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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Jul 24. 2022

오늘 칼퇴? 저녁 ㄱ?

목동에서 양갈비

- 오늘 칼퇴? 저녁 ㄱ?

- 7시 목동 1출 ㄱ


수요일 오후 5시에 도착한 톡. 역시나, 오늘 내일쯤 B에게 연락을 하거나 올 것 같긴 했지. 시간에 맞춰 쿨하게 사무실에서 나와 지하철에 몸을 싣고 인파에 잠시 무의식의 상태를 유지하며 약 50분을 기다린 끝에 목동역에 도착한다.


언젠가부터 저녁약속은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을 찾게 된 나머지, 그리고 한시라도 값비싼 오피스 근처에서 멀어져 집 가까이에서 부담없이 볼 수 있는 편을 선호한다. 목동역은 B와 나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는 곳이기에, 누군가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서로의 집 앞으로 찾아가지 않는 한 저녁약속 장소는 십중팔구 이 곳이다.




B와 저녁을 먹을 때 메뉴는 대부분 다음 중 하나이다: 이베리코, 곱창, 양갈비, 양꼬치, 육회, 생선회, 해물요리. 기왕 술 한 잔하니 든든한 음식을 곁들이자는 암묵적 약속과도 같다. 메뉴의 살발함에 부응하듯 술도 살발하게 마시다보니, 그 술자리의 끝은 택시에 서로를 태워보내는 일이 다반사다. 언제부턴가는 자신들의 운명을 예감이라도 하는 듯, 술을 마시기 전 숙취해소제를 털어넣는 것은 기본.


그 날은 유달리 양질의 고기에 시원한 소주가 생각난 나머지 양갈비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발견한 새로운 식당. B의 회사는 코로나 이후로 재택근무를 계속 이어오고 있다. 그는 코로나 이후 그 회사에 입사했기 때문에, 사실 사무실에 매일 출근했던 일이 거의 드물다. 외근이 아닌 이상 대부분 집에서 근무하는 B는 다른 어느 곳보다도 목동으로 나오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편안한 선택지였다.


주문한 양갈비와 히야시가 수준급이었던 소주 한 병이 나왔다. 달구어진 불판에 양갈비 한 그릇을 모두 올리고, 곁들일 파와 버섯을 불판 양 가장자리로 배치시킨다. 불판의 열기에 의해 자칫 소주가 식을 수 있으니 냉큼 각자의 소주잔에 한 가득 소주를 채운다. 첫 잔은 무조건 짠. 잔을 꺾는 건 B와는 좀처럼 없다.




하루종일 격무에 활기를 찾지 못하던 두 눈동자가 양고기 육즙이 입안 가득히 고이며 제 위치를 찾는다. 고기 한 점이 입 안을 가득 채우며 턱놀림은 마하10의 속도로 빨라지고 뜨거운 입김을 연거푸 쏟아낸다. 재빨리 남은 술을 비워내 첫 소주병을 출루시키고 다음 2번 타자를 타석에 세운다.


첫 병에 워밍업을 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여과 없이 뭔가 털어내고 싶은 이야기들을 시작한다. 흔히 직장에서의 애로사항과 가족과의 작은 갈등, 천정부지로 솟는 집값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간밤의 꾸었던 꿈의 해석, 입스라고 믿고 있는 - 그러나 실력미달로 인한 골프의 정체기, 그 여자의 속마음 등 실은 지난 술자리에서도 줄곧 나오던 이야기들. 그 많은 소주병을 비워내도 아직까지 명확히 알 수 없던 해답.


그럼에도 뾰족한 답을 구하려고 꺼낸 이야기는 아니었다. 반복되어 돌아오는 문제들에 대해 그저 같이 여러 차례 고민하고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각자의 원하는 바는 이루었다. 간혹 심각한 문제에는 빠르게 올라오는 술기운에 정신을 놓지 않은 채 감정선에 맞춰 진심 가득한 문장들을 읊조리지만, 대부분은 술잔을 채워주고 같이 비우며 무심한 듯 한 마디의 동조로 대신한다.


- 아니 너가 생각하는 그게 맞지. 아닐 이유가 뭐가 있어?




빠르게 출루한 2번 타자 이후 연거푸 3번을 소화해내며, 약간의 아쉬움에 추가한 1인분의 양고기를 불판에 올리며 어느덧 네 번째 소주병을 맞이하고, B는 잠시 담배를 태우러 밖으로 나갔다. 고기가 구워지는 동안 문득 핸드폰 사진첩을 켜고 별 생각없이 올려본 과거 사진의 군데군데에는 그간 B와 오지게도 비워낸 소주병이 즐비했다. 기억컨데 분명 그 소주병 앞에서도 우리는 또 직장, 가족, 집값, 꿈, 골프, 여자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보다 나은 내가 되어가는 것이 마냥 쉽지만은 않음을 알고 있기에, 소주를 앞에 두고 전개하는 비슷한 레퍼토리의 연속이 마냥 지루하거나 답답하지만은 않다. 사람이 어디 그렇게 쉽게 바뀔까. 오히려 아직 성숙하지 못한 각자의 어떤 부분들을 솔직하게 내비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다행일 뿐.


추가한 고기까지도 소주와 함께 깔끔히 비우고 나니 그제서야 입이 좀 풀리는지 B도 나도 목청이 커졌다. 양고기로 알차게 채운 배를 두드리고 가게문을 나선다. 김포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들이 신정동 주택가 위로 지나가며 가리키는 석양을 쫓아, 한적한 골목 사이에 조용한 술집들을 두루 살피며 B에게 물었다.


- 2차 어디로 가지?


(이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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