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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Nov 16. 2022

외로움은 매일처럼 매일 오는 것

수영도 못하면서, 지난 일요일 내내 수영장에 있었어요. s와 d가 참여하는 수영 대회가 있었거든요. 저는 수영을 싫어하고 s와 d는 수영을 좋아해요. 수영을 좋아하는 둘이서 다니다 보니 저는 d가 수영하는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어요. 경기 시작 전 워밍업을 하는 d를 가까이에서 보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낯설고 아름다운 d. 다리 둘을 꼬리 하나처럼 모아 유연하고 힘차게 나아가는 d의 몸. 파란 수영장 안에서 d는 돌고래처럼 눈부셨어요.

      

돌아오는 길에 s에게 나도 수영을 배워볼까, 진담 섞인 농담을 건넸죠. 수영을 할 줄 알았다면 나는 덜 우울했을 것 같아. 약간의 후회도 덧붙였어요. 내가 지금 우울하지 않다면 그건 발레를 하기 때문이야,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려야 해. 확신도 드러냈고요. d가 수영을 해서 다행이야. 오래오래 했으면 좋겠다.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을 했어요.

         

저는 그림자처럼 우울감이 따라붙는 시절을 보냈고 그 우울감은 외로운 마음에서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쓰고 나서야 외로움이라는 게 뭘까, 하는 질문이 떠오르네요. 자주 외로웠지만 외로움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았거든요. 그저 옷에 묻은 얼룩을 털어내듯 얼른 없애 버리려고만 했죠. 외로움이라는 게 뭘까, 선뜻 대답하기 어려워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홀로 되거나 의지할 곳이 없어 쓸쓸’한 마음이네요. 맞아요, 그랬던 것 같아요. 혼자 있지 않으려고, 누군가에게 의지하려고, 사람들을 만났고 커다랗게 웃었어요.      


누구나 그렇듯이 저도 몇 번의 이별을 경험했어요. 이별은 참 이상해요. 서서히 친밀해졌던 존재와 단번에 멀어져야 하잖아요. 텅 빈 자리를 보고 있으면 사무친다는 단어를 온몸으로 겪죠. 저도 친구들도 이별을 하고 외로울 때면 서로를 찾았어요. 시간을 의지하려고요. 너의 외로움 따위 상관없다는 듯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너의 슬픔은 나의 슬픔보다 슬프지 않다고 비교하거나, 외로움은 누구나 느끼는 당연한 감정이라고 조언하거나, 너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마주쳤죠. 하지만 어느 쪽이든 우리는 여전히 외로웠어요. 혼자도 아니고 기댈 곳도 있는데, 왜 자꾸만 외로운 걸까요.           



모두 가 버렸어. 프랑크는 혼자야.      


에바 린드스트룀이 쓰고 그린 <모두 가 버리고>는 외로움으로 시작하는 그림책이에요. 우리는 외로움을 해결을 기다리는 문제로 여겨요. 그래서 수많은 이야기 들은 외로움으로 시작해서 외롭지 않음으로 끝나고요. 이 책 역시 외로움을 해결하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바깥이 아니라 안을 향한다는 거예요.     


모두 가 버리고 혼자가 된 프랑크는 혼자서 울어요. 이 눈물을 닦아주는 누군가를 찾아가거나 기다리지 않고 눈물을 ‘흘리고’, ‘모으고’, ‘끓이고’, ‘식혀서’ 유리병에 담아요. 눈물로 마멀레이드를 만드는 거예요. 탁월한 은유죠. 마멀레이드를 만들 듯 내 안에 생긴 감정을 버리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살피고, 감정이 나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식히는 거죠. 프랑크는 눈물을 모은 냄비에 400밀리리터라는 정확하게 계량한 설탕을 부어요. 자기만의 레시피를 가지고 있나 봐요. 또 너무 뻑뻑하지도 너무 묽지도 않은 농도를 맞출 수도 있어요, ‘적당한’ 농도를 알게 될 때까지 프랑크는 실패와 반복을 거듭했겠죠. 증명이라도 하듯 프랑크의 주방 곳곳에는 마멀레이드와 관련한 책들이 놓여 있어요. 프랑크는 외로워서 슬픈 시간을 자기만의 방법으로 통과하는 사람이에요.       


그러고 보면 저는 외로움을 충분히 배울 시간이 없었어요. 얼른 없애버리기 위해 혼자 남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어요. 사실 선택이라 할 것도 없는 게, 고민도 없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으로 믿었거든요. 외로우면 남에게 기댔죠. 기대고 있는 사람에 따라 저는 더 외로워지거나 덜 외로워졌어요. 눈물로 마멀레이드를 만드는 프랑크를 보며, 나의 외로움은 내가 다루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 이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혼자가 된 프랑크는 홀로 자기만의 방에서 눈물의 마멀레이드를 만들죠. 그리고 닫힌 문을 열고 친구들에게 물어요. 마멀레이드 샌드위치에 차를 같이 마실래? 이렇게 이야기는 끝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마지막 장면은 책장을 한 번 더 넘겨야 해요. 프랑크와 친구들이 같이 밖으로 나간 후에 남겨진 방이 나오거든요. 이 방의 풍경이 참 쓸쓸해요. 이 방 또한 모두 가 버리고 남겨진 외로움에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프랑크가 홀로 길 위를 걸을 때, 또 마멀레이드를 다 만들고 문을 열었을 때, 여전히 모든 게 여느 때와 같다고 읊조리는 목소리가 있는데 모두 다 가 버리고 남겨진 방 역시 모든 게 여느 때와 같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지. 프랑크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고 눈물을 모아 마멀레이드를 만들려고 방으로 돌아올 거예요. 그리고 문을 열어 친구들을 부르고 마멀레이드 샌드위치와 차를 나누어 마신 후에 밖으로 나가겠죠. 모두 가 버리고 홀로 남아 외로운 방이 있고요. 모든 게 여느 때와 같이.      


외로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국어사전을 찾았지만 이제는 프랑크와 눈물로 만든 마멀레이드와 모두 가 버리고 남은 방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외로움은 모든 게 여느 때와 같은 것. 얼른 털어버려야 하는 얼룩도 아니고 맞서 싸워야 하는 적도 아니고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의 신탁도 아니죠. 모든 게 여느 때와 같은 것. 매일처럼 매일 오는 것.     


저는 이 그림책을 보며 에세이스트 비비언 고닉의 문장을 떠올렸어요. 비비언 고닉은 외로움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 사람이에요. 맞서 싸우고 받아들이고 휩쓸리기를 반복하며 결국 외로움이 “평범하고 예상 가능하며 매일같이 일어나는 일”임을 깨닫게 되죠. 이 “매일의 우울”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비비언 고닉이 하는 일은 바로 산책이에요. 길 위를 걸으며 거의 익숙하고 종종 낯선 풍경 속으로 들어가요. 우연을 기대하고 우연에 기뻐하죠. 제가 생각하기에 비비언 고닉은 외로움이 매일이라면, 외로움을 살면 된다 말하고 있어요. 외로움을 산다는 건 외로움과 싸우거나 외로움을 받아들이거나 외로움에 사로잡히는 것과는 달라요. 매일 일어나는 외로움을 매일 대하는 것이죠, 매일 산책을 하거나 청소를 하고 수영을 하면서.     



통찰은 그것만으로는 구원이 되어주지 못했다. 나는 날마다 새롭게 말끔해져야 했다. 걷는 일이 나를 정화시켜주었고 깨끗이 씻겨주었지만 오직 그날뿐이었다. 그 일이 매일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걸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걸어야 할 운명이었다.(79쪽.)       


수영을 하는 d를 보면서 안도했던 건 매일 수영을 하는 d를 상상했기 때문이에요. d에게도 분명 매일 일어나는 외로움이 있겠죠. 프랑크처럼 눈물을 모았으면, 눈물로 바다를 만들어 한참을 헤엄치다 물결을 타고 수면 위로 올라오기를, 그렇게 매일의 외로움을 매일 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외로움의 반대말이 있을까요. 우울과 슬픔의 반대말은 바로 답할 수 있는데 외로움의 반대말은 찾기 어렵네요. 외로움은 매일처럼 매일 오는 마음이라 그런 건 아닐지. 그렇다면 우리 매일 외로움을 살아요. 저는 오늘 발레를 하러 갑니다. 땀을 많이 흘리고 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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