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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떨기 Feb 02. 2024

52. 일기떨기

S와 다시 만난 건 꼬박 5년 만이었다.





“언니랑 선배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그건 아니었다. 외려 아무런 일이 없었기 때문에 서로를 만나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것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그런 S와 다시 만난 건 꼬박 5년 만이었다. 내가 워킹홀리데이를 가기 직전에 동아리 언니 한 명과 함께 을지로에서 만났던 게 마지막이었으니 정확한 셈법이었다. 그날 점심으로 먹었던 수제버거 가게는 소리소문없이 망한 듯했고, 여기가 유명하다더라 하고 갔었던 카페 <호랑이>는 아무개의 말마따나 아직도, 여전히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오늘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고 철저한 약속 끝에 이루어졌다. 독감에 걸린 S가 한 번, 때아닌 한파를 핑계로 내가 한 번 이렇게 약속을 두 차례나 미룬 뒤에야 우리는 합정 우동집에서 마주 앉았다. 처음에는 너도, 나도 변한 게 하나 없는 것 같다며 서로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런 다음에는 각자 지금 하는 일에 대해서는 어색할 만큼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도 지금 만나는 사람이나 자주 보는 친구들에 대해서는 자꾸만 말을 아꼈다. 그때 S가 카톡을 주고받을 때 했던 얘기를 다시 꺼내기 시작했다. 내가 메신저랑 SNS 둘 다 보이지 않길래 자기를 차단한 줄 알았다는 말. 한동안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생각하다 내 블로그가 생각이 났고 오래 고민한 끝에 메시지를 남겼다고 했다. 실제로 S가 남긴 방명록은 안부라고 하기에는 어색하기만 했고, 애틋하다고 하기에는 둘 사이 접점이라고 할 게 없었다. 우연히 내가 블로그를 하던 게 생각이 났고, 자기가 불편하지 않다면 연락을 줬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하단에는 휴대전화 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걸 보자마자 S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너, 뭐 해?”     


 반가웠다. 꽤 오랜 시간 안 만났다는 게 민망할 정도로 그 연락에 반가웠고 당장에 약속을 잡았다. S와는 대학 내내 학과 생활부터 동아리 활동까지 함께했으니까. 왕복 3시간 넘게 통학하던 내게 S의 자취방은 내 집이나 다름없었고 때가 되면 쓰던 칫솔을 새 걸로 바꿀 정도로 익숙한 장소였다. S의 카톡 배경에 꽃비 사진과 함께 그 옆에 액자보다 더 작은 유골함이 놓여 있는 걸 보고 한동안 마음이 먹먹하기도 했다. 대학 때 S가 입양했던 페르시안 고양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왜인지 조금 늙어 있었던 그 고양이.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았던 꽃비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일어난 아침에 내 다리를 꾹꾹 눌러주던 게 생각났다. 뒤이어 S와 다른 친구 L과 함께 동생들을 한 명씩 데리고 여섯 명이 오사카와 도쿄를 9박 10일간 다녀온 것(지금의 나는 절대 못 할 일이기도 하다)부터 차라고는 녹차밖에 모르던 내가 S의 자취방에서 다즐링, 루이보스, 캐모마일, 얼그레이까지 차를 즐기는 법을 알아갔던 일. 천안역 근처에서 영화 「변호인」을 보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까지. 우리는 가족보다 더 가깝게 지냈기에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던 걸까. 우동을 먹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자리를 이동하지 않고 차를 한 번 더 마시는데 S가 말했다. “나는 그 시절이 아쉽거나 후회되지 않고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다”고. 그 말에 나도 마찬가지라고 답하면서 불현듯 내가 누군가를 정말 미워한 적은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그 누구도 나를 미워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을지 모른단 생각에 곰곰 울적해지다가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다시 또 수긍하게 되었다.




화 주제

■ 누군가와 예상하지 못한 재회를 한 적이 있나요?

■ 요즘의 친구관계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 언제고 용기를 내 연락하고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


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s://podbbang.page.link/N3KgWN9A42RCnsLw6


일기떨기 03. 소진

낮에는 책을 만들고, 밤에는 글을 씁니다.

그 사이에는 요가를 하고요.

  일기떨기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illki_ddeol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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