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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에달리 Jul 11. 2021

누구를 위한 카풀인가

출근도 함께 해야 한다니, 몸은 편한, 마음은 불편한 카풀

오늘도 출근을 한다. 혼자 하는 출근은 아니지만.


역시 출근은 혼자 하는 것이 좋다. 회사 사람은 회사에서만, 9 to 6만 만나는 것도 과하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그 밖의 시간에는 어떠한 접촉도 없는 것이 좋다.


그런데 출근을 함께한다니 집 밖을 나서자마자 근무태세 긴급 돌입이다.

처음 지방으로 회사를 왔을 때는 차를 살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수도권과 달리 차는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었다. 22살의 어린 여선배도 차를 끌고 출퇴근을 했다.

그럴 만도 한 게, 대중교통은 1시간 걸리는 거리를 운전을 하면 20분도 안되어서 도착할 만큼 교통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는 정이 있었다. 출퇴근길에 신입사원들을 태워주는 정. 물론 지금은 규모도 커지고 키보드와 같은 대체수단이 있어서 그 정은 희석되었지만 라테는 하늘 같은 선배님들이 출퇴근길을 책임져 주셨다.

그 정이 어찌나 끈끈했던지, 퇴근길에 걸어서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나를 아무도 내버려 두지 못하셨다. 모든 사람들이 창문을 내리고 "어디까지 가니? 태워줄까" 물어보셨고 나는 늘 "집까지 가요, 괜찮아요" 하며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정말 혼자 갈 수 있었다.


그나마 퇴근길은 손사래를 칠 수 있지만 아침 카풀은 위험하다.

지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나는 이미 나와 있는데 10분만 기다려 달라고 하시면 혹시나 늦을까 불안에 떨기도 했다. 민낯도 불가능하다.

어떤 얘기를 해 드려야 출근길이 덜 어색할까 고민스럽기도 했다. 다리는 편한데 손바닥에는 땀이 배어 나왔다. 혹시나 업무 관련 얘기를 꺼내실 때면 동공이 흔들려버렸다.

하지만 절대 대중교통을 타고 갈 수는 없었다. 버스는 시간을 안 지키고 택시는 승차거부를 하였으니까.


결국 나도 차를 샀고 이제는 다른 사람을 태워 출근을 한다.

함께하는 출근길. 에어컨은 제대로 나오는지, 냄새는 나지 않는지, 노래 선곡은 잘 되었는지 신경을 세우고 있다.

오늘의 아침대화 주제는 무겁지 않게, 날씨 얘기를 하고 운전 마스터인 것처럼 부드럽게 운전해 드려야지.

거친 운전에 놀랠까 봐 조금 늦어도 안전하게 가려고 하면 지각하겠다, 한 소리를 듣는다.

다시 액셀을 밟고 차선을 바꾸면 운전이 거칠다고 또 뭐라고 하는데, 사실 한 귀로 흘려서 잘 기억은 안 난다. 정시에 태워주는 게 어디냐.


하지만 단언컨대, 카풀은 함께 타고 가는 지하철보다는 견딜만하다.


앗, 오늘 갑자기 출근길 지하철에서 회사 사람을 만난 당신, 절대 눈 마주치지 마세요. 이어폰 끼고 졸면서 가세요.

몸도 마음도 불편한 출근길이 될 수 있으니 끝까지 스마트폰만 보셔야 해요. 자칫 잘못하면 끝까지 함께 가게 되니까요.

혹시 후배님을 만나셨다면 복지 차원에서 모른 척 다음 칸으로 옮겨주시길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어차피 서서 가는데 다리는 아프더라도 마음은 평안하게 가야죠.


가끔은 출근길에도 근무를 하면서,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출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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