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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떨기 May 20. 2024

57. 일기떨기

아빠가 몇 년 전에 수선해 준 구두를 신고 결혼식장에 가는 길




 주말 아침이면 아빠는 가장 먼저 집을 나선다.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다. 깊이 잠들지 못한 미카가 컹컹, 하고 짖으면 뒤이어 도어록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운동화 끄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엄마는 당장에 일을 찾기보단 모처럼 집에서 편히 쉬는 게 어떠냐고 했지만 그때마다 아빠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코로나 이후로 터미널이 봉쇄되었고 사람들은 버스를 타는 일마저 삼가기 시작했다. 몇몇 가게들이 차례로 문을 닫았고 30년 넘게 지켜온 아빠의 일터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구두수선을 하는 아빠를 제대로 본 건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 때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아빠가 자리에 앉아 라디오를 듣거나 난로를 쬐고 있으면 신발 뒤축이 뒤틀리거나 고향이나 어디 지방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가야 하는 손님들이 알아서 저절로 찾아오는 줄로만 알았다. 천안 가는 고속버스를 기다리면서 오면 가면 아빠가 일하는 걸 보기 전까지는. 뒷짐을 진 채로 슬리퍼를 들고 낯선 사람들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아빠. 터미널 대합실을 몇 바퀴고 빙글빙글 도는 모습. 이십 대 초반에는 내가 처음 보는 그 장면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져 버스 대신 지하철을 타기도 했다. 내가 먹고, 입고, 쓰는 돈의 출처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그런데 정작 코로나 직후에 취업을 하기 전에는 부러 집에서 멀지 않은 터미널로 가 문 닫힌 가게를 가만가만 보곤 했다. 문 닫힌 '구두병원'은 오랜 일터라고 하기에는 짐이랄 게 없었고 이런 점에서 나와 아빠는 꼭 닮았다. 언제든 떠날 사람처럼 굴지만, 좀처럼 그 어디로도 떠나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 이후 아빠는 물류업체 야간 근무조로 2년을, 고향 친구가 한다는 산업 현장에서 다시 1년 그리고 머지않아 유월에는 여수로 일을 하러 간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 짧은 틈에 자신의 시간과 맞바꿀 만한 일을 구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몇 번 주어지지 않을 짧은 휴식마저 즐기지 못하고 불안을 느끼는 부모를 보면 자꾸만 무력해진다. 자동차는커녕 면허도 없는 아빠는 오늘 어디로 가고 있을까.


 아빠가 몇 년 전에 수선해 준 구두를 신고 결혼식장에 가는 길, 사람들은 이제 마스크를 쓰지 않고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여기가 아닌 먼 곳을 향해 가는 것 같은데 아빠가 있던 곳은 여전히 봉쇄되어 그를 오지도 가지도 못하게 묶고 있단 생각이 들었고 이내 억울했다. 내가 돈이 드는 일에는 각각의 이유로 자격지심을 품고 있단 사실도 갑갑하게 느껴졌다. 최근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소진이는 참 구김이 없어”라는 말을 들었다. 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었고, 그가 보는 나의 어떤 면들이 아예 틀리다고 볼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순간만큼은 그 말을 하는 상대가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처럼 여겨지고 집에 가는 길에는 그 짧은 순간에 포착한, 혹은 내가 멋대로 오해한 말과 행동이 무례하단 생각이 들었다. 난 누군가가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미워하는 것보다 기꺼이 이유 없는 건넨 호의 앞에 더 삐딱하게 구는 사람인데. 내가 꽁꽁 숨긴 나머지 나도 자주 마주치지 않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아빠 얼굴이 생각나는 건 내가 비겁한 사람이기 때문이겠지.


 한때 흥선대원군의 별장이기도 했다는 석파정 결혼식은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했다. 예식이 끝난 직후에는 널따란 풀밭에서 코스요리를 즐기기도 했다. 은으로 된 반짝이는 포크와 나이프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음식들 살짝 미지근한 온도임에도 떫지 않은 커피까지. 시선을 두기 좋은 아름다운 것들이 참 많은 곳이었음에도 내가 자꾸만 힐끔댔던 대상은 바로 맞은편에 앉은 바이올린을 연주자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악기를 전공한 듯한 딸이었다. 운전을 해야 하는 아버지는 와인을 입에 대지 않으면서도 딸이 마시는 와인을 유심히 살폈고 틈틈이 딸 친구들의 안부에 대해서도 물었다. 외국에 있는 친구들, 진짜 외국인이거나 아직 유학이 끝나지 않은 이들. 그 대화마저도 익숙해질 순 있어도 이해하긴 어려운 클래식 같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에도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 있을 아빠를 떠올렸다. 이날은 구두가 조금 불편하단 이유로 결혼식에 가는 길에 아빠를 생각하며 휴대폰 메모장에 일기를 쓰고, 예식장에서 받은 꽃을 한 아름 안고 돌아오는 길에도 아빠를 생각했다. 그런데도 정작 집에 와서는 소파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아빠에게 아무런 말도 걸지 못했다. 나의 한없이 삐딱한 마음을, 세상의 그 누구도 좋아해 주지 않을 태도를 밑창부터 뜯어내 수선해 줄 사람도 아빠일 텐데 내 곁만은 떠난 적 없는 사람을, 그가 나를 조금 더 사랑한다는 이유로 내 마음에서 멀리 보냈다. 




화 주제

■ 일기떨기 녹음 전에 아빠에 관한 얘기를 쓰고 지운 적이 많았어요. 이 방송이 3년 차에 접어들었고 그사이 저희 집에도 여러 변화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내가 누군가의 삶에 대해 말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설령 부모나 형제 같은 가족이라 해도요. 그런데 최근에 아빠 또래의 시인 두 분과 작업을 해서 그런지 줄곧 아빠 생각을 했어요. 제가 보기에 가장 시적인데 시를 쓰지 않는 사람을요. 혜은도 최근에 아버지가 눈을 다치셨잖아요. 어릴 때 아빠는 어땠는지 얘기를 해보면 어떨까요?

■ 코로나 이후로 저한테 가장 상처가 되었던 말을 꼽자면 "여차하면 쿠팡 가서 하루 일하면 돼" 이거였어요. 뒤따라 오는 말이 "그런데 거기 갔다오면 병원비가 더 들어" 이거였거든요. 그 회사의 경영 방식이나 노동자의 보호하지 않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하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생계가 달린 일이기도 했고, 아프고 싶어도 아파서는 안 되는 사람들도 있는데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하는 말들은 아플 때가 많더라고요.

■ 엄마랑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최근 노인 빈곤을 다룬 다큐멘터리에도 자주 나왔던 표현인데요. 지금의 우리 부모 세대가 부모를 마지막으로 봉양하고, 자식에게는 부양받지 못하는 첫 번째 세대일 거란 말. 그 말에 반박할 순 없겠더라고요. 헤은도 부모님의 노후에 관한 구체적인 생각과 나의 포지션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을까요? 전 당장에 돈을 많이 벌어다 주는 자식은 엄두가 안 나지만, 막연히 내가 배우자가 없고 자녀가 없다면 부모님의 식사 정도는 책임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적은 있어요. 내가 책임질 것들을 늘리지 않으면서 후에 있을지 모를 책임에 미약하게나마 대비하고자 했달까요.


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s://podbbang.page.link/N3KgWN9A42RCnsLw6


일기떨기 03. 소진

낮에는 책을 만들고, 밤에는 글을 씁니다.

그 사이에는 요가를 하고요.

  일기떨기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illki_ddeol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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