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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하남 Feb 15. 2020

[1분 영화 감평 - 14] 기생충 (2020)

Parasite, 빈곤을 벗어나라면

* 리뷰는 내용과 결말을 가능한 언급을 피했지만 스포일러가 포함   있습니다.

제가 영화를 시청하는 방법은 가능한 리뷰를 보지 않은채 감상한  타인의 리뷰를 보면서 공감한다. 영화 기생충은 아카데미상을 받아 우연치 않게 분석과 리뷰를   밖에 없었고 기회가 되어서 감상하했다.

리뷰를 먼저 보지 않았으면 필자가 기생충을 바라보는 관점이 사뭇 달랐을 것이다. 먼저, 영화는 필자의 삶과 다른 삶을 그려 주인공에 공감하지 못했다. 그리고 전개도 결말도 애매하다. 오히려 상업영화보다 예술 영화, 사회비판적 영화나 인디 영화에 가깝다. 어쩌면, 아카데미 시상 이후에 역주행하는 것이 이를 반증할지도 모른다.

필자는 가능한 영화의 전개를 숨기고 리뷰를 쓰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어려울지 모른다. 따라서 가능한 독자께서 먼저 영화를 보시길 권합니다.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려면?”라는 질문을 안고 보는 것이 좋을  같다. 필자의 눈에는  영화는 선악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빈곤층과 부유층의 갈등을 그리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 저는 외부의 영향 없이 빈곤  자체가  가정을 와해하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주인공 기우는 우연한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릇된 방식으로  가족이 취업(?) 성공한다. 가족모두 안정적인 소득을 얻었고 이를 기회삼아 빈곤에서 벗어날  있는 희망이 보였다. 그런데 바로 도취한다. 목표를 이룬것처럼 승리를 자축한다. 자축하지 않았다면 앞으로 벌어지는 반전에 휘말리진 않았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갔다. 지상으로 나온듯 했지만 다시 돌아갔다. 다시 돌아가기 싫어 극단적인 선택을  주인공 가족 일원의 충동적 선택이 결국 가정을 파탄낸다. 하지만 주인공 가족을 아작낸 주범이 부유한 가족이 아니라  빈곤한 가족이었다. 그런데 가정 파탄에 쐐기를 꽂은 사람은 주인공의 아버지 (기택) 의미 없는 범행을 저지른다. 가족의 행복을 잃었고 희망 없는 가난한 상황으로 돌아갔다.

필자는  영화의 주인공을 아버지 기택이 아닌 장남 기우로 생각한다. 이야기의 시작, 전개, 결말이 기우를 시작으로 전개했다고 본다. 영화 기생충은 부유-빈곤의 사회적 갈등을 그리진 않은  같다. 오히려 빈곤층이 빈곤한 이유를 간접적으로 설명한다고 본다.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 노력과 계획이 필요하다 사실과 ‘실패는 게으른 결과가 아닌 이라는 것을 잊는다.  주인공 가족은 처음부터 무기력한 것은 아니다. 장남, 장녀, 아버지 모두 나름 능력이 있었지만 운이 따르지 않았다. 부유한 가족은 부당한 방법을 취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가족을 사랑하고 헌신하는 모습이다. 가정부, 운전기사, 과외 선생  누구도 부당하게 대우하지 않았다.

주인공 가족을 해친 것은 다름 아닌 같은 빈곤층 가족이었다. 빈곤층 가족간의 물리적 충돌이  가족의 몰락을 불렀다. 마지막 장면인 기우의 충동적 선택이 사회적 문제인 ‘묻지마 범죄’, ‘자살등의 충동적 행동을 대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영화나 다큐멘터리나 사회 고발 프로그램을 보면 빈곤을 이유로 특정한 외부 세력이 가족을 힘들게 하는 모습을 그린다. 가령, 재개발 지역의 주민을 몰아내는 개발업자 혹은 정치인, 사회안정제도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행정부  빈곤층이 힘든 이유를 특정 외부요인에 주목한다.  영화에서는 그러한 면이 전혀 없었다. 혹자는 빈곤과 부유란 사회적 계층간의 충돌이라 해석하는데, 저는 빈곤이 정신을 병들게한 결과 좋은 기회조차도  활용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그린 영화라고 본다.
 
저는  영화를 통해 현재의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비록 불행으로 끝났지만, 주인공 가족도 노력한 결과 잠시마나 빛을 보았다. 노력을 포기한 다른 가족은 지하의 세계에 안주하는 선택 했다.  선택 조차 지키기 위해 물리적 충돌을 선택했다. 지금보다  나은 상황을 바란다면 외부의 손길을 기대하는 만큼이나 본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진리가 아닐까 싶다. 빈곤이란 결과는 운이 작용한 것이다.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의 도움은 필요하다. 그럼에도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남에게 의존해서 살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이것이 필자가 깨달은 느낀 메시지 입니다.

이상 설하남의 감상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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