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연 Jan 06. 2020

우리집을 지킨건 밑반찬이었다

1월 첫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밥상

 2020년 첫 출근. 하루 쉬고 작업실에 갔더니 밥이 없다. 채식중에서도 곡물채식을 권장하는 마크로비오틱을 실천하며 빵,면 보다는 밥을 먹고 살았더니, 식탁에 곡식이 없으면 허전하다. 이 대신 잇몸. 꿩 대신 닭. 찬장에 숨어있던 아마란스의 식감을 살려 익히고 푸실리에 버무려 아마란스 파스타를 만들어 본다. 토핑한 감태의 바다향과 톡톡 씹히는 아마란스의 식감이 어우러져 명란 파스타를 먹는 듯한 기분이다. 

 레시피 정리를 할겸 혼자 작업실에 앉아 타자를 두드리고 있자니 출출해온다. 역시 파스타는 양조절이 어렵다. 또 양이 부족했나 보다. 냉장고 속 사과를 꺼내 만든 우아한 간식, 사과 칡조림. 사과의 단맛을 최대한 끌어내 그 어떤 감미료 없이 만드는 마크로비오틱 디저트이다. 탱글한 사과 젤리같은 매력적인 식감과 재료 본연의 우아한 단 맛을 지녔으니 이런 것들을 간식으로 먹고 살면 젤라틴, 색소가 가득한 불량식품 젤리는 거들떠 보지 않게 된다. 아이들 이유식으로도 좋으며, 일부 감기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마크로비오틱 전통 레시피 중 한가지 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어 또다시 서촌 나들이. 얼마전 개업해 나의 궁금증을 자극하던 발효식품 카페에 방문했다. 20대 시절을 일본에서 보낸 만큼 나에게 익숙한 일본식 발효식품을 많이 다루는 곳. 첨가물 없이 무농약 콩, 쌀로 만든 미소, 누룩소금, 유자누룩소금 등 다양한 제품을 다루고 있다. 수업에서 사용하지는 않지만, 첨가물 없이 친환경 재료만으로 만든 품질 좋은 조미료가 있다면 소개해드려보고자 한다.

 늘 가보고 싶던 효자동의 음식점에서 오랜친구와 금요일밤의 저녁식사. 농부님들과의 직거래를 통해 구한 친환경 재료를 사용한 이탈리아 가정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을 방문했다. 다양한 요리서적도 즐비해 요리하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곳이다. 친환경 제철 채소재료들을 구태의연하지 않게 풀어낸 요리에 감탄을 아낄 수 없다. 유기농산물은 커녕 채소와는 담을 쌓고 지내며 유학시절에는 2,3일에 한번씩 라면을 먹었다는 친구도 설거지하듯 뇨끼를 비웠다. 유기농산물이 환경에 이롭다, 제철채소가 몸에 이롭다고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무관심한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다. 새로운 것, 재밌는 것, 예쁜 것에 익숙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려면 그들이 원하는 매력도 갖춰야 한다. 육류와 가공식품 소비가 날로 늘어가는 요즘과 정반대의 길을 걷는, 마크로비오틱을 실천하고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때문에도 내가 사랑하는 마크로비오틱을 지키면서도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동물성 식품과 가공식품을 사용할 마음은  없다.)

 ‘겨울의 마크로비오틱’ 수업은 어느덧 3회차를 맞았다. 3회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다들 앞다투듯 복습을 하시고, 칼질도 제법 많이 느셨다. 첫 수업에서는 평소보다 시간이 걸리는 요리에 답답해 하는 반응을 보이시기도 했지만, 3회차가 되니 현미밥을 짓기 위해 압력밥솥을 사겠다는 분들도 생겼다. 

 3회차 수업의 메뉴 테마는 겨울철 저장반찬. 한번 만들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밑반찬, 발효식품, 수제 냉동식품을 배우는 날이다. 직접 톳을 다듬고, 엄마가 하는 일이라 생각했던 김치를 담그고, 명절마냥 함께 모여앉아 만두도 빚는다. 

 건강을 생각해 요리에 발을 담갔다가 멀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한번에 다양한 메뉴를 만들기 위해 일을 벌렸다가 수습이 되지 않아 넉다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리를 즐기고, 매일 주방에 서는 나도 한번에 다양한 메뉴를 만들때면 만드는 도중에도 고생이고, 끝난 뒤의 설거지도 감당이 안된다. 하지만 밑반찬, 발효식품 등 미리 만들어둔 저장반찬이 냉장고에 있다면, 한번의 식사를 위해 다양한 메뉴를 만들 필요가 없다. 바쁜 출근 시간, 또는 퇴근 후 저녁에도 냉장고를 지키는 저장반찬이 있다면 힘든 몸을 이끌고 시간을 쪼개어 식사준비를 할 필요가 없다. 엄마도 아빠도 일로 바빴던 우리집을 가공식품으로부터 지켜주던 것도 직접 만든 밑반찬들이었다. 이런 것들을 먹고 자랐기에 우리 자매는 간혹 마트에서 사온 냉동 돈가스를 튀겨주어도 자극적인 맛이 난다며 젓가락을 내려 놓았다. 

 때문에도 3회차 수업에서는 저장반찬을 알려드리고 싶었다. 이번 수업의 메뉴는 연근톳조림, 무말랭이 조림, 깍두기와 군만두. 많은 메뉴가 인기였지만, 이번 회차 인기의 정점을 찍은 메뉴는 군만두 아닐까. 고기, 인스턴트 향 가득한 냉동만두는 물론, 당면만 가득찬 채식만두와도 이별을 할 특별 메뉴. 설을 앞두었으니 가족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만두를 빚는 시간을 보내시는 것도 좋겠다.

 수업을 마친 저녁. 수업후 남은 김치양념과 양배추로 즉석에서 양배추김치도 만들어 두었다. 이 역시 우리집 냉장고를 지켜주겠지.

 주중에 지어두었다가 남은 아마란스로 또한번 파스타를 만들고, 베이킹 클래스 후 남아 찌글찌글해져가던 고구마를 구출해 포타주를 곁들여 저녁식사를 차린다. 낮에 양성이 강한 것들을 먹어서 그런지 음성인 것들이 당겨 아마란스 파스타는 레몬소금과 무첨가 두유로 레몬크림버전으로 만들어 본다.

 홀로 저녁식사를 하며 수강생들에게 받은 질문과 그들의 대화를 되짚어 본다. 첫회차 때 배운 메뉴를 몇번이고 돌려먹으며 냉장고 속 상비 반찬이 되었다는 이야기, 입맛이 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 집에 있는 기초 조미료를 바꾸었다는 이야기. 조금씩 달라지는 생활의 변화를 즐겁게 이야기 해주시는 모습에 직장인 시절 느끼지 못했던 벅차오름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수업을 한날이면 내가 무척 지쳐있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수업에 오신 분들과 즐거운 대화를 많이 나누기에 오히려 수업을 한날이 몸도 마음도 훨씬 가뿐하다. 

 다소 감성이 메마른 사람이기에, 막연한 새해 소망을 두는 편이 아니다. 원하는 일이 있으면 즉각 그것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그려왔다. 하지만, 막연한 소망을 두고 산다면 그 것이 이루어졌다고 깨달았을 때의 행복감은 무척 클 것만 같다. 이런 생각을 하며 새해를 맞이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이 때에, 오전중 수업을 찾아주신 분들을 떠올리며 한가지 새해 소망이 생겼다. 마음이 맞는 수강생,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에 변화를 줄 준비가 되어있는 수강생을 지금처럼만 만난다면 2020년에도 지금처럼 별탈없이, 즐겁게 수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쿠킹클래스 관련 공지는 블로그에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매거진의 이전글 2019년 마지막 마크로비오틱 비건 밥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