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은 아주 유용한 영양소란다. 소금만큼 오해를 많이 받고 사는 게 또 있을까. 무조건 줄여야 하고 피해야 하는, 성인병의 주범으로.
그런데 왜 우리는 소금의 유용성을 자꾸 잊는 것일까. 아니, 거의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건 참으로 쓸데없는, 때론 어처구니없는, 소금의 유용한 부분이다.
1.
바다의 짠맛이 그대로 살아 있는 바지락을 팔팔 끓였다.
당신은 짠 국물에 면을 넣고 볶았더니 싱거울까 하여 소금을 넣었다.
짜다면서 물 넣고 물 넣고...
조금만 더... 하던 것이 어느새 싱거워졌는지
당신은 또 소금을 첨가했다.
이제는 계획했던 것과 달리 예상했던 것과 달리 아주 다른 요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날마다 새로운 요리가 만들어진다.
당신과 나 사이에.
짠맛 때문에.
2.
“맵단짠이래잖아.
이렇게 먹지 않으면 먹은 것 같지가 않아.”
너는 힘들어 보인다. 곧 오래 사귄, 오래 같이 산, 오래 인연이 끊어지지 않을, 가장 오래 기억될 어떤 남자와 헤어진다 했으니, 너는 정말로 힘들어 보인다.
그런 네가 우리 집에 와서 떡볶이를 해 주며 그렇게 말했다.
온갖 양념장들을 과하게 너무 심하게 쏟아붓다시피 하여 섞으며 그렇게 말했다.
더 맵게 더 달게 더 짜게 먹지 않으면, 그러니까 위가 어지간한 자극에는 움직이지 않게 메말라 있다고.
한 남자로 인해 메마른 위를 갖게 된 너는 요즘 좀 어떠니.
3.
늘 같은 날은 없었던 것 같다.
네가 지닌 염분은 내가 가진 것과 성질이 달라 아주 천천히 녹고 때로는 아주 심한 결정체가 되어 내게 생채기를 내고는 한다.
나는 때로 답답하고 때로 다친다.
그래서 나는 네 등 뒤로 가 몸을 보듬고 옷을 살짝 올리고 등의 땀구멍으로 올라오는 짠 냄새에 코를 대 본다. 그러면 이따금 네가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살갗으로 증발되는 인간적인 짠 냄새 때문에. 숙명적으로 거칠거칠한 소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내 것이라고 착각할 때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너무 짜다고 생각할 때 버려졌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좀 농도가 낮은 날에는 사랑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결국 별 거 아닌 거다.
그날에 따른 농도의 차이.
당신과 내가 지닌 염분의 차이.
그 차이 때문에 생기는 감정의 파도로 나는 사랑을 확인한다.
그러니까 어쩌면 이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단지 소금 때문에 짠맛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슬픈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