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란의 독일 일기
“독일에는 시인이 없어요.”
철학자를 그렇게나 많이 배출한 나라에 시인이 없다. 우리의 언어로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없다는 이유로. 독일의 시인을 없앤 건 루마니아 출신의 시인 ‘파울 첼란’이다. 독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세계 2차 대전 때 나치에 의해 부모님이 학살됐다. 그는 시를 쓰고, 대학교에서 독일어 강사 일을 하며 살아갔는데, 내 부모를 죽인 이들의 언어로 자신이 살아가는 것에 대한 괴리와 고립감, 좌절, 절망 등이 깊었다. 그는 독문학 역사상 최고의 시인 중 한 명이며 20세기 독어권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히지만, 그는 자신의 모순을 이기지 못하고 49세, 파리 센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그의 시가 주는 언어의 무게를, 그 죗값을, 독일 시인들은 오롯이 느낀다. 베를린에 도착한 이틀 후에, 나는 이 이야기를 독일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박’ 교수님에게 들었고, 그 후 한 달간 독일에 머무는 동안 그 말이 나를 떠나지 않았다. 여타의 마감을 친 뒤에는 결국 가슴을 꾹 누르고 있었던 단 한 줄로 단편 소설을 썼다. 이곳 사람들이 느끼는 언어의 무게,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가지는 언어의 권력, 이곳에서 사는 이민자들, 독일에서 나고 자랐으나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 소속과 연대, 정체성과 자아, 위치와 권위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독일에 머무는 한 달은.
나흘 정도 베를린에 머물며 『천 개의 파랑』 저자와의 만남 행사를 마친 뒤, 레지던스가 있는 뮌헨으로 넘어갔다. 그곳에서 서수진 작가님과 기타리스트 이태훈 님과 함께 생활했다. 내가 머문 레지던스는 뮌헨의 동부 끝자락에 위치한 파싱(pasing)이란 지역인데,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판교의 느낌이랄까. 히틀러가 계획한 기획 도시라는 뮌헨은 독일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동네였고, 그 명성에 맞게끔 벤츠 본사와 구글 지사의 회사들이 몰려 있었다. 그중에서도 파싱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도시로, 굉장히 작고 동화 같은 도시임에도 여의도 공원에 버금가는 크기의 공원이 있었고, 교회와 학교, 지하철역에 바로 붙어 있는 쇼핑센터에는 이케아부터 시작하여 크고 작은 대형 슈퍼만 다여섯 개, 각종 브랜드까지 다 들어와 있는 큰 곳이었다. 레지던스가 아니면 이런 곳에 언제 살아보겠는가 싶었다.
처음 며칠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오전 내내 일한 뒤 점심을 먹은 뒤에는 마리엔 광장이 있는 뮌헨 시내에 나갔다. 미술관, 박물관을 날마다 하나씩 둘러보던 일정. 한 달을 어떻게 해야 후회 없이 지낼까, 생각하며 여러 루트를 짜 움직였는데 결국 정착한 곳은 파싱의 공원이었다. 박물관도 좋고 미술관도 좋지만, 제일 좋은 건 해가 길어 밤 9시까지 밝은 독일의 하늘을 마음껏 즐기는 거였다. 왕 큰 강아지들이 줄도 없이 뛰어놀고, 풀밭에서 책을 읽거나 손을 잡고 거니는 노부부를 보는 것이 제일 즐거웠다. 그 속에 우두커니 있는 내가 좋았다. 빠르지 않은 속도로 달렸다 쉬기를 반복하며, 그렇게 2시간을 돌면 공원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문화부 직원들이 독일의 맥주와 와인에 대해 설명해 주셨지만, 한국에서도 술을 안 먹은 지 언 2년. 비교군이 없으니 마셔봤자 이게 정말 맛있는 술이라는 걸 모를 게 뻔해서 독일에서 술은 미련 없이 포기했다. 맛있는 거 다 먹어야지! 하고 야심 차게 간 독일이었으나, 세계적인 독일 명성답게 맛있는 게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제일 맛있는 건 파프리카, 토마토, 오이. 파프리카와 토마토는 달았고, 오이는 수분기 없이 버석버석한 식감이었으나 오히려 그게 입에 더 맞았다. 아, 요구르트도! 도중에 잠시 들렸던 그릭 요구르트의 본고장 그리스에 비하면 독일 요구르트는 평범했지만 그래도 한국보다 요구르트의 선택지가 많아 좋았고, 매 끼니마다 요구르트를 먹은 듯. 한 달 다 되도록 한식이 끌린 적이 없어서 정말 나는 어쩌다 한국에서 이런 입맛을 가지게 된 걸까, 싶었다.
이곳에 있는 동안 가장 크게 얻은 것이 있다면 동료다. 특히 함께 생활했던 서수진 작가님과는 작가 생활과 삶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두루 나누었다. 우리는 아테네와 미노코스섬을 거닐며 우리의 삶과 곤궁과 작가와 글, 휴식과 사랑에 대해 떠들었다. 기원전 3천 연경의 신전들을 바라볼 때, 수진 작가님은 이미 사라진 것들을 애도했고 나는 남은 것들의 미래를 생각했다. 그래서 수진 작가님은 현재를, 나는 미래를 쓰는 건가 보다, 하고 둘이 웃었다.
한 달 동안 해외에 머물면 무언가 엄청나게 많은 생각과 정리가 있을 줄 알았지만, 특별하게 달라진 건 없었다. 그저 나는 어딜 가서도 이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확신만 얻었다. 매일 같이 새벽에 일어나 오전에 일을 하고, 오후에 운동하고, 저녁이면 음식이 앞에 놓여도 먹지 않는 나를 보며 수진 작가님이 대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그렇게까지 할까, 싶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한동안 대답하지 않다가 떠나기 며칠 전, 그러니까 어제 나지막이 작가님께 말했다.
“작가님 저는 사실, 불안증이 있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별로 당황하지 않고 쫓기지 않고 평온을 유지하지만, 사실 그건 제가 불안을 밟고 강박적인 루틴으로 제 하루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에요. 불안이 심하면 잠이 안 와서 불면증에 오래 시달렸거든요. 잠을 못 자면 너무 끔찍한 생각들만 떠오르고, 무언가 무서워지면 걸어가다가도 숨이 막혔어요. 그게 싫어서, 그 불안을 누르려고 이렇게 산 지 4년이 되어가요. 강박이 생겼다는 거 알지만 깨고 싶지 않아요.”
그러자 수진 작가님이 말했다.
“불안을 에너지로 잘 사용하네요. 좋은 거예요.”
고가 다리를 건너며, 툭 던진 수진 작가님의 말이 되게…… 좋다. 사람은 각자 다른 에너지를 품고 있는데, 나는 불안이다. 불안이 나를 움직이게 하고, 공부하게 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끔 한다. 아마 한동안은 더 이렇게 살지 않을까. 독일이든, 한국이든, 지구 어디에서도, 우주 어디에서도.
이제 엄마랑 아빠랑 언니가 보고 싶다. 특히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 아빠랑 언니는 메신저로 자주 연락하는데 엄마는 아니니까. 소식을 주고받을 수 없지만 내가 움직이면 볼 수 있는 곳에 엄마가 있다는 게 좋다. 내가 세상 한 바퀴를 다 돌 때까지 엄마가 그 자리에 있어 줬으면 좋겠다. 그럼 난 정말 어디든, 아무 멀리라도 겁내지 않고 다녀올 수 있는데.
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s://podbbang.page.link/N3KgWN9A42RCnsLw6
일기떨기 02. 선란
『무너진 다리』 『어떤 물질의 사랑』『천 개의 파랑』『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나인』『노랜드』를 썼습니다.
환경파괴, 동물멸종, 바이러스를 중심으로 SF소설을 씁니다.
일기떨기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illki_ddeol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