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는 어느새 어스름이 내리고 저는 여전히 레미 할머니를 생각하고 있어요. 오늘 아침에 <레미 할머니의 서랍>을 읽었는데, 이렇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는 오랜만이라 가슴이 콩콩 뛰었거든요. 얼른 어린이 작가님들과 나누고 싶었고요. 이 책 속에서 우리는 어떤 단어를 찾아 문장을 쓰고 생각을 쌓아야 하나, 실마리를 찾아서 온종일 레미 할머니의 주변을 맴맴 돕니다.
책장을 넘기면 홀로 사는 레미 할머니의 집이 보여요. 단정하고 포근하죠. 방 안으로 들어가면 레미 할머니의 서랍장이 가장 먼저 눈에 띌 거예요. 맨 아래 서랍에서 가끔 작은 소리가 들리는데 바로 빈 상자, 빈 병, 자투리 실이나 천들이 내는 목소리예요. 레미 할머니는 제 역할을 마치고 남은 것들을 버리지 않고 모아 둡니다. 다 쓸모가 있거든요. 병에 가득 차 있던 사탕이 바닥나면, 사탕을 담았던 유리병을 서랍 속에 잘 두었다가 딸기잼을 만들었을 때 다시 꺼내죠. 그렇게 사탕병은 잼병이, 설탕병은 피클병이, 꽃다발을 묶었던 리본은 아기 고양이의 나비넥타이가 됩니다.
다 쓴 것을 서랍 안에 두었다가 때가 되면 서랍에서 꺼내 다시 쓰는 레미 할머니.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는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어요. 쓸모 뒤에 ‘있음’과 ‘없음’이라니. 우리는 이 단어들을 칼처럼 손에 쥐고서 세계를 반으로 뚝 잘라 버려요. 눈에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가리지 않고요. 사람까지도 그렇게 나누는걸요. 쓸모 있는 사람과 쓸모없는 사람. ‘있음’과 ‘없음’을 쓰는 순간 이 세상에 사람은 단 두 부류가 되는 거예요. 혹시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닌지 두려울 때 없었나요? 저는 있는데. ‘없음’이 두려운 이유는, 없음은 없음만을 부르는 단어이기 때문이죠. 쓸모없음은, 가치 없음 소용없음 쓸데없음 그래서 존재의 자리 없음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레미 할머니의 유리병과 리본을 보세요. 레미 할머니는 쓸모없는 것에게 자리를 주었어요. 유리병과 리본은 서랍에서 쓸모를 기다리죠. 자리를 만들어 준다면, 쓸모없음은 쓸모를 품고 있는 상태가 되는 거예요.
‘비우다’와 ‘채우다’라는 단어도 생각났어요. 설탕병에 설탕이 비워지지 않고 꽃다발 리본이 풀리지 않는다면 유리병과 리본은 늘 설탕병과 꽃다발 리본일 거예요. 설탕이 사라지고 꽃다발이 시들어야 유리병과 리본은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어요. 텅 비어 있을 때 오히려 가능성은 채워지네요.
‘본질’이라는 단어는 어떤가요? 유리병에 설탕을 채웠을 때는 설탕병이었지만 피클을 채웠을 때는 피클병이 되어요.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어요. 유리병의 본질. 무언가를 ‘담는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아요. 무엇을 얼마나 가지고 어떤 이름으로 불리며 사는지는 삶의 전부가 아니에요. 나의 본질을 알고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탕과 피클은 언젠가 사라지지만 병은 사라지지 않아요.
하지만 이 단어들만으로는 <레미 할머니의 서랍>을 읽고 가슴이 콩콩 뛰었던 이유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어요. 책 속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인물은 작은 갈색 상자예요. 하지만 상자의 목소리는 사실 레미 할머니의 것이 아닐까, 하고 짐작해봅니다. 빈 상자, 빈 깡통, 빈 유리병, 자투리 천과 리본은 모두 레미 할머니의 한때이기도 하잖아요. 작은 갈색 상자에는 할머니 딸이 선물한 초콜릿이 들어 있었고 할머니는 한 알 한 알이 다 보석 같다고 말했어요. 상자는 할머니의 달콤한 순간을 쓰고 남은 것이나 다름없어요. 어느 날 오래 비어 있던 상자가 반지를 담게 되는데 이 반지는 레오 할아버지가 레미 할머니에게 마음을 고백하려고 준비한 선물이에요. 그렇다면 상자는 할머니의 설레는 순간을 미리 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은 서랍 속에서 들려오는 즐거운 속삭임이에요.
“다음엔 뭐가 될까?”
빈 병들과 빈 상자들처럼 레미 할머니도, 이다음에 무엇이 될까 기대하다가 이다음에 무엇이 되어가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저와 저의 시어머니와 같이 보낸 어느 오후가 떠올랐지요. 저의 시어머니도 레미 할머니처럼 할머니이고, 서랍을 가지고 있어요.
“아니 세상에, 개도 심장이 콩콩 뛰드라?”
낮잠을 자고 나온 어머니의 얼굴이 유난히 동그랬어요. 그 옆에서 제가 키우는 개, 다동이 꼬리를 흔들고 있고요.
“자다가 보니까 등이 뜨듯한 거야, 보니까 얘가 내 등 뒤에 웅크리고 있는 거 갔드라구. 그런데 심장이 사람처럼 콩, 콩, 콩 뛰드라. 콩, 콩. 아니 꼭 살아있는 사람 심장 같애. 그래서 나도 같이 숨을 쉬었더니 박자가 딱 맞대. 나랑 얘랑 콩, 콩, 그러고 숨을 같이 쉬었어. 깰까 봐 움직이지도 못하고 숨만 같이 쉬었어.”
“그럼요, 어머니. 개도 심장이 있는데요.”
“그러니까. 나는 개랑 그러고 자본 적이 없으니까 몰랐지. 아니 어떻게 그렇게 콩, 콩 하고 뛸까 세상에.”
어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주방을 향했어요. 작은 뒷모습을 보며 어머니의 나이를 셌죠. 일흔이 훌쩍 넘었는데, 개의 심장이 콩, 콩 하고 뛰는 일이 세상을 몇 번이나 찾을 만큼 놀랄 일이라니, 피식 웃다가 이내 코끝이 시큰해졌어요. 오늘부터 어머니는 개와 등을 대고 누워 낮잠을 자는 사람, 개의 심장 소리에 자신의 심장 소리를 서서히 맞출 때 드는 안온한 기쁨을 아는 사람. 나이가 들면, 겪고 또 겪어 진부한 감탄만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리 나이가 많이 들어도 그 앞에 새로운 감탄이 별처럼 놓여있겠구나. 이걸 희망이라고 부르나 봐요. 그래서 사람은 계속 살고 싶어지는 것일 테죠.
자, 레미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제가 찾은 단어는 ‘희망’이에요. 희망은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라 구체적인 순간입니다. 형태와 모양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다음엔 뭐가 될까?라고 물을 수 있죠. 이번 주에는 이 책을 나누어 읽고서 어린이 작가님들과 내일의 일기를 미리 써보려고 해요. 하루 끝에서 하는 기록이 아니라, 컴컴한 서랍 속에서 다음이 오기 전에 떠올려 보는 희망에 대해 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