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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Dec 15. 2022

읽는 사람

김은정 그린, <읽는 사람>

읽는 사람과 나. 우리 둘뿐이에요. 읽는 사람은 책을 읽고 나는 읽는 사람을 봅니다. 나 또한 거의 읽는 사람으로 살고 있으니 내가 나를 보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차가 많이 밀렸어요. 평일과 오전 그리고 서울.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유난히 혼잡한 날이었어요.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더 걸려서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미술관에요. 육중한 문의 무게를 밀고 들어간 미술관은 손에 실어 둔 힘이 무색하게 텅 비어 있더라고요. 이 역시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지만 유난히 고요했어요. 사람들이 가득 찬 길을 지나 아무도 없는 미술관에 서 있으려니, 비현실이라는 단어가 몸을 가지고 눈앞에 당도한 느낌이었죠.

      

김은정의 그림을 보려고 여기에 왔어요. 미술관 sns에 게시된 그림을 봤는데, 그림 하나하나 이야깃거리가 풍부하더라고요. 그림을 두고서 어린이 작가님들과 같이 글을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수업을 하기 전에 그림을 찬찬히 볼 필요가 있어 온 거죠. 사실 수업 준비는 핑계일지도 몰라요. 다 내가 좋아서 온 거예요. <읽는 사람>이라는 그림을 직접 보고 싶었거든요.      



계단을 두 번 내려갔어요. 위층에서 미술관 직원들이 드나들고 인사말을 나누는데 그 소리가 아득해서 아주 깊이 내려온 기분이 들더라고요. 하얗고 네모난 벽에 읽는 사람이 걸려있어요. 구름 위의 하늘인지 (바로 앞서 조지아 오키프의 ‘구름 위의 하늘Ⅳ’을 오마주한 그림을 보았어요) 얼어붙은 강인지 아니면 잔잔하게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인지 잘 모르겠지만, 무엇이 되었든 기필코 사라지고 마는 땅 (사라져 버릴 텐데 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위에 한 사람이 앉아서 책을 보고 있어요. 땅 끝에 허술한 돌담이 보이고 서성이는 사람들이 몇 모여 있고요. 그 너머로 눈이 쌓여 하얗고 푸른 빛을 내는 산이 있네요. 노을이 내리는 붉은 하늘도 아름다워요.     


저곳은 멀어요. 그래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의 생김새나 표정을 알 수가 없어요. 알 수 없음이 오히려 확신을 부를 때가 있죠. 바로 지금처럼. 여자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으니 읽는 사람은 나라고 생각해 버리는 거예요. 무엇이 되었든 기필코 사라지고 마는 땅 위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사람. 이 그림은 책을 읽는 나에 대한 이야기예요.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내가 보고 있어요.      


외로운 것이 당연해 외롭지 않다,고 쓴 적이 있어요. 읽기는 도피처였고 읽는 사람은 도망자였죠. 열세 살,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책을 읽었던 나이. 사춘기 사나운 감정이 폭발하기 직전에 아이들은 아슬아슬해요. 호되게 따돌림을 당했어요. 매일 학교에 갔지만 할 일은 없었어요. 그래서 책을 읽었어요. 책은 유일한 피난처가 되어 주었거든요. 고개를 숙이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 등 뒤로 문이 닫히고 사방에 단단한 벽이 생겼어요. 오직 책과 나. 그 안에서는 외로운 것이 당연해 외롭지 않았어요. 도피처를 찾은 도망자처럼 조용히 읽는 사람으로 살며 그 시기를 견뎠죠.      


그래서일까. 읽는 사람을 떠올리면 도피처와 도망자가 생각났어요. 오직 책과 나. 유일하게 안전할 수 있는 곳. 그런데 이 그림은 조금 달라요. 도피처라 하기에는 읽는 사람이 앉아 있는 곳이 너무 드러나 있는걸요. 등 뒤로 문이 닫히지도 않았고 벽도 없어요. 저 멀리에 서성이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아요. 두 발을 앞으로 나란히 펴고 그 위에 책을 보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어요. 움츠리거나 두리번거리지 않죠. 읽는 사람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상상을 했어요. 책을 읽고 있는 이 사람만 똑 떼어다가 무성한 숲 한가운데 둔다면, 빌딩과 사람으로 빽빽한 도시 한가운데 있다면, 곡식들이 바람에 일렁이는 들판 한가운데 둔다면 어떨까.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아요. 아니 반드시 그렇게 될 것 같아요. 읽는 사람은 어디서든 읽는 사람. 그리고 알았죠. 읽는 사람은 수렴이 아니라 발산을 해요. 모이지 않고 퍼져 나가죠. 도피처로 숨어드는 것이 아니라 문을 열고 나아가는 거예요. 여는 사람, 나가는 사람, 읽는 사람.      


외로운 것이 당연해 외롭지 않으려고. 읽는 이유를 조금 바꿔야 할 것 같아요. 읽는 사람이 앉아 있는 땅은 구름이거나 얼음이거나 물결이에요. 사라지고야 마는. 구름은 걷히고 얼음은 녹고 물결은 흐르죠. 등 뒤로 문이 닫히고 단단한 벽이 선 공간이 아니라 결국 열리는 공간.      


전시실에는 읽는 사람과 나 단 둘뿐이에요. 하지만 하얗고 네모난 벽 너머 아득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어요. 계단을 두 번 오르는 동안 소리는 점점 선명해집니다. 관람객이 조금 늘었네요. 문을 열고 나가요. 길 위를 걸었고요.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간 카페에서 저는 책을 읽었어요. 마침 이런 문장이 나타나 밑줄을 긋습니다.

       

세상은 조금 더 끔찍해지지만 나는 세계의 진실에 그만큼 다가갈 수 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그 모든 것은 나의 무지 바깥에서 늘 존재해 왔으므로. 살아갈수록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더욱 깊어지는 것만큼 다행인 일이 또 있을까. 나는 아픈 쪽이 훨씬 좋았다. 나는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 목정원,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걷힌 구름 밖으로, 녹은 얼음 아래로, 흐르는 물결을 타고 나아갑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아프더라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어요. 는 읽는 사람. 방법을 찾는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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