 몇 가지 질문. 첫 번째, 여러분은 ‘극단적으로 뛰어난' 인재인가? 두 번째, 단순히 교육만으로 ‘극단적으로 뛰어난' 인재가 될 수 있는 건가? 세 번째, 그럼 이 세상은 더욱 살만해지고 있는 건가?
솔직히 고민 그리고 또 고민해도 나도 어떻게 이 문제를 받아들여야 할지(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주변의 더 현명하신 분들과 고민을 나눠보고자 끄적여 본다. 내 로직이 크게 잘못되었다면 차라리 더 마음은 편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