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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Apr 24. 2019

프랑스 가정식은 돈주고 먹으면서 집밥은 왜 대충 차릴까

4월 넷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식탁

 화요일 늦은 밤. 교토에서 서울로 돌아왔고, 다음 날 아침이 밝기가 무섭게 일정이 있었다. 우수에 담근 장을 된장과 간장으로 가르기 위해 불광역 서울혁신파크로 나섰다. 장을 담그던 날에도 춥긴 했지만 비는 없었는데, 이번에도 최고의 날씨에 장을 가르게 되었다. 일본에 가기전에는 얇은 코트가 필요한 날씨였는데, 어느덧 코트가 어색하다. 

 리마의 사범과정을 수료하고, 교토에 다녀오며 생각이 많았다. 다행히도 알아서 생각을 잘 정리하는 편이라 금방 마음을 정리했고 간절히 다시 주방에 서고 싶었다. 나의 색을 담은 나의 마크로비오틱 밥상을 차리고 싶었다.

 계절이 바뀌고 새로운 재료들이 눈에 보인다. 조금 이른 햇감자가 장에 나왔다. 아직은 감자를 먹기에는 이른 계절. 감자보다는 양의 성질을 지닌 당근을 함께 사용해 당근페스토에 버무린 감자샐러드를 만들어 보았다. 초여름의 날씨에 가까워지며 여름철 작물도 보이기 시작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너무 앞서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다가올 여름을 무난히 보낼수 있다. 

 두릅처럼 사람 애를 태우는 채소도 또 있을까. 특유의 향과 식감을 기대하며 두릅철을 기다리지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시기는 2주 정도 되려나. 두릅을 마음껏 즐기고자 레시피를 바꾸어가며 두릅과 딸기마리네이드를 자주 해먹곤 한다. 이토록 사치스러운 채소를 데쳐서 초고추장에만 찍어먹기에는 너무나 아쉽다. 두릅은 지용성의 비타민을 많이 지니기에 기름과의 궁합이 특히나 좋은 편이기도 하다. 앞뒤로 노릇하게 기름에 구워 낸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마리네이드 소스에 재워두면 굳이 데쳐 찬물에 담그지 않더라도 살릴 맛은 살리고 잠재울 맛은 잠재워 두릅을 즐길 수 있다.

 가는 계절이 아쉬워, 한창 쑥향이 좋을 때에 쑥페이스트를 만들어 두었다. 제주산 무농약 레몬으로는 레몬청을 만들어 두었다. 이렇게 만들어둔 저장식품들로 정말 오랜만에 머핀을 만들어 본다. 직접만든 쑥페이스트와 팥앙금으로 만든 쑥머핀, 직접 만든 레몬청과 집에서 키운 로즈마리를 넣어 만든 레몬&로즈마리 머핀. 다른 곳에서는 맛볼수 없는 사치스러운 디저트 아닐까. 이 사치스러운 디저트는 조카 품으로 돌아갔다. 편의점, 마트 과자는 도무지 먹이고 싶지 않다. 내 딸, 내 조카가 아니더라도, 어린이들이 가짜 음식들에 익숙해져 가고, 진짜 음식들에 어색해져 가는 시대의 흐름을 조금이나마 막을 수 없을까하는 고민은 여전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름같은 날이 되었다. 외투가 없어도 충분하다. 아니 오히려 낮에는 땀이 나기까지 하다. 

 날이 더워 지니 이 계절에 걸맞는 밥상을 차리고 싶었다. 햇양파가 들어왔으니 본연의 햇양파 맛을 극도로 끌어올린 음식을 먹어야지. 베이컨,  부이용 등으로 양파 향을 감추지 않고 군더더기 없는 재료와 양파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햇양파스프를 만들어본다. 갓 나와 세상 보들보들한 비름나물은 된장에 무치고, 아직 생야채를 먹기에는 이르니, 적채는 소금에 절여 프레스 샐러드로 만든다. 찬 성질의 토마토는 양의 성질이 강한 건어물과 함께 졸여본다. 몇달전만 해도 엄두가 나지 않던 여름철 식재료들이 몰려나왔다.

 필수반찬 김치도 옷을 갈아입는 철. 아직 얼갈이가 여리디 여리다. 풋내가 날새라 조심스럽게 씻고 절여 햇양파와 함께 담그는 물김치. 다가올 계절에는 물김치에 메밀면만 담가 먹어도 한끼가 든든하지. 메밀면과 함께 물막국수를 해먹을 날을 기다리며 들뜬 마음으로 김치를 담갔다.

 감자철이 오니 마요네즈도 자주 해먹겠지. 기존에 만들어두었던 두유 마요네즈레시피를 조금더 음양의 밸런스가 맞게 레시피를 개량했다. 마요네즈도 만들었겠다, 감자샐러드를 만들어 보았다. 이번엔 붉은 색이 고운 비트와 함께. 장마와 완두콩을 버무려 함바그를 빚고 여기에 갓만든 비트감자샐러드, 콩조림, 취나물 유부조림도 곁들여 또 다시 한 상을 차려본다.

 조금은 손이 갈 수도 있는 나의 집밥. 집에서 혼자 먹는 밥이지만 조금 더 가치 있는 한끼를 만들어보려 하고 있다. 외식 메뉴나 요리교실 메뉴로 ‘일본 가정식’, ‘프랑스 가정식’은 종종 눈에 들어오지만, 우리의 가정식은 여전히 일부러 찾아 먹거나 배우러가는 음식에서는 거리가 있다. 집밖에서는 도산공원 일대에서 근사한 프렌치를 사먹지만, 집안에서는 냉장고 속 반찬을 꺼내 락앤락에 들어있던 채로 내거나, 전자렌지에 급히 데운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그것도 직접 만든 음식이라면 양반이지, 재료의 출처,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기 어려운 음식들이 식탁에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 식탁에 오른 음식에 자부심을 갖지 못한다면, 주방에서 멀어지기 마련이고, 어디에서 온것인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알 수 없는 먹거리에 삶은 압도되어 갈 것이다. 


 요즘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식탁에 자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집밥이라 보기에는 조금 다른 밥상을 차리지만, 달라서 적어도 나는 내 밥상에 자부심이 든다. 자랑거리가 되는, 조금 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그런 집밥을 차리고 싶고, 스스로의 집밥에 자부심을 갖는 개인이 늘어날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을 하며 2019년의 봄을 지내고 있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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