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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Jun 06. 2019

밥을 짓던 사람이 빵을 담은 식탁을 차리다

5월 마지막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식탁

어느덧 더워졌다.

리마에서 마크로비오틱 사범과정을 수료했던 4월. 아직 추운 날도 있어, 도쿄에서 담근 물김치가 익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랬던 날씨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제 낮에는 긴소매 옷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부담될 정도다.


그 동안,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첫째로 두달만에 팝업식당과 쿠킹클래스를 재개했다. 무, 배추, 마른 나물 등으로 채워졌던 팝업식당의 플레이트가, 봄에는 두릅, 햇양파, 햇감자 등으로 채워졌다. 비름나물과 오이소박이가 보이는 날도 있었다. 

 

둘째로, 옥상텃밭을 재개했다. 열매작물은 역시나 텃밭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작년의 결과로 깨달았다. 올해는 열매작물은 방울토마토만으로 줄이고, 쌈채소와 허브를 늘렸다. 허브는 마트에서 구하기 어렵거나, 막상 사면 쓸데없이 많은 양이 들어있어 난감한 재료 중 한가지. 여러종류를 키우면 필요할 때마다 원하는 양만 뚝뚝 끊어와 쓸 수 있어 편하다. 올해는 바질, 애플민트, 이탈리안 파슬리, 로즈마리, 딜을 키워보기로 했다. 

셋째로, 문토 ‘나와 만나는 주방’은 어느덧 세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이번 시즌에는 처음으로 남자 멤버들도 참여하고, 역대 최다 인원을 맞이했다. 시연이 아니라 요리에 익숙하지 않은 멤버들과 함께 요리를 하기에, 좌충우돌하는 일도 적지 않다. 5월의 모임에서도 부추전에 사용할 부추를 다소 길게 썰어 놓은 모습을 보고 함께 깔깔 웃기도 했다. 하지만 뭐 어떤가. 누군가와 함께 즐겁게 식탁을 나눌 수 있다는 기회가 적어진 요즘, 이렇게 웃으며 요리하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좀처럼 가질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팝업식당을 재개하며 시그니처 메뉴 ‘현미밥 플레이트’의 이름을 ‘마크로 플레이트’로 바꿨다. 마크로비오틱이라고 해서, 현미밥만을 주식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환경의 변화에 맞춰 주식을 바꾸는 것이 자연스러운 선택이며, 특히나 다가올 여름철에는 현미밥을 짓더라도 음의 성질을 살린 조리방법으로 짓는 것이 조화롭다. 오히려 오분도미, 보리를 섞은 현미밥을 또는 면, 빵이 어울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계절의 변화에 맞춘 음식을 내기 위해, 메뉴 이름을 바꿨다.


 마크로비오틱은 빵을 부정하지 않는다. 첨가물과 흰 밀가루로 빚어낸 체인점 빵이야, 현미밥에 비하면 과하게 음성으로 치우친 음식이지만, 천연효모로 자연스럽게 발효시켜 통곡물로 만든 빵은, 주식으로 먹기에도 부담되지 않는 조화로운 음식이다.


 다만, 이런 빵은 참 고민스러운 존재였다.

 첫째로, 이런 빵은 찾기가 어렵고 비싸다. 이런 빵이 비싸다기 보다는 대중에게 익숙한 빵들이 지나치게 싸다고 설명하는 편이 낫겠다. 재료로 사용한 밀, 버터 대신 사용하는 가공 지방, 감미료 등. 이렇게 대중에게 익숙한 빵의 재료는 더 저렴하게 다수의 배를 채우기 위한 고마운 연구의 집대성이었지만, 덕분에 자연스러운 재료로 자연스럽게 만든 빵에 대한 벽은 높아져 왔다.


 둘째로, 국내 소비자들은 흰 빵 또는 설탕과 첨가물로 부드럽게 만든 대형 체인 빵집의 빵맛에 익숙한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단팥빵, 소보로빵 등 디저트와 같은 달콤한 빵에 익숙하기도 하다. 이렇게 부드럽고 달콤한 빵에 익숙할 손님들에게 거칠고 산미가 있는 100%통밀빵을 낸다는 것은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는 우리 아빠만 해도 100%통밀빵을 드리면, 그날 아침식사는 간소하게 마무리 짓곤 하신다.

 하지만 구수한 현미와 채소 내음이 가득하던 나의 식당에는 천연효모로 발효해 통밀만으로 만든 빵이 어울린다. 곡물 본연의 향을 품고 뱃속이 편안한 주식을 내는 것. 빵이 되든 밥이 되든, 나의 식탁의 주인공이 되려면 이 조건은 갖춰야 한다. 이 조건을 갖춘 빵으로, 청담동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기욤베이커리의 천연효모로 발효한 100%통밀빵을 사용했다. 재료 한번 도도하다.  결국 내 식당에서 처음으로 빵을 담은 플레이트를 내었다. 


 이 주의 플레이트 구성.

  여름채소 마리네 오픈샌드위치

  완두콩 포타주

  감자와 템페구이 샐러드

  비트 후무스를 올린 애호박

  완두콩 후무스를 올린 감자

  참외 민트 코울슬로

 템페와 100%통밀빵 등, 익숙하지 않은 재료를 손님들이 즐겁게 받아 들였으면 했다. 다행히  슬슬 쨍한 빛깔의 작물이 늘어나고 있어, 다양한 색깔을 한 접시에 담을 수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처음 경험할 때에는 거부감을 갖기 쉽다. 하지만 그 거부감을 뛰어넘는 즐거운 경험을 동시에 갖는다면, 후자에 대한 기억이 더 짙게 남는다. 때문에 엑셀과 파워포인트에나 익숙했지, 미적 감각에는 자신이 있는 편이 아니지만, 익숙하지 않은 재료가 많이 등장한 이 날만큼은 화려한 플레이트를 내고 싶었다.


 그리고 도도한 빵을 담은 플레이트에 대한 손님들의 반응은 놀라웠다. 왜 그리 고집스럽게 빵을 골랐는지 알겠다, 유난히 속이 편했다, 또 빵을 담은 플레이트를 내어 달라는 감사한 의견을 전해주셨다. 


 만인이 나의 빵플레이트를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통밀빵은 흰밀빵보다 거칠다. 대중은 흰밀빵에 익숙하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빵만 먹었다 하면 소화가 되지 않는다고 토로하는 대중이 늘고 있다는 것 역시 현실이다. 빵은 먹고 싶지만 뱃속은 편안하게, 그리고 맛있게 먹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나 한번쯤 가져보지 않았을까. 금요일 토요일 이틀동안 이 플레이트를 맛보고 간 손님은 서른명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많지 않은 플레이트와 손님들의 반응에서 마크로비오틱으로 대중들의 숨은 욕구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보았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팝업식당, 쿠킹클래스 관련 공지는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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