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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에달리 Jul 14. 2023

유치한 게 좋아!

누군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뭐냐고 묻는다면, 

고백하자면, 어린 시절 가장 좋아하던 이야기는 바로 ‘소공녀’이다.


소공녀는 유복한 아버지 덕에 기숙학교에서 공주처럼 지내는 예쁘고 당찬 소녀 세라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녀는 불의의 사고로 공주님에서 하녀로 신분이 바뀌게 되었지만 다른 친구들의 시중을 들면서도 비참함보다는 의연하게 버텼고 결국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고고하고 우아하게 자신의 격을 지키는 소녀 세라가 좋았다. 예쁘고 부자인데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당황하거나 위축되지 않았다. 기숙사에서 위풍당당한 공주였을 때는 나도 그렇게 멋진 소녀이고 싶었다. 위기를 겪고 비참해지는 모습을 엿볼 때는 심장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태생부터 예쁜 여자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권선징악이 명확해서 자극적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부터는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고 선뜻 대답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 후로 숨긴 취향은 바로 ‘소녀시대’이다. 예쁜 언니들이 불러주는 세상의 명랑함은 들어도 들어도 지겹지가 않았다. 사랑을 준다며 왕사탕을 흔들거나, 양갈래를 하고 박수를 치는 모습도 좋았다. 

그렇지만 중고등학생들은 다 그렇듯 나만 아는 명곡이 있어야 했다. 다 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머리모양을 하고 있는 우리들의 정체성은 음악으로 결정되곤 하였다. 어려운 힙합, 팝송 정도는 추천해 줘야 했다. 멜론 top 10만 듣는 ‘막귀’는 유치한 취향이었다.


웃음과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교훈 꽉 채운 만화영화나 예쁜 여자주인공이 친구들과의 우정을 통해 세상을 바꿔나가는 하이틴 영화 역시 고3 수험생 시절을 든든히 지켜준 비밀스러운 플레이리스트였다.




그리고 20살. 요즘 재미있게 본 책이 뭐야?라고 하면 주제 사라마구의 ‘죽음의 중지’라고 답변하는 나에게 한 친구가 말했다.

 나는 그런 거 보다 드라마가 더 재미있는데?

내심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애들도 아니고, 그렇게 대놓고 얘기하는 건 품위 없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내친김에 풍부한 취향을 자랑하고 싶었다. '나는 요새 mika 노래 많이 들어, 너는 어때?'

그 당시의 mika는 아는 사람만 아는, 그야말로 흙 속의 진주였다. 나는 그런 가수를 열심히 찾았었고 말이다.

친구는 말했다. ‘나는 틴탑. ‘향수 뿌리지 마’. 좋아해’


놀랐다. 어떻게 그런 노래를 좋아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나에게 친구는 똑똑히 말했다.

 잘생겼잖아! 너는 어떻게 안 좋아할 수가 있어?


대답하는 친구에게서 빛이 났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얘기하는 그녀가 소녀시대보다 멋있어 보였다.

맞다. 나는 예쁘고 밝은 것을 좋아했고 친구는 잘생기고 멋있는 것을 좋아했다.


이제 누군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뭐냐고 물으면 싱긋 웃으며 대답할 수 있다.


‘저는 걸그룹 노래요. 밝은 걸로. 오마이걸, 러블리즈, 그리고 요새는 뉴진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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