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평화 Dec 20. 2015

사람이 사람을 사람하다. 이레

과거를 사람하다

    "너 나랑 친했잖아......"

 시저가 루비콘강을 한참 건너고 있을 때 스마트폰을 쥔 내 왼손의 손목 어림을 손가락 2개로 톡톡 건드리며 그녀가 말했다.

 제주행 비행기 통로 쪽 자리에 먼저 앉았다가 창쪽자리로 가려는 그녀를 위해 잠깐 일어났을 때도 머리에 올려 쓴 커다란 왕잠자리 선글라스만 힐끗 보았었고, 몸을 부스럭 거릴 때 날듯 말듯한 화장품 냄새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통로 쪽으로 돌리고 손바닥 위의 화면만 보았기 때문에 한참 꼼지럭이던 움직임이 잠깐 동안 정지했었다는 것도 그 터치 직후에 알았다.


  "우리 검도장에서 타이어 끌고 놀았잖아.."

 내 이름을 부르며 얘기하는 그녀를 향해

 "아 맞다.. 검도장 딸.. 반갑다"

 그녀의 이름도, 언제적 일인지도, 그 사람이 정말 이 사람이 맞는 지도 모르겠다는 당혹감을 덮는 어색한 웃음기를 머금고 말했다.

 내가 추정하는 기억의 JPG화일은 소녀가 던진 돌멩이에 기어코 눈물이 맺혔던 국민학교 저학년의 나였다. 전후 사정은 전혀 기억나지 않고, 소녀의 얼굴조차 희미하지만 눈가에 맺힌 눈물에 반사하던 몇 가닥 햇살만은 눈부셨었다. 검도장과 타이어는 죽도를 든 사람들의 기합소리가 효과음으로만 남아 있는 정도였었다.


  "네가 날개 달린 이야기를 무섭게 해서 내가 맨날 울었던 거 아냐......아.. 그때 같이 놀던 근구는 요즘 뭐해.. 내가 서울로 전학 가고 20년만인가 30년 만인가? "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것 같은 폭풍질문을 얼버무리며 대답할 때 그녀가 또 말했다.

 "처음에 얼굴은 긴가 민가 했는데, 너 손가락 파도타기 버릇 보고 딱 알아봤지.."

 얼마 전 집사람이 어린 아들도 무의식 중에 손가락 움직거리는 모습이 똑같다고 놀린 적이 있었던 그 버릇인가 보다.


 하늘에서 만난 과거의 나는, 그녀의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괄괄하고 거친 말투에 의하면, 개구쟁이에 지독한 어린 이기주의자고 이야기 잘하는 못된 아이였다.

 "그래도 그 때가 정말 재미있어서, 전학 가기 싫었었는데.."

 작은 몸을 살짝 움츠리며 말했다. 여성 특유의 디테일 한 기억력에 거듭 놀라고 있을 때 비행기가 착륙하였다.


 "아~들~! 엄마 왔어......"

 그녀가 '솔'음의 콧소리로 제주의 무슨 국제학교에 다닌다는 아들과 살가운 통화를 하고 있을 때, 크고 약간은 튀어나온 눈가의 잔주름을 가볍게 응시한 채로 눈 인사를 하고 먼저 나왔다.

 심지어 이름조차 물어보지 못하고 나오는 길에, 우르르 몰려 나가는 사람들 틈에 섞여 얼마 전 집사람이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 정말 속상해.. 오늘 아들 녀석이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면서 제일 앞에서 줄 서 있는데, 어떤 조그만 여자애가 자기자리라면서 애 팔을 확 잡아채는 거야.. 아들놈은 장난치다가 깜짝 놀래서 자리를 비켜주는 거야.. 얼마나 속상하던지.. 그 여자애 엄마도 놀라서 그러면 안되다라고 하기는 했는데,, 어째야 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