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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에달리 Nov 10. 2023

엄지발톱이 빠졌다

살갗처럼 연했던 발톱은 단단히 여물었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고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불확실성과 함께 일상의 균형을 깨뜨리면서까지 가까워지는 사람은 참 크게 다가오게 된다.



작년 말, 한 친구와 급격히 가까워졌다. 우리는 많이 걸었고 또 걸음만큼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 Instagram: annn_photographer, 출처 OGQ

영 모르는 사이에서 우연히 한 번, 그리고 한참 뒤 갸웃하며 또 한 번.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아니, 친구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누구도 먼저 친구하자. 하고 얘기한 적은 없었다. 우리는 귀가 쨍 할 만큼 추운 겨울에 입김을 불어가며 걷고 또 걸었다. 겨울이 지나면 함께 해 볼만한 것들을 추려보았다.


 


당시 나는 일주일에 하루는 달리기 수업을 갔다. 풀마라톤 대비를 위해 체력과 속도를 높이는 수업이었다. 걷고 뛰었다. 달리기 수업을 위해 스키장갑을 끼고 바지를 두 겹씩 입었다. 본격적인 수업 전, 온도를 높이기 위해 3km씩 조깅은 필수였다.


 

작년 겨울은 참 길었다. 3월의 하늘이 여전히 희멀건했다. 찬 공기가 가득했다. 겨울이 지나지 않았지만 콧물을 흘려가며 또 많이 걸었다.



 

© amutiomi, 출처 Unsplash

그리고 봄. 마라톤 대회를 치렀다.


42.195라는 거리를, 4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렸다. 이 소식을 친구에게 전해주고 싶었지만 아마도 그즈음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전할 곳이 없었다.


 

30km가 넘어가면서 그만 뒤돌고 싶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포기하고 싶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갈 수 있는 길은 앞에 놓여진 바로 그 길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완주를 해 냈다고 말하고 싶었다.


 

© lucassankey, 출처 Unsplash


42km중,  30km가 넘어가는 순간 딱 맞춰신은 러닝화가 발톱을 툭툭 건드렸다. 처음에는 신경이 거슬릴 정도만, 40km가 넘어가면서는 한 발을 내 딛을 때마다 발톱이 들리는 느낌까지 함께.


 

그러나 발바닥까지의 물집과 두 엄지발톱의 피멍까지 함께한 완주의 영광은 전할 곳이 없었다.


나로써는 그저 스트레칭과 회복을 하며 무엇이든간에 이겨내는 법을 배웠을 뿐이었다.



그리고 7월. 골이 깊으면 산이 높아진다고 했던가, 머리가 띵할 정도의 오랜 추위가 무색할만큼 끈적한 여름이 찾아왔다. 가만히만 있어도 주욱 땀이 떨어지는 그런 무더위가 왔다.


© dreamsoftheoceans, 출처 Unsplash




그리고 어제, 그토록 달랑거리며 거슬렸던 두 엄지발톱이 다 빠졌다.


혹시 세균이 퍼질 수도 있기에 병원에 가서 소독을 하고 항생제를 받아왔다. 여린 발톱 끝부분이 아렸는데 이제는 완전히 말끔해졌다.


전하고 싶은데 전할 순 없지만 말이다. 발톱 속에는 또 다른 새하얀 발톱이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시 11월.

작년 이맘때가 다가오고 있고 살갗처럼 연했던 발톱은 단단히 여물었다.


여전히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전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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