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하루
뭐라도 해야만 하루를 잘 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을 그만두고 또다시 취업을 준비하면서 더 열심히 해야 한다며 나를 채찍질해왔다. 열심히 이력서와 자소서를 쓰고, 열심히 입사지원을 했다. 용돈벌이로 글도 열심히 썼다. 그러다 잠시라도 쉴 때면 괜히 시간낭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도 받아왔다.
마음이 지치면 몸도 지치는지 잠깐이라도 누워있을 때면 끝도 없는 우울한 생각에 사로잡혀 바닥까지 꺼지는 기분도 들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며 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나름의 포부를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것 같은데, 그게 늘 내 기대에 못 미쳤으니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이력서를 넣는 회사에 서류 탈락도 꽤 많이 하게 됐다. 그러면서 '내가 괜히 어려운 길을 선택한 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건 '나를 속이는' 생각들이었기에 다시금 심기일전하고 다시 일어서고 또다시 일어서기를 여러 번. 많이도 넘어지고 깨졌지만, 그래도 나에게 유익이 되는 책들과 힘이 되는 내 사람들 덕에 여기까지 잘 걸어온 것 같아 감사하다.
이번 주는 꽤나 바쁘게 움직였다. 다행히 서류합격으로 연락이 온 회사도 몇 군데 있었고, 탈락했었던 회사 중 인원 충원으로 연락이 온 회사도 있어서 여러 군데 면접을 보기도 했다. 비록 아직 합격한 것은 아니더라도, 이렇게 자꾸 부딪쳐보면 내가 원하고 내가 필요로 하는 곳에 닿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나를 다독였다. 잘 하고 있는 거라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두 군데 면접을 보고 돌아오는 길. 난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내일은 누가 뭐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쉴 테다
생각해보니, 맘먹고 쉬었던 날이 없었다.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나름 몸은 편했지만, 마음이 늘 불안하니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잠시라도 누워있을라 치면 온갖 두려운 생각들이 몰려와('이러고 있으면 넌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야, 지금 뭐하고 있는 거니?') 나를 채찍질하는 통에 다시금 일어나 뭔가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채찍질이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움직일 수 있었으니 그 시간들을 탓하진 않겠다. 다만, 맘먹고 누리는 '쉼'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우니 내일 마음껏 쉴 생각에 행복감이 몰려왔다. 물론 여느 날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하루겠지만, 마음가짐이 달라지니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원래도 늦게 잠자리에 들었지만, 그날은 왠지 더 늦게 잠들어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은 것만 같아 더 늦게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그러니까 오늘), 아침에 눈을 떠보니 하늘에서 펑펑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창밖에는 벌써 눈이 쌓인 곳도 있었다. 아직도 하얀 눈이 내리면 설레는 나에게는 선물 같은 날이었다. 창밖에 내리는 눈을 보며 아침을 먹으면서, 오늘은 창가에 앉아 실컷 눈 구경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캐럴을 틀고, 집에 장식된 전구에 불을 켜두고는 혼자 마음껏 '눈 내리는 날'을 즐겼다. 창가에 앉아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좋아하는 책도 쌓아두고 읽었다. 눈 오는 풍경이 좋아 아예 창가에 자리를 마련해두고 앉으니 분위기 좋은 카페가 부럽지 않았다. 간식도 마음껏 먹고, 흥얼흥얼 콧노래도 부르며 그렇게 오늘 하루를 즐겼다.
마음 가는 대로 하루를 즐기며 충분히 쉬었더니 또다시 걸을 힘이 생긴다. 계속 걷기만 했다면 아마 주저앉아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쉼'이란 반드시 필요하다. 쉼을 통해 우린 또다시 걸을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내일부터 또 살아갈 내 삶 가운데 아마 또 넘어지고 깨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겨울이 지나 봄이 오듯이, 내 삶에도 따스한 봄날은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겨울이 지독하게 추우면 여름이 오든 말든 상관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부정적인 것이 긍정적인 것을 압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냉혹한 날씨는 결국 끝나게 되어 있고, 화창한 아침이 찾아오면 바람이 바뀌면서 해빙기가 찾아올 것이다. 그래서 늘 변하게 마련인 우리 마음과 날씨를 생각해 볼 때, 상황이 좋아질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