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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해 Mar 20. 2020

나를 밀고 갈 힘

연해(우울할 땐 푸딩클럽-매거진 푸딩)

한 쪽짜리 글 한 편을 발행하기 위해 적어도 10시간 이상은 할애한다. 어떨 땐 한 문장을 다듬기 위해 몇 시간을 보내고도 흡족하지 못해 다음날로 미루기도 한다.

글을 쓰면 쓸수록 습득하여 기술이 향상되고 프로가 되어 쉽게 술술 써질 줄 알았는데 많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어렵다.

책으로 만들어지는 무게가 얼마나 무겁게 느껴지는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포부와 열정으로 해낸 서툴고 어설픈 첫 책 출간과 그때의 무모한 용기 따위는 이제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그런 객기로 책을 출간하기엔 너무 무게가 무겁고 무섭다. 무지망작 천방지축 나부대던 마음은 그때 한 번이면 족하다.

네 번째 책 원고를 쓰면서 미래에 대한 모든 것이 두려움과 막막함으로 다가온다. 보통 250페이지의 책 원고를 위해
250페이지 × 10시간=2,500시간의 투자를 한다.
다시 2,500시간÷하루 24시간을 하면 대충 104일 정도가 된다. 104일 동안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고 심지어 화장실도 가지 않고 오직 원고만 보며 지내야 책 한 권이 나온다는 얘기다.

그것이 최소한의 시간이고 어떨 땐 한쪽을 쓰기 위해 24시간 이상을 버틴 적도 있으니 책 한 권을 쓰기 위한 시간은 결국 계산 불가능하다. 나같이 느린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10년이 걸릴 수도 있겠다.

첫 책을 출간하던 나와 네 번째 책 원고를 작성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얼마나 성장하고 발전했으며 단단해졌을까?
나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누가 얘기라도 해준다면 이 길이 덜 힘들고 외롭고 고독하겠다.

이제 걸음마 한걸음 뗀 어린아이에 불과하고 얼마나 더 오래 어둠의 터널을 지나야 쓰기의 기술을 습득한 프로가 되어 글의 세계로 달려갈 수 있을지 여전히 모르지만 할 수 있다는 신념과 믿음이 확실하게 내 안에 자리 잡아 흔들리지 않는 내가 되고 싶다.
막막함과 두려움의 무게를 감당하며 단단하게 엉덩이의 힘을 믿으며 자리를 지켜내고 싶다.

지구에 잠시 불시착한 나와 같은 부류인 유명 작가 S가 자꾸 책을 만들자고 재촉한다.
삽화는 물론 디자인비도 무료로 해준다고 혹할만한 제안을 하며 꾀인다.
내가 지구에서 만난 몇 안 되는 좋아하는 종족이기에 그의 사심 없는 선행이 눈물겹게 고마워 자다가 혼자 몰래 울기도 했다.

문과와는 눈곱만큼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철저하게 이과의 지식으로 돈벌이하는 H는 내 글이 너무 심심하다고 아픈 곳을 자주 찌른다.
그래도 그의 조언이 틀린 구석이 없어 반박하지 못하고 수긍한다.

나는 하늘과 지구 그 경계선에 걸쳐져 있는 기분을 자주 느낀다.
다음 작품을 기대하고 설렘으로 열심히 집필하고 있지만 그 마음만큼 또한 두렵다.
나를 밀고 갈 힘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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