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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Apr 14. 2022

운동신경이 아주 없지는 않네요

삼일째가 되니 심신이 운동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어젯밤엔 온몸이 결려서 잠을 설쳤다. 근육통 때문에 목이며 등 에 파스 겔을 덕지덕지 발라서 화끈했다. 새벽에 몇 번을 깼는지 모르겠다. 운동만 하고 나면 집에서 계속 자다가 밤이 되면 깨어나 대충 먹고 또자는 생활이 삼일째.


"저 오늘 온몸이 다 아파서 못 가겠는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코치님한테 전화했다. 온몸이 빠개지는 것 같은 근육통을 어찌해보고 모레 다시 가면 되겠지. 쉬라고 하면 오늘은 정형외과에 가서 물리치료나 받고 사우나 좀 하며 누워있을 심산이었다.


"그냥 나오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운동으로 뭉친 건 운동으로 풀어야지 쉬면 했던 거 다 도루묵 돼요"


"아..... 네......"


며칠 얼굴 봤더니 순경 공채 팀 아이들도 내 낯이 익었나 보다. 체육관에 들어서자 웃으며 눈인사를 했다. 띠동갑보다 어린 그들은 이 짓을 벌써 삼 주째 하고 있는데 근육통이 없는 건지 회복이 빠른 건지 오늘도 활기차게 체조를 하고 있었다. 팔을 올리고 내릴 때마다 흐느적거리는 나와는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워밍업 뜀박질을 했다. 남자애들은 나를 몇 바퀴나 추월해 갔다. 나는 그들의 진로 방해자였다. 그들 중 일부는 당장 내일모레 실기시험이라서 오늘이 마지막 훈련이었다. 코치는 그들의 상황에 맞게 단거리 피칭 연습을 시키고 곧바로 윗몸 일으켜기와 팔 굽혀 펴기 기록 훈련을 했다. 혼자 멍청하게 서서 안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막 적극적으로 하기엔 온몸이 쑤셨다.


다행히 오늘은 <유연성 훈련>이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쉽게 말해 온갖 자세로 스트레칭을 하는 것인데 2인 1조로 눌러주고 찢어주고 하는 것이다. 나는 하필이면 제일 어리고 잘하는 여자애와 짝이 되었다. 내가 아무것도 안 해줘도 그 아이는 혼자 알아서 잘했기에 잠깐이나마 휴식 시간을 벌어서 좋았다. 그러다 내 차례가 되었다.


"유림아, 언니 오늘 근육 뭉쳤대. 꾹꾹 눌러줘."


"아, 그래요? 도와드려야겠네. 호호호."


아이고 이것아. 뼈밖에 없는 애가 무슨 힘이 그렇게 좋은지 야무지게 내 몸뚱이를 쭉쭉 찢고 밀. 너무 아파서 비명을 꽥꽥 질러댔다. 아이는 맑게 웃었다.


스트레칭 한 조가 되고 나니 그 아이는 내가 조금 친근하게 느껴졌나 보다. 말을 걸어왔다.


"언니, 어떤 거 준비하고 계세요?"


"경찰 준비하지."


"언니 혹시 경찰 아니에요? 왠지 그럴 거 같아서요."


"응. 경찰 맞아. 그런데 경찰 준비하는 거야."


나는 알쏭달쏭한 표정의 아이를 보며 웃었다. 굳이 이런저런 설명은 하지 않았다(말할 기운도 없었다. 너무 힘들어서). 옆에 있던 다른 아이들도 우리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나이 먹으면 먹을수록 주변 사람한테 무관심하게 살게 되던데(굳이 말하지 않으면 묻지 않는) 애들이라 그런가 궁금한 것도 많네 잠깐의 대화였지만 신선했다.


체력 훈련하는 두 시간은 참 시간이 더디다. 체육관 안에 어딘가 시계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뭐 하나 할 때마다 벽면을 훑어보게 된다. 코치는 오늘의 마지막 훈련이라며 사다리 같은 모양의 플라스틱을 쭉 깔아놓고 촘촘히 뛰는 동작을 시켰다. 제발 마지막이면 마지막답게 이거만 하고 고마 집에 갑시다. 영혼이 점점 없어졌다.


"하시던 가닥이 있긴 하신 것 같아요. 오랜만에 해서 그렇지 한 달 바짝 하면 금방 잡으시겠는데요."


코치는 며칠 동안 나를 관찰하더니 희망찬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코치님은 어찌 되었든 내 체력실기를 책임져야 하니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다른 학생들이야 이번에 한 달 반짝하고 스치는 인연이겠으나 나만은 앞으로 6개월을 봐야 하는 얼굴인데 기록 안 나와서 실기 떨어지면 좀 난처하기도 할 것이고. 내가 보기에 코치는 꽤 직업의식이 강한 사람 같았다.


기본은 있는 것 같다는 말이 반가웠다. 지금은 더러운 요가매트에 누워 스트레칭을 하다가 비명이나 지르는 처지지만 왠지 이 생활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짧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살포시 해보며.


체육관에서 집까지는 도보로 한 시간 정도 되는 거리다. 며칠은 아빠한테 라이딩을 부탁했는데 오늘은 데리러 오지 못한다고 하여 알아서 집엘 가야 했다. 날이 약간 쌀쌀하지만 모처럼 걸어보기로 했다. 가다가 힘들면 버스 타지 뭐.


봄이 도처에 내렸다. 바람이 불어 벚꽃 비가 내렸다. 작년의 봄은 엄마의 죽음과 함께 내 기억 속에 삭제되어버렸는데 올해의 봄은 눈 안에 들어오고 피부로 느껴진다. 봄바람에 끈 덕하던 피부가 말라 보송해졌다.


그래, 슬픔에 젖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지. 영원할 것만 같던 시간은 흐르고 남은 사람들의 삶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좋은 것만 생각하자. 좋은 것만. 좋은 것만. 좋은 것만.

덕이동 아파트단지 길가에 피어있던 예쁜 벗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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