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이 Jan 01. 2023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갑자기 이별이 찾아온다면

이별 앞에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까

남자친구와 다툴 때면 가끔씩 두려움이 엄습한다. 내가 이 남자를 숨 막히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누군가 그랬던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떠나가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면 나는 이번에도 무너지지 않고 견뎌낼 수 있을까. 내 모든 것을 사랑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람이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음을, 나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사랑은 쌍방인데 왜 이별은 일방인지

한 사람의 마음이 다하면, 이별은 자연재해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차라리 그전에 티를 내지. 차라리 말을 하거나 화라도 내었더라면.' 평생 마음속에서 참고 고민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직서처럼 들고 온 이별통지서 앞에서 아무 것도 몰랐던 사람은 순식간에 무너져내리고 만다.


떠나기 전에 최소한의 신호는 줄 수 있었잖아

29년을 함께 살면서, 당신의 이런 지점이 날 위축되게 한다고 날 무력하게 만든다고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나를 위해 변해달라고 말하는 것이 저 노신사에게는 왜 그토록 힘들었을까. 아니면 수없이 그와 같은 말을 했는데, 자아가 너무나 강했던 아내가 듣지 못했던 걸까. 그래서 결국 자식 앞에서 처음부터 잘못된 기차를 탔다고, 시작부터 맞지 않았던 거라고 단정 지어야만 했을까. 다른 여자가 내 팔을 만지는 순간, 깨닫게 되었다고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이별이 자연재해처럼 닥치는 일이라면

아침을 먹다가 갑자기 집을 떠나, 휴대폰 번호도 바꾸고, 이혼 서류는 우편으로 보내는. 한순간에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녀에게 충분히 화내고, 슬퍼할 시간이 필요한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하다. 어제까지 차를 데워주던 남편이 오늘 아침 이미 싸둔 짐가방을 들고 홀연히 떠나버리다니. 아들의 말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해도 이해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인생이 내 마음처럼만 되지 않는대도 만약 나에게 비슷한 일이 닥친다면, 내가 신뢰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한순간에 나를 내동댕이친다면, 나는 우울에 잠겨 죽지 않고 애도의 과정 끝에 다시 일어서 살아갈 수 있을까.


혹시 모를 그날을 위해 부디 그 앞 길을 걸어간 자들의 흔적이 이렇게 남아있기를. 그래서 내가 이 재난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도와주기를. 영화 속에 구축된 웹사이트 "I have been here before"이라도 좋으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