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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May 10. 2024

빵으로 가는 여정

베이커리 <오월의 종> 대표 정웅 interview 1


수십 개의 점포를 거느린 프랜차이즈 베이커리도 아니고 인스타에서 요란하게 태그 되지도 않지만 오후 세시면 빵이 동난다는 곳, 오늘은 20년째 한결같이 '식사빵'을 만들고 있는, 베이커리 <오월의 종>을 찾아갔다.

이번 인터뷰는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집어든 책 한 권에서 시작되었다. <매일의 빵> (문학동, 2019), 표지 한쪽에 '오월의 종 베이커 정웅의 빵으로 가는 여정'이라는 부제가 달려있었다.

가끔 집에서 빵을 곤 하는 나는, 유명 베이커리의 레시피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해서 책을 펼쳐보았다가, 자신의 '블리스(Bliss)'를 찾아 길을 떠난 늦깎이 베이커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바야흐로 빵이 '밥'이 된 시대, 지킬 것을 지켜가며 제대로 만든 빵을 만나는 일은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20년간 빵만 구워온, 작지만 단단한 브랜드 <오월의 종>이 써 온 이야기가, 그리고 잦은 고난을 드문 솔직함으로 돌파하며 자신의 길을 찾은 사람의 이야기가 몹시 궁금해졌다.


용산의 리움미술관을 지나 한남동 골목길을 십여 분 걷다 보니 꼭대기에 작은 종을 매단 까만 스틸 건물이 나타났다.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우리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다소 큰 키에 야구모자를 쓴 그는 베이커리 <오월의 종> 대표 '정웅' 씨였다. 함께 간 에디터와 나는 환한 햇살이 가득 찬 2층 사무실에서 그가 내려준 제주산 커피를 마시며 궁금했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Chapter 1. 빵으로 가는 여정

Q1. 올라오다가 하늘을 쳐다보고 한참 웃었어요. 정말 오월 하늘에 종에 달려있어서요.

새로 매장을 짓기 전에  이 자리에서 가게를 하고 있었어요. 가게 앞에 단풍나무 한그루가 있어서 손님들이 '단풍나무 점'이라고 불렀었는데 그 가게 문에 걸려있던 종이예요. 가게 헐 때 가지고 있다가 새로 집 지으면서 지붕 위로 올린 거죠. (웃음)

Q2. 2004년에 일산 행신동에 첫 매장을 여셨으니 올해로 창업 20주년입니다.

<오월의 종>은 이제 성공한 동네빵집의 대표주자가 되었는데요, 처음에 빵을 만드는 일을 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전 다른 사람들 보다 한참 늦게 이 일을 시작했어요.

처음엔 시멘트 회사 영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요, 건설회사 영업이 힘들긴 했어도 회사에서 나름대로 인정도 받으면서 성실하게 다녔어요.

그런데 어느 날 입찰하는 자리에서 상대 회사 중역들과 다 같이 앉아있는데 거기 있는 제 모습이 너무 낯선 거예요.

10년 뒤 20년 뒤에도 변함없이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갑자기 숨이 턱 막히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죠.

'여기서 얼른 빠져나가자' 아주 강렬한 목소리가 제 안에서 들려왔어요.

그 길로 며칠 안에 바로 사표 내고 회사 옆에 있는 제빵 학원에 등록했죠. 아내한테는 딱 4년 뒤부터 받던 월급만큼 가져다주기로 약속하고요.


Q3. 퇴사 후에 제빵학원이라니 빵을  무척 좋아하셨나 봅니다.


아니에요. 전 빵 하고 케이크도 구분 못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지나다니며 학원에서 빵 만드는 걸 가만히 보니까 저 일은 누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구나 싶었어요.


Q4. 막상 회사를 나와 낯선 세계로 들어가 보니 어떻든가요?


늦게 시작했으니, 신참이지만 어딜 가나 제가 나이는 제일 많았죠. 처음엔 나이 많다고 왕따도 당하고 그랬는데 당시에 저한테는 왕따도 별로 스트레스가 아니었어요. 그런 거 있죠. '그래, 다 들어와 봐' 이런 마인드. 그런 기분으로 일하니까 누가 뭘 시켜도 스트레스가 아니었어요.

그때 퇴사하고 이쪽 일로 넘어오는 단계가 저한테는 너무 강렬했기 때문에 어지간한 건 다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Q5. 멀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내분께는 4년 안에 빵가게를 차려서 월급을 갖다 주겠다고 약속하셨으니 그 절박함의 힘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돈을 벌려면 빵보다는 단가가 높은 케이크를 만들어 팔았어야 했을 텐데 왜 지금이나 그때나 빵만 만드시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가게 오픈하고 나서는 케이크도 만들어 팔긴 했어요. 근데 제가 먹어도 맛이 없는 걸 손님한테 어떻게 팔아요(웃음)

사실 학원에서는 케이크를 먼저 배웠는데요, 그때 주변에서 소질 있다고 막 칭찬을 했어요. 근데 제가 만들 걸 아무리 퍼먹어 봐도 맛이 없더라고요. 파티셰 복장 입고 깔끔 떨면서 만드는 게 저하고 별로 맞지도 않고요.

 빵 만드는 친구들을 보면 파티들하고는 딴판으로 하얀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온몸을 부딪혀가면서 일하더라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쪽으로 점점 빠져들어갔어요. 그때부터 제 스타일이 빵 작업과 더 맞다는 걸 알게 되었죠.


Q 6. 가게를 처음 오픈하기 전에  홍대 앞의 <리치먼드 제과점>과 압구정동의

<정글짐> 베이커리에서 일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굉장히 핫했던 곳들이었어요. 지금도 인터넷에 <정글짐> 양파빵 먹고 싶다는 글들이 보일 정도로요.


네. 굉장히 센세이셔널한 이었어요. 그땐 대부분 빵집들이 케이크 파트가 훨씬 비중이 컸었는데 <정글짐>은 반대로 빵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어요.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빵들을 정말 많이 만들었죠. 알고 보니 일본의 장인한테 코칭을 받고 있던 가게였어요. 그때 거기서 천연발효빵 레시피를 처음 접하게 되었고 '아, 저렇게도 빵을 만드는구나' 싶었죠. 생각해 보면 그때가 저한테는 하늘에서 주신 선물 같은 시간이었어요.

제가 퇴사할 때쯤 <정글짐>을 운영하던 친구가 저한테 와서 부탁을 하더라고요. 목숨 걸고 이 빵집을 해왔는데 아무래도 오래 못 갈 것 같다며 천연발효빵 레시피가 몽땅 들어있는 플로피 디스크를 주면서 저더러 좀 보관해 달라고 했어요.

오늘 처음 말하는 건데, 지금도 <오월의 종>에는  <정글짐>  레시피 그대로 만드는 빵들이 몇 가지 있어요. 그 레시피를 전혀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만들어요. 그 시절 함께 일했던 동료들에 대한 일종의 고마움의 표시랄까요.

막걸리 치아바타와 100%호밀곡물빵
어니언 포카치아

Q7. 그렇지만 지금과는 달리 당시엔 식사빵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었을 때라 아무리 건강에 좋다 해도 천연발효 빵만으로 돈을 벌기는 참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저도 잘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긴 했었지만 그렇게까지 안 팔릴 줄은 몰랐어요. (웃음)

그 시기가 또 우연히 파리바게트가 동네에 막 들어오기 시작할 때였어요. 그런저런 일들이 겹쳐서 결국 3년 만에 망했습니다. 망했다는 건 월세를 못 내는 상황이 계속되다가 보증금을 다 까먹어서 '제로'가 됐다는 뜻이죠.

 

Q8. 앞이 캄캄했을 것 같아요.


그렇지는 않았어요. 남의 가게에서 또 직원으로 일하면 월급을 받을 수는 있으니까요. 뻔뻔하게 버티는 거죠. 계산을 해보니까 빚만 한 1억 2천 정도 나오더라고요.


Q9. 20년 전에 1억 2천이면 굉장히 큰돈인데요.


크죠.  그러던 차에 저희 가게 단골이셨던 분이 오셔서 이태원에 괜찮은 가게 자리가 나왔다고 한번 가보라는 거예요. 전 별로 귀담아듣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새로 가게를 얻을 돈이 한 푼도 없었거든요. 근데 그분이 빵 사러 올 때마다 저한테 갔다 왔냐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래서 다녀왔다고 얘기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한번 가봤죠.

근데 그날 희한한 일이 벌어졌어요.

가게를 둘러보고 돌아서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쫓아오더니 뭐 할 거냐고 물어요.

그래서 "빵집이요. 근데 돈이 없어요" 그랬더니 "빵집 좋지. 돈이 얼마나 없는데?" 하고 물으셔요.

하나도 없다고 말했죠. (웃음)  

"잠깐 들어와 봐." 하시길래 부동산 사무실로 따라 들어갔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어디론가 전화해서 "아니 가게 빨리 빼야 되는데 권리금을 이렇게 내놓으면 어떻게 해." 그러면서 권리금을 반으로 깎고 그 자리에서 저한테 5천만 원을 빌려주시는 거예요. 석 달 안에 원금 포함해서 은행 이자 갚는 조건으로요.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가게 보러 가서 1시간 안에 계약서를 썼어요.


Q9. 영화 같은 이야기군요.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 길로 같이 은행에 가서 서류작성하고 두 번째 가게를 내게 된 거예요. 죽기 살기로 했죠.

이태원 생활이 조금 안정되고 나서 제가 그분께 여쭤봤어요. 그때 저한테 왜 그렇게 해주셨냐고요.

그분이 대답도 되게 심플하게 하셨어요.

"내가 빵을 좋아해. 여기 빵집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잘됐다 싶었지 뭐"

이렇게 얘기하시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한 일이죠.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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