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리영 Sep 10. 2023

미움에 대하여

어쩌다 홍콩 

오랜만에 예전 직장 인도네시아 동료 A한테서 연락이 왔다. 우리의 전 상사가 췌장암에 걸려서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 회사를 관둔 뒤로  A, E, I 이렇게 인스타그램 친구를 맺고 가끔 연락하며 지냈었다. 이 셋과 친해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직장인들이 그렇겠지만) 상사와 일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토로하면서였다. 다른 부서에 비해 우리 팀의 퇴사율이 유난히 높았던데는 상사가 팀원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언제든지 새 사람을 뽑으면서 된다는 식으로 대하는 것이 한몫했고, 내가 2년 채우고 나간 뒤 E가 딱 2년을 채우고 관뒀고, 그 뒤에 A도 조금 더 일한 뒤 퇴사, I는 같은 조직 다른 팀으로 부서를 바꿨다. 2019년 팀이 꾸려졌을 때 처음 합류한 나를 포함한 원년 멤버가 5년짜리 프로젝트가 끝나기 전에 1-2년을 주기로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다 퇴사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이직할 때마다 서로 추천서를 써주며 서로의 이직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응원했다.


그가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A의 문자를 받았을 때 복잡한 감정이 몰려왔다. 상사와 나는 잘 맞지 않았고, 일하면서 어려운 적도 많았지만 단 한 번도 상사가 암에 걸려서 죽기를 바란 적은 없었다. 상사는 문화 차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가기 어려운 행동을 많이 했다. 우리보다 앞서 퇴사한 같은 팀 직원 M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직 슬픔이 가지 않았는데도 업무 능력을 문제 삼으며 혼냈던 일화는 아직도 직원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또, 지난달 A와 E와 영상 통화를 했을 때 A는 말했다. A에 따르면, 우리 팀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던 직원 한 명이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순례를 갔다가 호텔에서 심장마비로 죽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그때 많은 직원들이 장례식에 참석해 조의를 표했는데, 그때 우리 상사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아 뒷말이 무성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그때는 참 마음이 삭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췌장암에 걸려 오늘내일한다는 상사의 상황을 생각하니 또 이해가 될 법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느낀 것은 악한 면만 있는 인간은 없다는 점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선으로 무장한 완벽한 캐릭터가 매력이 없는 이유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서다. 사람은 모두 선한 모습과 악한 모습을 골고루 갖고 있으며, 다만 우리는 직장에서 일하면서 상사의 어려운 성격만 주로 보았기 때문에 그의 선한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는 직장 상사로 존경하기 어려운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회사 울타리 밖에서 누군가에게는 좋은 친구,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었을 것이다. 이제 이전 회사를 떠난 지 거의 2년이 다된 지금 그를 향한 미움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A의 문자를 읽은 뒤 나는 상사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다. 뒤늦게 문자를 확인한 E도 비슷한 문자를 보냈다. 우리를 그렇게 괴롭히더니 쌤통이라고 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나는 그 덕분에 어려운 상사를 어떻게 대하는지 배웠고, 스트레스받을 때 당장 관두고 싶을 마음을 누르고 묵묵히 일하는 법도 배웠다.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상사가 이제는 우리가 더 이상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옛 회사 직원들과 마지막으로 다함께 만났었던 자카르타의 한 카페! 






 


매거진의 이전글 남의 학교 도서관 풍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