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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스 Jan 29. 2023

잊지마세요

누군가의 죽음

여느 때와 똑같이 고기잡이에 나섰을 13년 전 봄, 남편이 육지에 오기만을 기다리던 아내 이삼임 씨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다. 어선이 침몰했단다. 한국인 선원 중 유일하게 시신이 발견됐지만, 9명 중 7명은 아직도 차디찬 바다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다.



남편은 금양호의 선원이었다. 일반인들에게 이름도 낯선 금양호. 주로 백령도 일대에서 가자미와 명태, 오징어 등을 잡은 쌍끌이 저인망 어선. 간단히 말해 민간 어선이었다. 비극의 시작은 지난 2010년 해경의 수난구호종사명령. 당시 국가의 부름을 받고 천안함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복귀하던 중 외국 어선과 부딪혀 침몰했다. 하지만 구조 행위 중 숨진 게 아니라는 이유로 의사자 지정이나 보상도 받지 못했다. 서러웠다.


의사자 되기까지 하루도 안 빠지고 국회 쫓아다녔어. 너무 힘들었어요.
국가나 뭐나 다 나 몰라라 하고 있으니까 이렇게 슬픈 일이 어디있어?


생업을 포기하고 2년간 발로 뛴 후에야 겨우 법이 개정됐다. 의사상자의 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법 개정으로 금양호 선원들은 의사자로 인정받았지만, 국가보상은 받을 수 없었다. 천안함 유족이 내어준 국민성금 일부를 받아서란다. 천안함 유족의 성의와 국가보상이 과연 같은 무게일까 싶지만, 할말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라는 뜻의 신조어). 눈물을 삼켰다.


방법이 없으니 별 수 없었다. 배도 잃고, 동료도 잃은 선주도 마찬가지. 정부를 상대로 손실보상비 등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항소는 포기했다.


몇 년을 매달려봐야 뭐하겠어요.
그런데 국가가 안 불렀으면 그런 사고도 안 났을 거 아니야.
그럼 도의적인 책임이라도 져야죠.


뉴스는 공교롭게도 수백 명이 거리에서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지 딱 한 달 되는 날 방송됐다. 온국민이 애도했지만, 국가배상이란 주제가 나오자 안타까움조차 찬반이 갈렸다. 기사가 나간 후 댓글에도 이태원 참사와 비교하는 내용이 다수였다. 보상이든 배상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씁쓸했다.


안타깝지 않은 죽음,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다만 남겨진 이들이 같은 슬픔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지금 같은 일이 반복돼선 안되겠지. 사회적 안전망을 갖춰 적어도 예견된 사고는 막아야 하고,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에 걸맞은 대책이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세상 모든 법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이 있다.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없앤 '태완이법', 음주운전 기준과 처벌을 무겁게 바꾼 '윤창호법'이 그렇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수 년이 흐른 후에 누군가 금양호를, 이태원 참사를 기억했으면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더 이상 같은 이유로 흘리는 눈물은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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