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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Nov 27. 2019

부모님에게도 내가 없는 집이 편했다

11월 마지막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밥상

 내가 작업실에 있는 동안 부모님은 꽤나 편하게 지내시는 듯 하다. 악기 연주를 즐기시기에, 내가 집을 비운 시간에 혼자 연습을 하기 위해, 곧잘 내 스케줄을 확인하시곤 하는 아빠는 내가 출퇴근 선언을 한 이후로는 내 스케줄을 확인조차 하지 않는다. 아빠와 수면 패턴이 달라 서로 약간 고생을 하시던 엄마는, 내가 처음 작업실에서 자고 온 날, 냉큼 내 방에서 혼자 잤다. 일본에서 유학, 회사 생활을 하며 10년을 떨어져 지냈고, 이런 생활은 나 뿐만 아니라 부모님에게도 나름 편했을 것. 부모님은 다시 돌아온 둘만의 집에, 나는 나만의 공간에 내심 기뻐하고 있었다.

 며칠을 연달아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돌아온 나의 휴일 일요일. 오랜만에 내가 차린 음식이 없는 아침식탁을 받게 되었는데, 영 내가 먹을 것이 없다. 내가 먹을 반찬은 내가 만들어 왔으니, 내 취향을 고려하지 않은 반찬만 집에 있던 것이 문제였다. 달짝지근한 우엉조림과 마늘향이 강한 콩나물 무침을 포함해 무엇을 먹어도 마늘향… 

 일을 하지 않는 날을 만들고 싶어 일요일과 월요일에는 오랜만에 요리를 하지 않을 셈으로 장도 보지 않았으니 이 상황은 점심, 저녁에도 이어졌다. 지난주에는 내도록 일을 했으니, 오늘 저녁도 요리는 쉬고, 비상시를 위해 얼려두었던 만두와 함께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기로. 이런 것이 일한 뒤 느끼는 소확행이니...저녁에는 요가로 기진맥진해진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곧장 블로그에 쿠킹클래스 공지까지 올렸다. 그리고 기다려온 만두를 먹기 위해 냉동실을 열어보니, 내 만두는 지난주 엄마가 여행을 떠나 집을 비웠을때, 아빠가 드시고 없는 것을 보았을 때의 나의 마음이란….빈 둥지 증후군은 옛말, 우리집 어른 새들은 너무나 쿨했다…

 만추가 정점에 이르렀던 화요일. 장을 보러 합정 마르쉐에 다녀왔다. 몇달 전부터 겨울에 다시 먹고 싶다고 농부님께 따로 연락을 드릴 정도로 기다렸던 돼지감자를 사러 다녀왔다. 작년 겨울 그리고 올 봄 돼지감자의 매력에 푹 빠져 살았었다. 장아찌나 차 말고는 먹는 방법을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곧잘 듣지만, 돼지감자 특유의 음성 돋힌 향만 잘 처리하면 두루두루 잘 쓰인다. 특히 돼지감자 포타주는 그 맛이 일품! 부재료들을 조금 바꾸어 겨울철에 걸맞는 레시피로 바꾸어주니 식후에 온 몸이 따끈따끈하다. 작업실 근처에서 발견한 훌륭한 빵집의 캄파뉴와 함께 점심을 해결했다.

 집에서 요리를 하지 않으니, 나에게 꼭 필요한 반찬들이 집에 전혀 없다는 현실을 눈 앞에 맞닥뜨리고, 작업실에서 내 반찬도 조금 만들어 두기로. 애매하게 남아있던 우엉으로는 우리집 단골 반찬 우엉당근조림을 만들고, 드디어 시금치도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으니, 시금치로는 기름없이 만드는 나물을 만들었다. 

 제철재료를 사용하면 얼추 음과 양의 조화를 맞출 수도 있지만, 간혹 그 예외가 있다. 시금치가 그 대표 주자. 겨울철 잎채소의 대표격 같은 존재이니, 양의 성질을 지녔을 것 같지만, 꽤나 강한 음의 성질을 가진다. 그러니 겨울철 시금치를 사용할 때에는 마크로비오틱을 제대로 이해하고, 계절과 체질에 맞는 조리와 조미료를 사용해야 한다. 나물이라면 계절 따지지 않고 그저 참기름, 들기름을 들이 붓는 것도 썩 조화롭지 못하다. 

 대박 맛있는 애 하나 생산. 매생이와 연근으로 전을 부쳤다. 얼마전 담가 둔 깍두기가 있었더라면 그 조합이 기가 막혔을텐데. 너무나 아쉽다. 아니면 톡쏘는 동동주도 어울릴텐데...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어울리는 술이 생각나는 버릇은 여전히 없어질 생각을 않는다. 매생이의 성질을 잘 이해하고 필요한 전처리를 거치면 불순물 섞인 맛을 줄이고 깔끔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어느덧 나의 팝업식당 오늘의 마지막 영업을 앞두고 있다. 토요일 점심은 이미 예약이 마감되었고, 마지막 영업일의 메뉴를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요일 토요일 점심 저녁 모든 예약이 마감되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실 만한 음식을 내고 있는걸까. 분에 넘치는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식당 운영을 해왔다. 마지막인 만큼, 아쉽게 식사를 못하시는 분을 어떻게든 줄여보기 위해 다소 무리해서 예약을 받은 감도 없지 않다. 혼자하는 영업준비도 이제 하루만이 남았다. 평소보다도 많은 인원을 감당해야 하기에, 체력이 요구되는 하루가 될 예정이다. 작업실을 지켜주는 식물 친구들을 벗삼아 마지막 영업준비도 즐겁게 해보려 마음 먹어 본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팝업식당, 쿠킹클래스 관련 공지는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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