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조숙증-0812 첫진료
첫찌는 뱃속에서부터 2주 가까이 큰 아이였다. 거기다 41주 다 채워서 낳았더니 거짓말 좀 보태 “다 자란 아이”가 나왔다. 요람을 가득 채울 정도로 컸다.
완모를 했고, 별탈 없이 무럭무럭 자랐다. 엄마를 닮지 않아 큰 눈과 오똑한 코, 예쁘장한 얼굴, 거기다 상위 5% 안에 드는 큰 키 덕에 언제나 눈에 띄었다. 사람들이 첫찌를 보면 하는 말 “너무 예쁘다”, “어머 키가 진짜 크네” 첫찌는 남들과 <특별한> 자신이 부끄럽다고 했다. 성향이 그랬고, 해가 갈수록 그 이야기가 불편하다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안보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나또한 그렇게 컸다. 다만 나는 ‘그러려니’했지만 섬세한 첫찌는 그 특별함이 싫었나보다.
6살 여름. 여느때처럼 목욕을 하고 몸을 닦는데 아이 가슴이 봉긋 솟아있었다. 키는 컸지만 비만은 아니었다. 살이쪄서 가슴이나왔다면 둥그랬을텐데 아이 가슴은 정말 ‘봉긋’했다. 그러고보니 매일 목욕을 해도 정수리에서 냄새가 났다. 체취가 심한건 아니지만 봉긋한 가슴과 정수리 냄새-두 개 만으로 “성조숙증”이 스쳐갔다. 부랴부랴 병원을 찾았다. 성장클리닉은 많았지만 빠른아이를 위한 곳은 많지 않았다. 소아청소년 내분비쪽으론 울산대학교병원, 양부대병원 두 곳으로 추려졌다. 울산대학교병원은 가장 빠른 예약일이 1년 후였다. 양부대병원은 진료가 비교적 빨랐고, 어린이병원이 따로있지만 치료를 받게 되면 오가는 거리가 부담스러웠다. 뭐 당장 어떻게 되겠나, 1년 걸려도 7살인데 싶어 울산대학교병원에 예약을 잡았다. 1년 동안 아이의 키는 더 컸고 몸도 자랐다. 다행히 가슴 멍울이 더 커지진 않았다.
*많은 분들이 “아이가 또래보다 커서 성조숙증 검사한거야?”라고 물었다. 대답은 노우! 가슴이 봉긋하게 솟고 정수리 체취가 물씬나서 하게된것이다. 아이의 키와 몸무게가 또래보다 큰것에 대해선 “엄마 아빠가 크니까”라는 생각에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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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진료일, 점심 직후 아이를 일찍 하원시켰다. 눈치가 빠른 첫찌는 어디가냐, 아픈곳이 없는데 왜 병원에 가냐, 늘 가던 병원에 안가고 왜 이렇게 큰 곳에 가냐고 연달아 물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하는 검사라고 했다. 아이는 큰 눈을 껌뻑였다.
엄마, 내가 커서 가는거야?
뜻밖의 말에 잠시 말을 잃었다. 아니, 라는 말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으응, 얼마나 잘 크나 보는거야. 아픈거 아니야. 다 끝나면 스티커 사러가자고 아이를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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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해서 엑스레이 촬영을 하고 무한 대기. 소아청소년과엔 아주 작거나 아주 큰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의 체구는 제각각이었지만, 그들과 함께 있는 보호자의 표정은 같았다. 한 가지 좋았던건, 아이가 아주 크건, 작건 모두들 신기하게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키와 몸무게, 혈압을 재고 담당교수님을 만났다. 왜 왔는지, 다른 증상은 없는지 묻고는 우선 혈액검사와 초음파 등을 봐야한다고 안내해주셨다. 이날은 피만 뽑고 왔다.
이때만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또래보다 키가 좀 크지 괜찮네요“ 그러고 말겠지, 괜히왔나? 그게 다였다.
...이렇게 오래 시간을 끌 줄은 꿈에도 몰랐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