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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안 May 16. 2021

내  마음  받아주세요.

책방 스승

보라색 문이 조용히 열린다.


그때  남편과  한창 이야기 중이었다. 몇 번 인사를 나눈 문인에게서  책을 선물 받았는데

내용이 따뜻하고 좋았다. 페이지를 넘기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하여  멍하게 앉아 있으니 다른 자리에서 책을 보던 남편이 슬며시 곁으로 온다. 참 고마운 일이다. 아내의 주변 공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걸 감지해 주는 속 깊은 남자다. 남편은 무슨 일이냐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읽어내린 책 속의 문장들을 언급하며 잠시 숨을 고른다.  




그렇게 남편과 책 이야기로 시작해 사람의 진실된 감정에 대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랑에 대한, 삶에 대한  지독한 모순들, 성실함. 혹은 표현되지 못하는 감정의 본질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같은 사소하고 잡다하지만  한번 쯤 만져지기 바라는 것들의  이야기 말이다.


누가 문을 여는가 싶어 몸을 일으킨 순간, 심장이  덜컹하고 나만 아는 소리를 냈다.

밖은 오전부터 내리던 비가 오후를 넘어가도 그칠 줄 모르고  있었다. 이 비를 뚫고 책방에 온 그녀. 가끔  아침 일찍 책방에 오는 그녀.  구석에 앉아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고 있기도 하는 두 아이의 엄마. 꿈이 많았다고 말하며 책방 안을 소리도 내지 않고 누비던 그녀다.  나와 대화할 때면  초롱한 두 눈이 금세 붉어져 고개를 돌리기도 하는 그녀다.  어색한 듯 웃음을 짓고 있는 그녀의 품에  붉은 제라늄이  안겨져 있다.  수줍은 몸짓으로 내게 꽃화분을  건네며  조심스럽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십 년을 만나도 만나지 않은 듯한 낯선 사람이 있고,  십분 만나도 십 년 만난 듯  편안한 사람 있대요. 당신과의 만남은  짧지만 나에게  오랜 친구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꽃인데 받아주세요."


나는 얼른  그녀의 싱그러운 마음을 품에 안았다. 뭔가  깊은 말을 하고 싶은데 머리와 가슴이 따로 움직이는 느낌에 눈만 껌뻑였다.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말.


" 오늘이 스승의 날입니다. 삶에도 스승이 있잖아요. 이 책방과 당신이 나의 스승이 되었어요.

  살아갈 수 있게 용기 주셔서 고맙습니다. "


조금 전 남편과 나눈 단어의 편린들이 허공 속에  흩어졌다가  붉은 마음이 되어 내 안으로 돌아왔다. 표현된 사랑은  얼마나 힘이 센가. 이번엔 내가  눈시울이 붉어져  고개 숙인다. 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 우리는 눈을 마주치며  말없이  서로를  안아주고  등을 어루만졌다.  따뜻했다. 그리고 좋았다.

마치 나를 울컥하게 하고 멍하게 했던 그 책이 사람으로 환생해 숨 쉬는 것처럼.




그녀를 보내주고 나와 남편은 붉은 제라늄을 어루만져 주었다.

꽃말도 찾아보았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라니.

이렇게 절절한 고백을 받아도 되는 걸까 싶은데 남편이  미소지으며  어깨를 두드린다.

사람의 알 수 없는 마음에 대해 애끓던 나에게 신께서 메시지를 보내주신 듯 벅차다.

밖에는 여전히 촉촉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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