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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lnoc Nov 17. 2018

인문 / 투명사회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조차 투명하지 않다


투명사회-한병철

투명사회-한병철

1. 계기

가볍게 읽을 얇은 책을 찾다가 회사 책꽂이에서 발견한 책. 내가 신청한 책이었는데 한동안 잊고 살았다.
투명함을 통해 형성되는 디지털 통제사회에 대한 경고라는 내용 정도만 알고 신청한 책이었다.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철학적인 단어와 내용이 생경하여 사실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간 부분도 많았다.

2. 요약
투명함을 요구하는 디지털 사회에서 현대인은 스스로 자신을 공개하고 서로를 감시한다. 저자는 무척이나 부정적인 입장에서 투명함을 강요하는 지금의 사회를 비판한다. 투명함에 대한 긍정적인 면들 만을 바라봐 왔던 것은 아닌지, 디지털 기기와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뜨끔하며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3. 감상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 나는 그것으로 살아간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으로 살아간다. 이 책의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이 한 문장에 뒷통수를 맞은 듯 감탄하여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렇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깊게 동의한다. 사람들이 그것을 모를리 없다. 그래서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가지고 싶어하는 것이고, 스마트폰에는 비밀번호를 걸어두는 것이며, 집을 나설때는 보이지 않는 가면을 쓰고 밖으로 나선다. 우리의 본능은 우리의 민낯을 숨기고 싶어하는데 이 세상은 투명성을 점점 더 강하게 요구한다.

행동하지 않고 손가락질만 한다
저자는 한결같이 우리 사회의 여러면에서 요구하는 "투명함"에 대해 조목조목 부정적이다. "좋아요"라는 단순하고 긍정적이기만 한 커뮤니케이션을 경계한다. "시간성"을 잃은 디지털 이미지의 무생명성을 걱정한다. 무리로서의 목소리가 아닌 댓글과 좋아요를 통한  파편화된 개인의 공허한 외침을 무의미하다고 본다. 더러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아름다운 이미지에만 관심을 쏟는 현세대의 모습에 탄식한다. 그리고 저자가 걱정하고 비판하는 현대인의 모습은 나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현대의 투명성이 그리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닐거다. 빠른 정보의 소통은 빠르고 효과적인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고 때로는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 아고라와 청원을 통해 무리로서의 유의미한 목소리를 만들기도 하고 여론을 형성하기도 한다.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반박하고 싶은 부분도 있고, 좀 더 설명이 되었으면 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긍정적인 면에 대한 여지가 전혀 없다. 그래서 강렬하다. 저자의 굳건한 관점과 신념에 압도된다. 그러다보면 책을 읽는 잠시나마 지금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좀 더 삐딱하게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조금씩 잊혀져 가고, 귀찮게 여겨지는 가치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책의 후반부에 "사물을 착취하지 않고 그에 머물러 있는 오랜 시선에서 깊은 행복이 나오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내가 어떤 것에 오랜 시선을 둔 적은 언제일까. 지금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는 2만개의 사진들 중 내가 가만히 시선을 멈추어 바라보며 애정을 담아 간직하는 사진은 얼마나 될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너는 너무 솔직한게 단점이야
이 책의 본질적인 내용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인간적인 투명성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고 조금은 억울하고 답답한 내 성격 이야기를 좀 써보려 한다.

"너는 너무 솔직한게 단점이야" 라는 말을 몇 번 들었다. 투명하고 솔직한게 서로에게 명확하고 좋은 것이라고만 생각했었기에 이 말을 들었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다른사람들은 이만큼 솔직하지 않은 것인가. 대체 뭐가 잘못된거지.. 내숭이라도 떨어야 한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들. 그치만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너무 솔직한 것은 매력이 아니다. 단점이다.

 내가 투명하려 했던 이유는 더 잘 이해받고 내가 준 만큼의 사랑과 애정을 바랬기 때문인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진심을 전하려 한들 그 마음이 상대에게도 진심으로 전해졌을지는 모를 일이다. 나는 괜히 “내 진심을 전했으면, 이 만큼의 반응과 사랑이 돌아오겠지”라는 어리석은 기대를 한 것 같다. 하지만 늘 결과는 참패. 진심은 왜곡되고 오히려 상대에게 상처를 입힌다. 그리고 그 상처는 나에게 고스란히 돌아와 나는 나에게 상처를 스스로 입힌 꼴이 되어 버린다. 마음이 꼭 투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남좋으라고 그러는게 아니라 내 마음 편하려고 그러는 것일지 모른다. 나는 충분히 표현했고, 미련없고, 네가 나를 충분히 이해줫으면 좋겠고 하는 그런 마음. 나는 투명한게 아니라 투명한 척하려고 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의 그런 마음은 다 티가 나겠지.

사람들은 생각보다 투명한 마음을 바라지 않는다. 듣고 싶은 말을 해 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러니까. 그렇지만 나는 자꾸 투명하려 하고 나의 그런 모습 때문에 사람들이 나와 함께 있기도 하고 나를 떠나가기도 한다. 어제도 괜스레 투명하려다가 후회스러운 일을 만들었다. 솔직한게, 투명한게 단점인 것을 알면서 나는 자꾸 투명하려고 한다. 그 조차 이 투명사회에서 세뇌받은 탓일까.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불투명함을 잘 유지하면서 스스로를 잘 지키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점점 투명해지려는지 알 수가 없다. 불투명해 지려고 노력하면 좀 나아질 수 있을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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