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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Dec 14. 2022

우울은 수용성이라던데

씻으러 가기엔 이 계절이 너무 추워요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꼭 머리를 감지 않고 학교에 와서 떡진 앞머리만 급하게 감던 친구들이 있었다. '어차피 물을 묻힐 거면 그냥 다 씻지, 왜 그러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되었는데, 요즘 내가 그렇다. 심지어 이젠 학교가 아니라 회사에 가는데, 이틀에 한 번꼴로 앞머리만 감는다. 


오랫동안 우울과 무력감에 시달린 덕에 이쪽으로는 짬이 꽤 찬 편이다. 몸을 일으켜 일단 씻고 밖으로 나가면, 작더라도 to-do 리스트를 지워가면, 몸을 좀 움직이고 땀을 빼고 나면, 잘 챙겨 먹고 잘 자면 급한 우울을 끌 수 있단 걸 알고 있다. 우울은 수용성이니까 일단 씻는 게 1번이다. 


그런데, 날이 너무 추워서 그런가. 우리 집 온수가 영 시답지 않아서 그런가. 정답을 알아도 아는 대로 하는 게 참 쉽지 않다. 운동은커녕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전기장판 위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부터, 차가운 욕실 타일 위에 발끝으로 서기, 출근하기, 하루의 to-do 리스트를 적어 내려가기, 회사에서 업무 대화를 이어가기, 아니 그저 불려진 이름에 대답하는 것 마저 벅차다.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평생을 지겹게도 나를 쫓아다녔지만, 올겨울도 역시 유난하다. 날씨 탓을 해보고, 회사 탓을 해봐도 그 마음이 나아질 리 없다. 결국 일상을 꾸역꾸역 살아내며, 이 계절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쩐지 서러워진다. 


나는 왜 이 모양인지, 우리 부모님은 왜 나를 이렇게 밖에 키워내지 못했는지 탓하기에도 너무 멀리 온 세월. 그저 이 상태로 잘 데리고 살아내는 것 말고 방도가 없는데. 죽지도 않고 찾아온 우울을 나는 어떻게 씻겨보낼 수 있을는지. 어쩌면 좋을는지. 없는 용기를 쥐어짜 내 샤워기 앞에 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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