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헤비 스모커인데 그 친구랑 골목길에서 같이 쪼그리고 앉아서 커피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그러다 친하게 되었어요.
언젠가 그 친구가 "나중에 돈 벌어서 빵집 지으면 제가 설계 좀 하게 해 주세요" 그러더라고요.
그땐 "야, 나도 꿈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하고 지나갔었거든요.
근데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 거예요.
"나 빵집 지어야 돼." 그랬더니 바로 "어떻게 지어드릴까요?" 하고 물어요.
제가 제시한 조건은 딱 세 가지였어요.
창문을 내지 말 것.(그는 빵 만드는 공간에는 창문이 필요 없다고 덧붙였다)
오로지 빵을 만드는 공간으로 지을 것.
마지막으로 돈이 별로 없다는 거였죠.
그것 말고 디자인에 관한 건 아무 얘기도 안 했어요. 그 당시엔 이런 모양으로 나올지는 몰랐죠.
나중에 주변에서 들으니까 그 친구가 요즘 건축계의 '라이징 스타'라고 그러더라고요.
<오월의 종>을 설계한 김종유 씨는 건축사무소 오온대표의 대표로, 경리단길의
핫플레이스 '그래픽' 서점의 설계자로 유명하다. 한남동 <오월의 종>은 빵 공장과 매장이 있는 1층 공간과 2층의 사무실이 엘리베이터로 연결되어 있고 건물 가운데 중정이 있는 구조로 마치 베이커리와 갤러리가 합쳐진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솔직함이라는 열쇠
Q24. 지금까지 얘기를 듣다 보면 결정적인 순간에 참 좋은 운이 따랐다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하게 묻고 싶어요. 왜 이렇게 운이 좋은 것 같으세요?
제가 그런 것만 보는 것 같아요.
누구나 똑같아요. 언제나 나쁜 상황과 좋은 상황들이 섞여있는데 어디에 꽂혀 있느냐에 따라 상황이 다르게 보이거든요. 제가 고민하다가도 그냥 행복하다고 얘기하는 이유가요, 누가 절 도와줬던 거 생각하면 너무 고맙잖아요.
그렇게 하다 보면 당장 해결되지는 않아도 그 문제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것 같아요.
Q25. 사람을 사심 없이 대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빵집 하면서 첫 번째로 배웠던 게 솔직하자는 거예요. 제가 못하는 거, 약간 창피한 거, 능력이 안 되는 거 이런 걸 남들에게 솔직하게 보여주는 게 진짜 솔직한 거죠. 예를 들어서 어느 날 빵을 만들었는데 뭔가 부족해요. 근데 사시는 분들은 잘 구분을 못해요. 그럴 때 팔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참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그때 판매하면 안 된다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고 앞으로도 이것만큼은 타협을 하지 말자고 결심했었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솔직해져야 한다고 결정을 내렸던 시기였던 거 같아요. 그렇게 스스로 창피해지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다 보니까 내가 못하는 부분이 자꾸 채워져 가더라고요.
Q26. 솔직하려는 노력이 쌓이면 결국 실력이 되는군요. 하지만 살다 보면 정말 공들인 일이나 진실하게 대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세요?
예전에는 쫓아가서 똑같이 해줬어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웃음) 세상은 그렇게 살아야 돼, 이렇게 생각했죠. 그런데 지금은 '본인도 힘들 거다. 이렇게 하기까지 본인도 스트레스받고 고민을 많이 했겠지' 그러면서 넘어가요.
그러니까 솔직한 것도 자꾸 연습하고 그게 습관이 되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좀 편해져요.
어느 손님한테 제가 '오늘 이 빵 못 나가요." 그러니까 "왜 괜찮은데? 그냥 팔아. 내가 다른 사람한테 얘기 안 할게." 그러시는 거예요. 그때 "내일 오시면 제가 제대로 만들어드릴게요." 하고 말씀드렸어요.
그분은 "오늘 내가 빵을 못 샀지만 앞으로 저 사람한테 가서 빵을 사면 괜찮겠네"라는 생각을 갖게 되겠죠.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밀가루 묻히고 저 그늘에 가 앉아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쳐다보나 별로 의식이 안 돼요. 벤츠 타고 누가 앞을 지나가도 그 차에 탄 사람이 부럽지가 않아요. 오늘 나의 노동이 나한테는 가장 좋은 선물 같아요. 이렇게 살 수 있는 시간을 내가 보내고 있다는 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