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필요
4월에는 홍상수 감독의 신작 <여행자의 필요>를 봤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영화를 예매하려는데 마지막 주 수요일이었고, 마침 또 영화의 개봉일이었다. 9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과 채 열 명이 되지 않는 등장인물 그리고 이자벨 위페르. 아트나인에 도착하자마자 영화 티켓을 발행하고 휴대전화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어딘가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을 때마다 막걸리를 마시는 이자벨 위페르를 보는 내내 나는 영화에 몰입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라고는 불란서에서 온 여자 이리스, 이자벨 위페르가 한국 여성 두 명에게 자기만의 교습법으로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포스터 한 장에 영화의 모든 줄거리가 적힌 이번 작품은 이번에도 최소한의 대사와 장면만이 주어졌겠지. 손바닥 만한 노트와 모나미 펜 하나로 수업을 하는 이리스는 프랑스어를 가르쳐본 경험도, 언어 교습에 대한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다면서 자기 나름대로 언어를 가르치는 일에 대해 시험을 해보는 중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지금은 몇 시입니까?” 내지는 “이것은 무엇입니까?”와 같은 단순 회화 연습을 피하고 지금 느끼는 감정에 대해 묻는다. 피아노를 칠 때의 기분은 어떤지, 그런 자신을 보며 자랑스럽다고 느끼는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처음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게 마냥 즐겁고 멜로디가 아름다운 것 같다고 말하는 학생들은 점점 더 설명할 수 없는 자신의 마음과 마주하게 된다. 그럼 이리스는 학생들이 떠듬떠듬 이어나가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그들의 말과 생각들을 프랑스어로 노트에 옮겨 적은 뒤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서 돌려준다. 아무도 없는 불 꺼진 방에서 혼자 천천히 읽어보라는 말과 함께. 이것이 바로 여행자의 필요, 그리고 내가 4월 내내 받고 싶었던 질문들이기도 했다. 이제는 스스로 건넬 수 있는, 건넬 줄 아는 질문들이라 생각하고선 묵혀 두었던 시간이 너무 길어진 걸까. 누구를 만나도 답답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 시간이 이어졌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이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그렇다면 내가 자랑스럽게 여겨지는지. 뭐 하나 시원한 대답을 내놓기가 없는 처지가 서럽다가도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마주할 자신이 없어 쪼그라든 마음이 좀처럼 펴지질 않았다.
대화 주제
■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근황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 최근 자신이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 이제 곧 5월인데요. 상반기는 어땠고 다가올 하반기에 대해서도 얘기해 주세요.
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s://podbbang.page.link/N3KgWN9A42RCnsLw6
일기떨기 03. 소진
낮에는 책을 만들고, 밤에는 글을 씁니다.
그 사이에는 요가를 하고요.
일기떨기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illki_ddeol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