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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 잠긴 홍콩

by 수리영

어제부터 홍콩 하늘이 흐리다. 지난주 수요일 100명이 넘는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타이포 아파트 화재 참사 이후 며칠간 화창한 하늘이 얄미웠는데, 하늘도 눈치를 챘는지 며칠동안 흐린 하늘이 홍콩인들의 슬픔에 동참하고 있다. 토요일부터 3일간 홍콩 정부가 도시 애도 기간으로 정하면서 18개 지역에 분향소가 설치됐다. 남편과 나도 동네 근처에 있는 분향소에 들려서 꽃을 놓고 묵념을 하고 왔다. 토요일날 일본 피아니스트 마오 후지타와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협연이 있어서 콘서트에 갔는데, 그곳에서도 공연 전 1분 묵념과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따로 준비한 추모곡이 연주됐다. 이웃의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또 바쁜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 도시에서 무거운 공기가 느껴진다. 사망자 20명, 40명에서 시작된 화재 사고가 다음날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을 볼 때면 무력감을 느낀다. 12월 1일 기준으로 사망자는 146명. 하지만 현재 실종자와 부상자가 많아서 앞으로 사망자 수치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홍콩 당국이 발표했다. 홍콩 정부가 피해자들을 위해 마련한 긴급 펀드에 국민 성금이 12억 홍콩달러 (한화 2256억 정도)가 모였다. 겉으론 쌀쌀해 보이는 홍콩 사람들이지만 이웃에 아픔에는 누구보다 통이 크고 마음 씀씀이가 넓다. 우리 부부도 어디에 기부를 할까 고민하다가 이름 모를 NGO보다는 그래도 정부 펀드의 사용처가 더 투명할 것 같아서 이곳에 기부했다.


피해자의 아픔에 연대하는 홍콩인들이지만 곳곳에서 분노가 느껴진다. 젊은층보다 홍콩 정부에 우호적인 어른 세대들도 이번 참사의 근본 원인은 정부의 관리 감독 부재라는데 공감한다. 땅값 비싸기로 소문난 홍콩에서 고층 아파트 위주의 주거 형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며, 한국은 아파트가 노후되면 재개발을 해서 다시 짓는 경우가 흔하지만, 홍콩은 40년 정도된 아파트는 오래된 건물 축에도 들지 않을 정도로 외벽 공사만 해서 사는 경우가 다반사다. 시부모님댁 아파트, 우리가 사는 아파트도 외벽 공사를 몇 년 전에 진행했다. 아파트 외벽 공사를 진행하려면 집주인 협의회 (owner's association)에서 투표 및 협의를 통해서 공사 진행 여부를 결정하고, 이후 업체 선정 등 조달 절차를 걸친다. 그리고 집주인들은 집 크기, 세대 수에 비례해 외벽 공사 비용을 부담한다. 적게는 한화로 몇 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 2억이 넘는 돈을 각 가구당 부담해야 한다. 몇 억이면 한국에서는 지방에 가서 아파트를 살 수 있는 돈인데, 땅값 비싼 이 도시에서는 외벽 공사하는데만 이만한 돈이 드나보다. 한 가구당 내는 돈이 이만큼이니, 건축 업체가 버는 돈을 얼마나 될까. 그만큼 아파트 외벽 공사는 홍콩에서 흔하고, 돈이 되는 장사다.


몇몇 한국 언론에서는 화재의 원인을 대나무 비계 (bamboo scaffolding)에 돌리며 헛다리를 짚는 기사를 내기도 했지만, 현재까지 홍콩발 언론에서 나온 의혹을 종합하면 가장 큰 문제는 정부의 관리 감독 미흡, 건설 업체의 가연성 건축 자재 사용 가능성이다. 특히, 대나무 비계를 감싸는 그물망과 공사 중 먼지가 아파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창문에 붙인 스티로폼이 화재 피해를 키웠다는 사실은 홍콩 소방뿐 아니라 홍콩 정부도 언급했다. 지난해 9월경, 이번에 화재가 난 왕 푹 아파트의 입주자들은 외벽 공사에 사용되는 스티로폼 패널과 대나무 비계를 감싸는 그물망이 가연성이라며 이 자재의 적합성에 대해서 홍콩 노동부에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노동부는 비계 주변부에 사용되는 가연성 자재 사용에 대한 규정이 현재 없고, 왕 푹 아파트 외벽 공사에 사용되는 공사 자재들은 시공사인 프리시티지 건축에서 화재 안전 기준에 다 맞춘 것이라며 입주자들의 우려를 일축했다. 노동부는 시공사가 정부에 자체 제출한 공사 자재 품질 증명서에만 의존했다. 공사 자재 품질을 어떻게 검증했는지, 이 증명서가 조작됐는지 알 길이 없다. 화재 안전 기준을 만들고, 공사 현장을 감시 감독해야 하는 책임은 노동부에 있다. 올해 10월에도 센트럴에서 외벽 공사를 하던 건물에 불이 나서 수십 명이 대피하고, 병원에 입원하는 사건이 있었다. 사망자는 없었다. 당시 홍콩 소방은 언론에 "외벽 공사에 사용된 자재에서 불이 났다"고 분명히 문제를 제기했는데, 한 달이 조금 지난 시점에 유사한 사건이 또 발생한 것이다. (기사 참고: https://hongkongfp.com/2025/10/19/four-hospitalised-dozens-evacuated-after-fire-rips-through-central-buildings-scaffolding/)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화살은 시공사에게만 향하고 있다. 화재 발생 이후 시공사 관련자들을 구속해 수사하는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 홍콩 시민들이 분노할 수 밖에 없다.


아파트 외벽 공사 현장은 곳곳에서 보인다
여기도!


이 와중에 홍콩 경찰은 국가보안법을 들이대며 몇몇 시민들을 잡아들였다. 현지 언론에 보도된 첫 체포자는 대학생이었다. 화재 이후 이 대학생은 홍콩 정부에 4가지 요구 사항을 제시했다. 내가 읽어봐도 굉장히 합리적인 요구였다. 첫째, 화재 피해자들을 위한 주거 시설 마련, 둘째, 독립 기구를 만들어 화재 사고 조사, 셋째, 건축 관리 감독 시스템을 재점검, 넷째, 관리 감독의 부재가 있었는지 살펴보고 문제가 있다면 정부 관리들에게 책임을 지게 할 것. 국가보안법 위반이 될 만한 사항은 아마도 마지막 요구 사항이 아닐까 싶다.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대형 참사에서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정부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주 당연한데, 국가보안법 이후 홍콩에서는 정부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모양이다.


홍콩 언론에서 모두가 알지만 기사화하고 있지 않는 다른 이야기는 2023년 도입된 지방선거 선거 제도 개편이다. 2019년 친민주주의 성향 인사들이 직접 선거를 통해 대거 선출되는 일이 생기면서 체면을 구긴 홍콩 정부는 이후 지방 선거 제도를 대거 개편한다. 2023년 실시됐던 지방 선거에서는 18개 구에 직접 선출됐던 450석의 시,구의원 숫자를 88명으로 줄이고, 대다수인 나머지 의석은 정부가 임명하는 방식으로 선거 제도를 개편하면서 민주주의 성향의 후보자들이 출마할 수 있는 길을 아예 막았다. 한국의 사례를 봐서 알겠지만 구,시의원은 자신의 지역구 주민들과 직접 소통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바로 반영하는 중요한 풀뿌리 일꾼들이다. 국회의원은 지역구가 넓은 대신 구,시의원들은 촘촘한 지역구를 담당하기 때문에 그 동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 임명 인사가 늘어나고, 간접 선출된 이들이 지역과의 접점이 사라지면서 현장의 걱정 어린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창구가 좁아졌다.


점점 더 중국 본토식 거버넌스 시스템으로 바뀌는 홍콩을 보면 마음이 착잡하다. 내 가족이 살고, 앞으로 미래를 일궈나가야 할 도시인데, 집회와 시위의 자유, 정부 비판이 자유로운 한국에서 살다가 이런 큰 일을 겪을 때마다 부각되는 정부의 통제를 보고 있자면 마음이 답답하다. 아마도 중국 중앙 정부는 과거 집단 행동을 조직화한 경험이 있는 홍콩에서 이번 참사가 체제에 도전하는 도화선이 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고 있을 것이다. 체제에 순응하는 중국 본토 사람들도 2022년 코로나때 중국 우루무치 지역에서 화재 사고로 수십 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정부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반발해 백지 시위를 한 경험이 있다. 한국에서는 세월호가 발생했을 때 책임있는 정부 인사들이 사퇴하고, 이후 박근혜 정부 심판으로 이어졌는데, 현 정치적 상황에서 홍콩에서는 어떤 식으로 정부가 이 일에 책임을 질 것인지 나는 참 궁금하다. 계속 쓰다가는 나도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으니 이제 말을 아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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