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생화를 보는 기쁨을 알게 되어 여러 가지 꽃을 가꾸고 있다. 몇 주 전에는 튤립을 들였는데, 봉오리에 꼿꼿하게 오므라든 꽃잎이 참 단정해 보였다. 화분에 키우는 꽃과 달리 생화에는 번거로운 규칙이 있었는데, 바로 매일매일 차가운 물로 갈아준 뒤 꽃대를 사선으로 잘라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덕분에 나 역시 온 하루를 버티다가 탈래탈래 집으로 들어와 밥 한 술 뜨기 전에 튤립의 싱싱함을 위하여 바지런히 기분을 맞춰주었다.
너무 정성 들인 탓일까, 아니면 그저 때가 된 것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웅크린 꽃잎들이 활짝 피기 시작했고 너무나도 흐드러진 잎들은 며칠을 못 가 뚝 떨어져 버렸다. 요 며칠간은 아쉬운 마음으로 떨어진 잎들을 움키고, 찬 물로 갈아주고, 꽃 대를 비스듬히 잘라주었다. 모든 속을 보여줄 만큼 만개하다 못해 시들 거려 섭섭했는데, 알고 보니 꽃망울을 오래 감상하기 위해서는 사늘한 실내에서 키워주어야 했다.
봄을 알리는 튤립은 기온이 높으면 금세 꽃봉오리가 벌어지고 시들어버린다. 꽃이 올라왔다면 오히려 더욱 춥고 볕이 들지 않는 곳에서 최대한 봉오리가 벌어지는 것을 늦춰야 한다. 부족함 없이 잘 돌봐 주려 했다가 너무 섧게 튤립을 개화시켜 버렸다.
안락한 마음으로 이르게 피고 진, 봄에 피지 못한 튤립을 보며 혹시 나도 사늘함을 멀리하고 따뜻한 매일매일을 염원하고 있진 않나 경각심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