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과거에 끌려다닐까. 왜 내게 일은 끝이 없을까.
목표를 크게 잡으라고 말한다. 멋진 일을 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전에.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일, 목표하는 일의 시작과 끝조차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끝을 어디로 두느냐에 따라 내가 그것을 대하는 태도, 기분은 완전히 다르게 된다. 목표를 크게 잡으라는 말이 아니라 작은 일에 대해서도 시작과 끝을 제대로 이해하자는 의미에서 이야기를 전한다.
우리는 가끔씩 생각한다.
'피곤하다... 일이 너무 많아. 오늘은 일단 쉬고 내일부터. 날 괴롭히는 것들이 계속 날 놔두질 않아. 인제 새로운걸 하고 싶어. 이건 아닌것 같아. 피곤하다.'
'지쳤다. 인제 그만 헤어지고 싶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게 아닌데 계속 잡일하느라 아무것도 못하고 있어...'
아침이 되면 해야할일들이 마음을 짓누른다. 새로운 한 주는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해야 할진데 언제나 나는 어제에, 지난주에 잡혀있다. 마치 과거가 나를 잡아당기는 것 같다. 왜 내게 이런 고민은 끝이 없는걸까. 왜 이렇게 나는 과거에 끌려다닐까. 그런데 이 지점에서 정말 속상한 것은 나는 이런 저런 이유로 한발자국도 못나가는데 나의 경쟁자는 얄미우리만치 쭉쭉 뻗어나간다는 점이다. 뭐가 원인일까.
나는 어디를 끝으로 설정하고 있는가
내가 얻은 깨달음이 있다면 이런 기분의 원인은 바로 어떤 일의 '끝'이 어디인지를 잘못 정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히말라야 고봉을 오르는 두 사람을 생각해 보자. 한 사람은 산의 정상이 목표다.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순간 그의 여정은 비로소 의미를 완성하게 된다. 반면에 희말라야 고봉에서 스노우보드로 활강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에겐 등반이 최종 목표가 아니다. 그의 여정은 등선에 올라서야 시작된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속도와 위험을 넘어 바닥 목적지까지 내려왔을 때 비로소 그 모든 여정은 마무리되고 꽃이 피게 된다. 두 사람이 생각하는 목표의 끝은 어디일까. 완전히 다르다. 목표를 크게 잡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끝을 어디로 정하느냐의 이야기다.
너무 거창한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작은 지점에서부터 이 구분은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조직에서 주어진 또는 목표한 일들을 수행한다. 열심히 최선을 다 했고 고생이란 고생도 다 했다. 마음 고생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 업무를 끝내면 끝이라고 생각하는데서 진짜 고통이 시작된다. 행사를 했거나, 준비하던 프로그램, 기획안 발표 등을 마무리 했다고 치자. 회의를 막 마무리 했다고 치자. 강의를 끝나고 질문도 모두 받고 사람들과도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고 치자. 막 글 하나를 완성했다고 치자. 책을 막 탈고 했다고 치자. 교제하던 사람과 싸우고 이제는 다시는 그러지 말자라고 합의를 했거나 우리 헤어지자고 얘기를 했다고 치자. 마침내 하나를 끝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 지점은 작은 끝에 불과하다. 진짜는 거기서부터다. 당신이 방금전에 끝냈다고 생각한 것들에는 수많은 부산물들이 쌓여있다. 남은 것들을 다 치우기 전까지는 말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 부산물을 치우기 전까지는 새로운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야 피곤해 죽겠는데 이걸 언제 다 치우지... 부산물들을 다시 당신의 공간으로 가져가야 하는 것만 해도 만만찮다. 누군가 좀 이걸 치워줬으면 좋겠다... 유형이든 무형이든 그 부산물들, 그 짐들을 싸서 나의 공간에 가져왔다고 치자. 그걸 다시 원래의 자리로 두거나 재정리하는 것은 더욱 큰 일이다.
끝은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상태로 정리가 되기 전까지는 끝난게 아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하는 순간에 정작 우리는 아직 끝내지 않은 이전 것들을 버리고 정리하는데 시간을 다 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일을 마무리할 때쯤이면 완전히 지치게 되고, 슬픈 것은 치우기도 전에 새로운 것들이 다시 들어와서 이전의 일을 제대로 끝내지도 못하게 된다. 끝은 산등성이를 내려와야 하는 것인데 정상에서 끝났다고 생각하니 내려갈 일이 아찔하게 보이는 것이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짜증과 두려움, 회한으로 남게 되기도 한다.
끝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상태'가 될 수 있도록까지 마무리하는 것이다. 반면에 이렇게 시작과 끝을 구분하지 못하면 늘 마무리하지 못한 과거의 레거시와 그 속의 고생, 스트레스에 내 마음이 떠나지 못하게 되고 실상 그 역시 그 자리에 머물게 될 수 밖에 없게 된다. 대신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왜 제자리인가'라며 답답해하고 원인을 주변에 돌리게 된다.
차이는 마무리 지점을 대하는 태도
누군가의 실력, 누군가의 차이는 바로 이 마무리 지점의 마음이지 않을까. 가장 기본은 그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는 일이다. 그것이 선행하지 않으면 결과가 좋을리 없고 상대는 바보가 아니다. 하지만 그 다음은 자신은 물론 함께하는 이들이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정리하고 준비하도록 조력하는 것이다. 업무 후, 강의 후에 당신은 그와 다시 편안하게 얘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상태로까지 만들어 두어야 한다. 강의안을 공유해 주거나 그와의 좋은 인연에 대한 회고를 전하거나. 거기서가 끝이다. 본인의 일만 잘 하면 된다는 생각은 슬프지만 그가 가진 원래의 능력의 최대치에 절대로 닿지 못한다. 당신이 결국 그 부산물에 압도될테니.
끝을 내는 사람이 당신의 자리를 끝낸다
사소한 일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그 사소한 일을 일일히 챙기는 사람이 있다. 자기 일이 아닌데도 굳이 뒷정리까지, 그리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상태로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타인의 업무가 더 잘 시작될 수 있도록 본인이 그의 수고를 덜어주는 준비까지를 끝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때로는 조직에서 그는 원래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처럼 치부될 수도 있다.
'그만큼 돈을 받으니까, 그의 일은 그거니까. 여유가 될테니까.'
하지만 당신이 여유가 없는 만큼, 당신의 일이 힘든 만큼, 상대도 똑같다라는 사실을 생각하자. 그를 다시금 생각해 보라. 그는 이 일이 자신의 주요 업무가 아닐 수 있음에도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 자신의 일이 있음에도 그는 더 많은 양의 움직임을 가진다. 처음에 이 지점은 그렇게 드러나 보이지도 않고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점점 자신의 일에 더해서 자신의 것이 아닌 지점의 일에 대해서도 조금씩 조금씩 영역을 넓혀간다. 그리고 자신의 일을 계속 끝내지 못하는 이들의 영역을 침잠해 간다. 당신은 자신의 일에 머무르지만 그는 자신을 계속해서 넘어간다. 결국 당신의 자리는 점점 사라지게 된다.
당신이 늘 하는 일에 바쁘고, 사람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으며, 지금 하는 일에도 허덕거린다면 이 지점을 다시 생각해 보자. 모든 이에게는 24시간이 주어지지만, 각각의 능력은 상대적인 수준이지만, 분명히 우리는 차이를 만들어내는 사람의 존재를 인지한다. 그 지점 중의 하나는 바로 이 시작과 끝에 대한 이해라고 본다.
끝내지 못하는 이들, 새로이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
나는 어디를 끝이라고 여기고 있었던가.
나는 어떤가 항상 돌아보자.
나는 나를 시작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고 있는가.
사소함이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차이는 사소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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