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에몽, 안녕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by 리다

내 별명은 '도라에몽'이다.


동그란 얼굴과 통통한 주먹(?)때문에 붙여진 건 아니고, 도라에몽처럼 뭐든지 가지고 다녀서다. 언제나 가방은 크고 수납력 짱짱한 것을 들고다녔고, 별의별 것이 다 들어있었다. 회사에서 야유회를 가면 물티슈, 두루마리 휴지를 둘 다 챙겨갔고, 여기에 수건, 가위, 칼, 반창고 등 정말 100번 정도 나가면 한 두번 쓸까말까한 물건들까지 탈탈 다 털어 가져갔다. 내 방에는 항상 빈 박스, 종이봉투가 쌓여있었는데-언젠가 선물포장을 할 때, 뭔가 넣어가야 할 때를 대비해서 예쁘고 튼튼한것들을 쌓아둔 것이다.

결혼 후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금이 가거나 깨지지 않은 이상 접시와 컵을 이리저리 수납했고, 비닐봉지, 종이봉투, 에코백 등도 다 모아놨다.


그러다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평수는 같지만 이전 집이 서비스 면적, 수납공간이 많았던것에 비해 지금집은 정말 딱 떨어지는 30평! 1평이 소중한데 평수는 커녕 부엌베란다도 없어서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수납정리로 지역내에서 손꼽히는 이사업체에서 3일 넘게 걸려 이사와 정리를 했지만, 다시 내가 털어보니 각종 바구니로 넣어두어 분류만 한 정도지-무수한 짐을 넣다넣다 안되어 창고 구석에 차곡차곡 넣고 가셨다. 이사업체가 무슨 죄랴, 우리집 짐은 40평인데 집은 30평인것을.


이리저리 정리가 된 것 같으면서 구깃구깃 들어간 짐을 보고 있으니 숨이 턱 막혔다. 애지중지 모은 종이상자는 구깃구깃해져서 볼품없어졌고, 예쁘다고 사 모았던 스티커, 수첩은 색이 바래고 그 쓰임도 불분명해졌다.

애당초 나는 물건의 '쓰임'보다는 '구색맞추기'가 더 중요했을 것이다. 아마도.


내가 왜 '도라에몽'이 되었을까? 가만히 생각해봤다. 언제부터였지? 내가 이것저것 넣고다닌건. 아 그래, 초등학교 중학교 몇 년에 걸친 기나긴 따돌림 생활때였구나.

너는 뚱뚱해, 못생겼어, 공부도 잘 못하는 주제에 상 좀 받는다고 선생님들이 좋아하는거 기분나빠.

외모 때문에 따돌림을 당했고, 어느 누구도 나와 함께 하지 않았지.

그러다 어느 날, 누군가가 스카치테이프를 찾았고 때마침 있던걸 빌려주니 아이들이 대번에 호의적으로 바뀌었지. 개중엔 필요할 때만 호호하고 찾다가 필요없으면 모른척하는 애들도 있었지만- 처음으로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구나 하고 얼마나 기뻤던가. 그 후 가방엔 각종 스티커와 테이프, 문구류, 손톱깎이, 실과 바늘까지 있었다.

실과 바늘 덕분에 좋아하는 남학생과 말도 텄었고, 손톱깎이 덕에 연예인과 말도 섞어봤지. 그래, 난 물건들이 필요했다. 그게 내가 존재하는 이유였으니까.


내가 가지고 다니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나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해'라고 외쳤던거였다. 나는 그걸 왜 지금 깨달았을까?

짐을 줄이고 내실을 더욱 다졌다면, 늘어난 물건들이 버거워 힘들던 것을 '아직 부족한 것이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난 꽤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가만히 생각했다. 지금도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내 물건을 찾는가? 내가 누군가에게 물건을 빌려주고 받으며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는가?

답은 "아니다"였다. 나는 이제 누군가에게 물건을 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필요한 사람이 되려하고, 아무것도 주지 않고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럼 내가 저 물건들을 버려고 괜찮겠지? 라는 질문에는 "일단, 일주일만 더 생각해보자"였다. 일주일 동안 손도 안 댄 것, 눈도 안 마주친 것은 앞으로도 쓸 일이 없을거라고 스스로 규칙을 정했다. 설마 일주일 동안 한번도 안쓸까? 그런 것들을 내가 여태 들고 다녔을 리가 없다고 스스로 의심했다.


일주일 후, 찾기는 커녕 거들떠도 안본 물건들을 꺼내 식탁에 올려뒀다. 75리터 쓰레기 봉투와 재활용 봉투도 같이 준비했다.

그리고 미련없이 다 버렸다. 신기하게도 '아깝다'는 생각보다 '잘하고 있다, 후련하다' 상쾌해졌다.

75리터 한봉지 가득 채우고, 20리터 한봉지를 더 썼다. 플라스틱, 종이, 고철은 코스트코장바구니로 4개가 나왔다. 버리느라 애를 꽤 썼는데,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롯이 나 혼자 그 무게와 힘듦을 짊어졌다.

상부장 두 칸, 하부장 세 칸을 비웠다. 그 중 상부장 한칸은 <잊어버릴 물건들의 방>으로 만들었다.

버릴까말까 딱 며칠 고민했다가 쓰지않으면 바로 버리거나 나눔할거다. 딱 잘라 버리기에 아쉬운 것들. 아마 버리는 데까진 시간이 꽤 걸릴거 같다.


아마, 내가 그날 버린 건 묵혀둔 짐이 아니라 감추고 묵혀둔 내 응어리였을 것이다. (끝)

아쉬움과 미련이 점철될 <잊어버릴 물건들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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