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월부터 4월7일까지
2월1일. 회사를 2월 말에 그만두기로 함. 그만두면 무얼할까 생각함. 본능적으로, '일단 농사를' 지어야겠다 생각함. '우보농장'을 알게 됨.
2월28일.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우보농장에 땅을 빌리러 감. 우보농장은 고양시 고양동 현대아파트단지 맞은편에 있음. 불광역에서 경기버스 330 또는 703을 타면 40분을 달려서 '응달촌'정류장에서 내려, 곧장 5분 걸으면 '우보농장'이라는 입간판이 나옴. 우보농장은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는 도시농부들의 아지트 같은 곳임. 집에서 1시간 거리이니 가깝지는 않지만, 유기농지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선택함. 또한 농장지기 '우보'님은 시기마다 농사에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시고, 좋은(대부분 토종)씨앗이나 모종 등을 나눔 또는 판매하기도 하셔서 농사를 배워가며 하기에 좋음.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처음 만난 우보님 및 손님들이랑 두어시간 주저앉아 농사 이야기를 재미나게 할 정도로 마음이 잘 맞는 곳이었음.
버드나무 아래 열 평을 분양받음. 개인텃밭 중에 제일 안 쪽이라서 물이나 농기구로부터는 멀지만, 버드나무 아래에 널찍한 공간에서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놀아보라며 그 쪽을 주심. 바쁘지만 가끔 흙을 만지고 싶은, 작년 나같은 친구들이 편하게 오갈 수 있는 가까운 고향 텃밭 같은 곳이 되었으면 좋겠음. 농장에서 영화보기, 농장에서 노래하기, 춤추기 등 오만 재미나고 이상한 일들을 벌여보고 싶음.
3월13일. 마르쉐에 가서 토종씨앗들을 get함. 자급자족 할 채소와 가공판매할 허브류 중심으로 작물을 구상함. 내가 가진 씨앗은 다음과 같음
- 식량: 토종 강낭콩(우보), 감자(싹난 생협감자/ 우보농장에서 받은 씨감자), 완두콩(홍성에서 받음), 검은완두와 되호박 그리고 오이(토종이자란다), 홍심5촌당근과 그냥호박(시판 종자), 고구마 순
- 잎채소: 아욱, 토종부추, 토종대파, 토종 적상추, 토종 잎들깨, 토종 담배상추, 루꼴라(마르쉐), 토종 아욱, 적겨자와 청겨자 및 해찬엇갈이배추(시판 종자), 시금치(작년에 심은 것 이식), 달래(야생 이식)
- 허브: 바질과 딜 및 파슬리(마르쉐), 애플민트(우이친환경농장)
- 꽃: 해바라기(토종이자란다), 매리골드(마르쉐), 벨벳퀸해바라기(일본), 로즈마리와 페퍼민트(시판 모종)
토종씨앗은 '토종이자란다'라는 모임에서 씨앗을 나누고, 밭은 사람들이 다시 한 해 잘 길러서 채종한 후 다음 해에는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씨앗을 나누는 미션을 갖고 있다. 작물을 길러서 수확하는 것 외에 종자를 채집하는 것 까지 해 보아야 진정한 농사의 한 사이클을 마치는 것이라고 한다. 멋지기 짝이 없다. 수박이나 옥수수처럼 눈에 쉽게 보이고 채종도 쉬운 씨앗이 있지만, 토마토 씨앗과 상추 씨앗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안난다. 씨앗 받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아주 흥미 진진한 세계다. (토종이자란다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groups/775169745838963/?fref=ts )
3월19일. 풀을 걷고 밭을 갈음. 작년 농사 남아있는 흔적들(마른풀과 마른작물)을 낫으로 베어 없앰. 예전에 여기에 땅콩이나 들깨를 심은 듯함. 허리도 못 펴고 10평 풀을 베었는데, 우보님이 옆에 있는 8평 밭도 쓰라고 하셔서 졸지에 18평 땅부자가 됨. 내겐 너무 커 보였음.
3월24일. 밭을 디자인하고 둔덕을 만들기위해 밀가루로 밑그림을 그렸음. 땅이 대략 사다리꼴로 생겼음. 같은 작물을 주루룩 심는 일반적인 밭(작물 생산을 위한)이 아니라, 어울리는 여러 작물을 섞어서 짓고 기왕이면 예쁜 '텃밭 정원'을 만들어보기로 함. 오도 님이 지은 '텃밭 정원 가이드북'을 교과서 삼았음.(https://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barcode=9788990090867) 배치도는 아래와 같이 그려보았음.
3월26일. 텃밭 정원의 하이라이트, 텃밭 중앙에 동그란 반원형의 둔덕을 만들고 퇴비를 넣음. 이웃 밭 생강 사장님이 열심히 같이 작업해 주었다.
3월29일. 두둑을 마저 만듬. 감자 심을 자리에 퇴비를 섞음. 밭 주변에 자세히 보니 냉이가 많았음. 캐 가서 된장국을 끓여먹었는데 돈 안 주고도 먹을 것을 마련했다는 감동이 쓰나미처럼 몰려왔음.
4월3일. 감자와 콩을 심음.
4월11일. 함께 경작할 동지들을 처음 만나는 날임. 여섯명이 함께 경작하기로 했음. 나 혼자 세웠던 경작계획을 다시 논의하여야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