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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Feb 21. 2020

포틀럭. 영화에나 나오는 환상.

2월 셋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식탁

수업을 마쳤지만, 작업실을 떠나지 않았다. 빵가루와 튀김냄비를 꺼내고, 곁들일 샐러드를 만들기 위해 양배추도 자분자분 채썰어 소금에 절여두었다. 당근은 귤빛이 돌도록 익혀 잣을 뿌리고 밥과 섞어 주먹밥으로 만들어 본다. 내가 만들었지만 조금 귀엽다. 비를 뚫고 20년지기 친구들이 작업실을 찾아주기로 했으니 손님맞이 상차림이다.


 작업실에서 손님맞이를 자주 하며, 이렇게 하나하나 내가 차리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며, 포틀럭파티를 권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각자 한 품목씩 맡아 음식을 준비해 누군가의 집에 모여 음식을 나누는 포틀럭파티. 영화속에서 보면 참 따뜻하고 건강해 보인다. 하지만 30대 초반의 한국의 일반적인 직장인들의 포틀럭파티는 과연 영화처럼 따뜻하고 건강할까. 요리는 인스턴트 라면에 참치나 김치를 더해 응용하는 정도이며, 평소의 식사는 배달음식으로 해결하는 수많은 한국의 30대 남녀에게 포틀럭파티란 한군데 모여 각자가 사온 음식을 먹는 것으로 완결되기 십상이다. (술만큼은 좋은 것을 곁들이기에 분위기는 좋아지기도 한다.) 한강에서 치킨과 피자를 시켜먹던 것이, 공간만 누군가의 집으로 바뀌는 것이다. 나의 경우, 동물성 식품을 먹고 싶지도 않으며, 나의 공간을 방문한 소중한 지인들이 이 공간에서 배달음식을 먹고 갔다는 기억을 갖게 하고 싶지도 않다. 때문에 내가 요리를 하는 수고를 해야하더라도, 지인들이 작업실을 방문할 때면 다시 주방에 선다. 우물은 목마른 사람이 파는 것이다. 정성이 깃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함께하는 이들에게 정성을 요구하기 보다는 우선 나의 정성을 손님들에게 베풀어보겠다는 것이 내 방식이다. (내 주변에도 나같은 비건 친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유난히 고기를 좋아하는 미국인입맛 친구와 먹어보지도 않고 채소를 싫어하는 친구, 입이 짧은 친구. 이 상당한 난이도의 삼단콤보친구들이 마크로비오틱 비건 식탁을 찾아주었다. 난감하기도 하지만 이런 나와는 전혀 다른 입맛의 친구들이 나의 공간을 찾아준 마음이 갸륵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하지 못하는 고기 요리를 내어줄 수는 없다. 만두피에, 튀김옷에 채소를 숨기고, 밥은 당근라페와 버무려 귀엽게 주먹밥으로 만들어 우선 눈을 사로잡기로 한다. 그리고 미나리로 봄향기를 더하니, 피자와 냉면을 좋아하는 친구들도 그릇을 비운다. 고단한 몸을 이끌고 차린 식탁이지만, 아무런 개성 없는 배달피자와 치킨, 백화점 지하 식품코너의 샐러드 없이 친구들을 맞이 했다. 훗날 친구들 기억에 남는 개성있는 음식이었기를 기대한다.

 전날밤 추적추적 비가 오더니, 월요일에는 때늦은 눈이 온다. 모처럼의 쉬는 날 오는 눈이 야속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나도 낭만없는 어른이 된게 아닐까 싶어 조금은 섭섭하다. 하지만 꼭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는 것만이 눈을 즐기는 방법은 아니다. 수면양말속 발가락을 꼼지락대며 온가족이 버섯전골을 나누어 먹으며 옆집 지붕에 쌓인 눈을 바라보는 것도 눈을 즐기는 방법이다. (게다가 남들은 이 눈을 뚫고 출근을 했겠지만 난 쉬는 날이다!) 현미밥에 칼칼한 버섯전골, 미리 담근 양배추김치와 무생채, 그리고 방풍나물을 곁들여 눈오는 봄날의 점심식사를 준비했다.


 각오를 하고 단단히 하고 집을 나섰다. 한달에 한번, 아침부터 밤까지 수업이 있는 날이다. 아침에는 최소한의 기름과 감미료로 마들렌, 비스킷을 만드는 베이킹 수업, 밤에는 한달에 한번씩 진행하는 퇴근길마크로비오틱 클래스를 하는 날이다. 하루에 수업이 두번이나 있는 날이기에 체력싸움이 예상되지만 새로운 시도에 두근거리기도 한다.

 12월부터 진행해온 미니멀리스트 베이킹(최소한의 기름과 감미료로 만드는 디저트) 수업은 이제 거의 매달 진행하는 수업으로 자리 잡았다. 반응을 보고 수업을 계속할 것인지 정할 계획이었지만, 수업중에도, 수업 후에도 좋은 후기를 들려주셔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그만큼 무척 인기 있는 수업이지만 수업재료로 사용하는 감귤도 이제 끝물이니, 이 수업도 한동안 만나기 어려울 예정이다.

 퇴근길 마크로비오틱 클래스는 1월에 처음 시도해보는 수업. 마크로비오틱, 비건에 관심은 있지만 덜컥 정규 수업을 듣기에는 여러모로 불안한 마음이 있는 분들을 위해 마련한 짤막한 수업이다. 평일 저녁의 퇴근 후 시간을 사용하는 만큼 수업시간이 짧고, 이론보다는 직접 요리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수업이다. 마크로비오틱은 하루의 수업만으로는 전달할 수 있는 내용이 한정적이고, 전달해보았자 궁금증만 남기에, 이 원데이 클래스에서는 과감하게 이론은 들어내고 ‘경험’에 의미를 두기로 한 것이다. 직접 양배추를 볶으며 그 향이 어떻게 변하는지 자신의 코로 느끼고, 직접 다듬고 데쳐보며 2월을 대표하는 채소인 냉이에 대해서도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2월 퇴근길 마크로비오틱 클래스의 메뉴

 알리오올리오풍 파슬리 주먹밥

 두부 스키야키

 봄동 된장국

 냉이 아마란스 무침

 봄동 곶감무침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어느덧 냉이라는 채소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채소가 되지 않았을까. 만날 수 있는 철이 한정적이고, 손질에 손이 간다며 천대받는 취급이 되어 버린 냉이. 하지만 흙을 털어내고 뿌리의 흙을 긁어내다보면 비로소 봄이 왔음을 손끝으로 느낄 수 있기에 이 손질도 썩 싫지많은 않다. 약간의 수고만 더해주면 늘 같은 반찬만 오르던 식탁에 한순간 봄이 도래한다. 일하느라, 또는 치열한 일상을 유지하는데 급급했을 분들이 이 공간에서 만큼은 냉이를 다듬으며 다가올 봄을 맞이했으면 했다. 

 2월초에 들여온 산수유 나뭇가지. 뿌리를 내린 것도 아니고, 그저 가지를 물병에 꽂아두었을 뿐인데 여리여리한 잎사귀가 돋았다. 연둣빛 잎을 보고 있자니 감수성이 풍부해지려 한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을 두고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계절이라고들 하지만, 나에게는 봄부터가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계절이다. 산으로 들로 나가 비일상을 즐기고 영감을 얻어야만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사람이다. 늦은 눈이 내리고 봄이 찾아오려 하는 것처럼, 메말랐던 내 감성도 봄비를 맞고 촉촉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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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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