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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Mar 24. 2016

계획에 없던 고향으로의 여행

"딸, 시청 가서 일 보는데 아무래도 내일 너가 내려오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 내가 갑자기 어떻게 내려가. 서류 필요하면 팩스로 보내면 되잖아."

"그래, 그러면 되겠지? 응, 알았어."


일요일 저녁, 아빠에게 전화가 와서는 갑자기 내려 오라 신다. 일 보는데 내가 작성해야 할 서류가 있다며. 우리 엄마 아빠는 늘 이런 식이었다. 명절 때에도 그 전날까지 어디로 내려가야 할지 아무런 말도 없으시다가, 당일에 갑자기 통보하시는. 덕분에 당일에 표를 바꾸는 일도 있었다. 올라가는 날 표는 아예 미리 끊어놓지 않는 편이 더 편하다. 나도 내 계획이 있고 상황이 있는데, 한 번씩 이러실 때면 당황스러워서 울컥 짜증이 난다.

주말 저녁도 그랬다. 미리 준비를 하면 이렇게 바쁘게 일처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그래, 내일은 볼일 하나 보고 시청부터 가보자. 마음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정리를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볼일을 보고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딸, 시청에서 서류 뭐 필요한지 물어보고 팩스로 보내줘."

"응 알았어."


어차피 들어가는 길에 시청이 있어서 시청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중, 엄마에게서 또다시 전화가 왔다.


"딸, 그냥 내일 아침에 내려오면 안 되겠나?"

"... 내가 갑자기 어떻게 내려가냐고."

"팩스로 서류를 보내면 안 된대. 서류를 우편으로 보내야 하는데, 내일 오전까지는 일처리를 해야 해서."

"..."

"엄마 아빠가 우리 딸 보고 싶기도 하고."

"..."

"오늘 일은 잘 봤나?"

"응, 그냥."

"왜 그렇게 목소리에 힘이 없노. 힘 좀 내라."

"... 응."

"그래, 내일 아침 첫 차로 내려와 줘. 아니면 오늘 저녁 차로 내려오는 게 니가 더 편하겠다."

"... 오늘 어떻게 내려가냐고. (휴)... 내일 첫 차로 내려갈게."

"그래, 고마워."


그렇게 전화를 끊고. 또다시 온 전화.


"딸아, 오늘 저녁에 니가 내려오는 게 더 편하겠다."

"... 몰라."

"그럼 내일 새벽차 타고 와야 하는데, 일어날 수 있겠어?"

"..."

"오늘 저녁에 집으로 내려와라. 응?"

"... 알겠어."


모기만 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정말 너무 하신다. 여러 가지 힘든 상황이 떠오르며 눈물도 났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일은 급하고, 내가 없으면 일처리가 되지 않는데. 부랴부랴 집으로 들어가서 저녁 차 예매를 하고, 차 시간이 될 때까지 집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이른 저녁을 먹고, 터미널로 향했다. 그래, 이왕 가야 하는 거, 좋은 마음으로 내려가자. 어차피 내려가야 하는 거, 고향으로의 "계획에 없던 여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생각을 바꿨을 뿐인데,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사실 우편으로 서류를 보내드려 일을 처리할 수도 있지만 그냥 가기로 마음먹은 건, '보고 싶다'시는 엄마의 말 때문이었다. 얼마나 딸이 보고 싶으면 저러실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아까 툴툴거렸던 게 괜히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고향에 도착했다. 부모님은 잠시 집을 비우시고 내일 아침에 들어오신다고 하셔서 먼저 집으로 들어갔다. 익숙한 냄새. 집에 오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짐을 풀고, 씻고, 푹신한 침대에 몸을 뉘었다. 긴 하루가 피곤했는지, 그렇게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새벽. 문 여는 소리가 들리고, 엄마 아빠가 집에 도착하셨다.


"우리 딸! 잘 왔나?"

"응."


방문을 열고 들어온 부모님은 아직 잠이 덜 깬 나를 반갑게 토닥이시더니, 좀 더 자라고 하시며 방을 나가셨다. 다시 스르륵 선잠이 들었다.

부엌에서는 달그락달그락 아침 준비하시는 엄마의 소리가 들리고, 거실에서는 운동하시는 아빠의 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없을 때의 고요함은 어쩐지 쓸쓸하다. 하지만 누군가 곁에 있을 때의 작은 소음은 마음을 평안하게 해준다. 그렇게 잠깐의 잠을 더 자고는, 나도 밖에 나가 웃는 얼굴로 부모님을 맞았다. 늘 같이 있던 딸이어서, 그리우셨나 보다. 일만 보고 바로 올라갈까도 생각했지만, 부모님과 하루 더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몇 시 차 타고 올라갈 거야?"

"오늘 안 올라가고, 하루 더 자고 내일 올라가려고."

"진짜? 어떻게 그렇게 갸륵한 생각을 다 했어?"

"헐! 오늘 올라갔음 내 욕 엄청 했겠네?"

"아니다."


그러시고는, 연신 싱글벙글하시는 엄마.


"여보, 딸이 내일 올라간다네. 어찌 이리 갸륵한 생각을 했을꼬."

"당연히 내일 올라가야지!"


엄마 아빠는 내가 하루 더 있을 거란 말에 신나셨는지 서로 기분 좋게 대화 나누셨다. 그러고는 오랜만에 부모님과 둘러앉아 아침을 먹었다. 김치찌개, 생선구이, 여러 종류의 나물. 역시 엄마가 해주는 밥상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상이다. 오랜만에 밥 같은 밥을 먹었더니 배도 든든해졌다.





아직,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통보는 받아들이기 힘들 때가 더 많다. 이 글을 쓰고 난 뒤에도 아마 비슷한 일이 생기면 그때도 난 한숨 쉬며 짜증부터 내겠지. 그래도 딸이, 아들이 보고 싶은 부모님에게는 자식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가 보다. 바쁘다는 핑계로 받지 않은 전화, 읽지 않은 메시지들이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 부모님의 사랑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아야겠다. 엄마의 반찬이, 웃음이, 손길이, 따뜻함이, 아빠의 장난이, 든든함이, 유쾌함이, 결국 그리워지는 날이 오겠지.








다음 날은 부모님과 이곳저곳 드라이브도 하고, 맛난 시골밥상도 사 먹었다. 계획 없이 갑자기 떠나서 짜증도 나고 화도 났지만, 함께 있어 따뜻했던, 나를 향한 응원이 든든했던, 그런 즐거운 여행이었다.



엄마 아빠,
그동안 자식들 키우느라 고생한 거
다 보상받을 때까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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