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겉핥기 보고서 6 - 한국의 편견에 맞서다
최근 '노타투존(No Tatoo Zone)'에 대한 논쟁이 다시 불거졌다. 서울 소재 호텔 등에서 문신 있는 사람의 호텔 내 수영장, 헬스장 등 시설 이용을 제한하고 있다. 혹은 15cm 이하의 타투의 경우 전용 패치를 붙이거나 문신이 노출되지 않도록 긴 옷차림을 해야 한다. "문신은 공공장소에서 노출하면 안 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아이 키우는 부모로서 함께 보기 걱정된다" 등 호텔의 정책에 동조하는 의견도 많다.
(출처-한국일보 "문신 있으면 출입 금지"… 유명 호텔 '노타투존' 두고 '시끌')
한국에서 타투 혹은 문신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드래곤(G-Dragon)과 박재범 등 케이팝(KPOP) 아티스트들이 문신을 대중화하면서 타투에 대한 인식이 조금 관대해지기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일반인의 타투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압도적이다.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타투만큼 한국인들의 이중잣대가 명확히 드러나는 주제는 없다. 연예인과 외국인의 타투에 대해서는 아무런 비난도 하지 않으면서, 일반인이 타투를 하면 '양아치'부터 '생각 없는 놈', '철없는 놈' 등 온갖 부정적 시선을 받는다. '문신을 하는 것도 자유지만, 문신한 사람을 혐오하는 것도 자유'라는 혐오의 자유를 당당히 요구한다. 타투가 위화감을 조성한다, 어린아이 교육에 악영향을 끼친다 등 온통 부정적 의견뿐이다.
친구 레오나르도(Leonardo)의 아버지는 한 달 전 두 개의 타투를 동시에 시술받았다. 당신의 60 생애 처음 받는 타투였다. 당당하게 타투를 새기고 아들에게 호탕하게 영상통화로 그림을 자랑했다. 레오나르도 역시 타투가 있고, 그의 어머니와 누나도 모두 타투가 있다. 마찬가지로 찰리뉴(Charlinho)는 얼마 전 아버지 찰라옹(Charlão)씨와 손잡고 타투샵에 가 같은 그림을 새겼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타투를 몸에 그리다니, 진정한 부자유친(父子有親)이 아닌가? 그 외에도 우리 집에는 페드루(Pedro), 티아구(Thiago), 엔히키(Enhirque), 존(John)이 몸에 최소한 하나 이상의 타투를 간직하고 있다. 브라질에서 사귄 친구 중 절반은 타투가 있다.
한국에서 타투는 커리어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친다. 대기업 면접에서 타투가 있으면 채용과정에서 불리하다는 사실은 공공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경찰공무원 채용과정에서 타투가 있으면 "경찰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불합격 처리가 된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의 자유가 사회적 압력에 의해 침해되고 있다. 더 무서운 점은 누구도 개인의 자유를 위해 나서지 않고, 다 함께 '사회적 낙인'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브라질에서 타투는 삶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얼굴을 덮은 타투가 아닌 이상 기업이나 경찰, 군인 시험에서도 타투 여부는 어떠한 영향도 행사하지 않는다. 타투가 있다는 이유로 브라질의 대표적인 기업인 페트로브라스(Petrobras)나 엠브라에르(Embraer)에 불합격하는 경우는 없다. '타투, 피어싱 등에 대한 차별을 금하는' 차별 금지법까지 제정되었다. 경찰, 군인이 문신한 모습을 길에서 쉽게 볼 수 있고, 입사면접 등에서도 타투는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문신에 대한) 법적 보호
브라질 법률에 근거해 문신이 있는 사람에 대한 차별은 금지된다. 예로, 2007년 법률 제1,582호는 문신과 피어싱을 한 사람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이 외에도, CLT(통합 노동법) 제482조는 문신이 정당한 사유로 인한 해고의 근거일 수 없고 또한 근거가 되어서도 안 된다고 정의하고 있다. 또한 1995년 법률 제9,029호에는 직장 내 문신이 있는 사람에 대한 차별을 범죄로 명시하고 있다.
누가 타투를 하든 말든 대체 당신이랑 무슨 상관인가? 한국에서 개인은 본인의 책임감을 넘어 사회에 의한 책임까지 맡아야 한다. 불법이 아니더라도 사회가 부정적으로 본다면 우리는 선뜻 나서지 못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사회의 허락까지 맡아가며 해야 한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자부심을 가지며 브라질 어디를 가더라도 '나는 한국인이야(Eu sou coreano)'를 외치는 나지만, 가끔 한국 사회의 꽉 막힌 면을 보면 귀국하고 싶은 생각이 쏙 달아난다.
자녀에게 '타투는 나쁜 거야', '못 배운 사람들이 타투를 하는 거야'라고 가르치는 게 올바른 교육일까? '타투는 네 자유이고 그만큼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거야', '우리 사회는 타투를 하더라도 불이익을 주지 않는 민주적인 곳이야'라고 가르치는 부모가 될 수 없는 걸까? 아쉽지만 지금의 한국은 사회가 못하게 하니까 못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내가 못하니까 남도 하지 말아야 하는 기형적인 사회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인식이 사람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하고, 사회의 가치를 개인에게 강요하고 주입하는 전체주의적 사고로 옮겨가는 것 같아 두려워진다.
브라질 친구들에게 타투에 대해 물어보았다. "내가 타투를 하면 어울릴까?"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한국에서는 '평생 양아치가 아닌 걸 증명할 수 있으면 해', '형한테는 안 어울려요'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여러 타투를 한 바버샵 사장님이나 타투가 있는 지인들은 '신중히' 할 수밖에 없는 사회문화를 언급하며 추천도 부정도 하지 못했다. 브라질에서는 정반대의 답변이 돌아왔다.
"해(Faça)"
"타투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없어"라는 게 내 친구들의 믿음이자 나의 물음에 대한 답이다. 브라질은 이런 곳이다. 바닷가에 놀러 갔으면 몸무게, BMI 지수, 몸매 상관없이 남자는 상의탈의를 하고 여자는 비키니를 입어야 하는 곳이다. 겨드랑이 털을 제모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고, 남자가 민소매 상의를 입어도 아무 문제없는 곳이다. 실제로 살아생전 티셔츠만 입어온 내가 브라질에서는 난닝구만 입고 다닌다. 내가 외국인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뭘 하든 신경 쓰지 않는 사회 분위기 덕분이다. 그러니 최소한 정신적인 부분에서만큼은 참 편할 수 있다.(길거리에서 강도를 조심해야 하지만..)
제발 서로 신경 쓰지 말고, 검열하지 말고 살자. 타인에 대한 검열이 결국 돌고 돌아 나에 대한 잣대로 돌아오지 않는가? 어울리지 않는 것은 없다. 타투도 옷도 문화도 그리고 우리의 인식도 어색할 뿐이지 어울리지 않는 게 아니다. 노키즈존(No-kids zone), 노타투존(No-tattoo zone)에 이어 다음은 무슨 존(zone)을 만들건데? 아니꼬운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당신이 떠나면 될 일이지, 왜 타인이 누리지 못하게 방해하는가?
최근 흥행한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중 안성재 셰프의 심사평으로 글을 마쳐야겠다.
"생각을 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