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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첸 Jan 01. 2019

#11  와이파이소녀의 질문



  토요일 저녁마다 열리는 브루더호프 청년모임에 나와 수빈이도 참석했다. 친구들은 무릎 위에 올려놓은 성경책을 보며 각자 한 구절 한 구절 어떤 감정과 생각이 드는지 토론했다. 모임의 끝으로 집집마다 노래를 불러주자는 누군가의 제안에 모두가 응했다.

  서른 여명의 친구들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새벽송을 도는 것처럼 찬송을 부르며 이 집 저 집을 걸어 다녔다. 집안에서 흘러나온 노란 전등 불빛이 검은 무리의 발끝을 비추고, 제각기 다른 목소리들은 하나가 되고 셋이 되며 변주하였다. 별들도 이 노래를 듣고 기쁜지 다른 어느 날 보다도 반짝이는 듯했다.

  하지만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태블릿을 부둥켜안고 이불 위로 드러눕는 수빈이 덕분에 현실세계로 돌아오는 데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하. 제발 인터넷만 된다면 소원이 없겠다. 우리 오빠들 콘서트 한다고 했는데! 정보 뜨고 난리도 아닐 텐데. 아… 정말. 이 공동체는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와이파이가 안 돼?”


  브루더호프의 생활은 전자기기나 인터넷과 거리가 멀었다. 핸드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대신 손 글씨 적힌 편지를 주고받는 곳이었다. 이런 생활이 처음인 수빈이는 아까 저녁 모임에서도 머리를 앞뒤로 까딱이며 잠을 청하던데, 과연 그 아름다운 시간보다 인터넷을 소중히 여기는 친구였다.                








  방에 들어왔는데 웬일로 녀석이 보이질 않았다. 수빈이 침대 위 이불이 곱게 직사각형으로 펴져 있었고, 심지어 태블릿도 탁자에 고이 놓여있었다. 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져 다급하게 엄마에게로 달려갔다.


  “엄마! 수빈이가 없어!”

  

  “수빈이? 어디 갔나 보지.”


  “맨날 방 안에서 태블릿만 하는 애가 가긴 어딜 가.”

 

 “글쎄, 나도 모르겠어.”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동생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야! 너 어디 갔었어?”


  “나? 산책하고 왔는데?”


  “산책?”


  아무래도 믿기지가 않아 되물었다.


  “마야가 산책하자고 해서 갔다 왔어. 브루더호프 주변은 다 돌아다닌 거 같아.”


  마야는 룸메이트이자 수빈이와 열아홉 살 동갑내기 친구였다.


  “그랬구나..”


  내 대답은 건조했지만 속으로 마야에게 고맙다는 말을 연신하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이놈을 어떻게 하면 동굴에서 끄집어내 탁 트인 언덕을 거닐게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내심 어땠는지 궁금해 수빈이의 표정을 살폈다.

  동생은 침대에 철퍼덕 누워 천장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언니, 근데 여기에 있는 애들 말이야…. 얘들은 핸드폰도 안 쓰고, 컴퓨터도 안 하고 살잖아. 나는 얘들이 평생 여기에서만 살아서 그런 건 본 적도 없는지 알았다? 그게 아니면 이 좋은 걸 놔두고 안 하는 게 말이 안 되잖아. 그래서 내가 아까 마야한테 물어봤어. 너네는 왜 핸드폰도 없고, 컴퓨터도 안 하냐고. 근데 뭐라는 줄 알아?”


  이 녀석, 귀신같이 내 마음을 읽었다.


  “뭐래?”


  “할 수 있대. 근데 그게 자기 인생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대.”


  수빈이의 응시하던 눈동자는 천장을 지나 창문 밖에 머물렀다.


  “마야랑 이야기 나누면서 느낀 건데, 여기 내 또래 애들, 아무것도 몰라서 여기서 살고 있는 게 아니야. 다른 삶도 알고 있어. 스스로 자기가 이 삶을 선택한 거야. 내가 마야한테 여기서 사는 게 행복하냐고 물어봤거든? 행복하대. 행복할 수 있는 많은 이유들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라면서 말하는 게, 대중매체나 인터넷에 빠져있기보다 다른 것들을 더 소중히 여기는 거래. 친구와 같이 산책하거나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 같은 것들 말이야. 어떻게 그렇게 쉽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지? 나는 행복이 뭔지 아직 잘 모르겠는데….”


  동생의 저울추가 갸우뚱거리기 시작했다.


  “언니, 여행기들 읽어보면 다 그러잖아.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삶의 의미를 찾았다, 뭐 그런 거.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진짜 많다? 나도 그렇게 될까? 나도 이 여행이 끝나면 마야처럼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도 달라질까?”


  “그러게~.”


  이번에도 내 대답은 짧았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게~. 우리 넷의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게 될라나!’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를 가운데 두고 브루더호프 청년들의 수다가 시작되었다. 토요일 저녁마다 열리던 모임에 나와 우빈이도 참석했다. 친구들은 무릎 위에 올려놓은 성경책을 보며 각자 한 구절 한 구절 어떤 감정과 생각이 드는지 자유롭게 토론했다. 누군가 마음 속에 일어난 이야기를 꺼내면 다른 다른 이들은 그 사람에게 온 주의를 기울였다. 잠시 침묵이 머무는 동안에는 책장 넘기는 소리와 뱃속에서 꼬르륵하고 울리는 배꼽시계 소리만이 귀엽게 울려 퍼졌다.


  “집집마다 노래 불러주자! 어때?”


  모임이 끝났는데도 흩어지지 않고 타닥타닥 불똥 튀기는 장작불 가에 모인 친구들 중 한 명이 제안했다.

  서른 여명의 친구들은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조용한 노래를 부르며 발걸음을 옮겼다. 집안에서 흘러나온 노란 전등 불빛이 검은 무리의 발끝을 비췄다. 제각기 다른 목소리들은 하나가 되고 셋이 되며 변주하였다. 검은 하늘에 별들도 이 노래를 듣고 기쁜지 다른 어떤 날 보다도 반짝이는 듯했다.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태블릿을 부둥켜안고 이불 위로 드러눕는 이 사람.


  “하. 제발 인터넷만 된다면 소원이 없겠다. 우리 오빠들 콘서트 한다고 했는데! 정보 뜨고 난리도 아닐 텐데. 아…… 정말. 이 공동체는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와이파이도 안 된다는 게 말이 돼?”


  우빈이 덕분에 현실세계로 돌아오는 데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브루더호프의 생활은 전자기기나 인터넷과는 거리가 멀다. 핸드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대신 손 글씨 적힌 편지를 주고받는 곳이었다. 이런 생활이 처음인 우빈이는 아까 저녁 모임에서도 머리를 앞뒤로 까딱이며 잠을 청하던데, 과연 그 아름다운 시간보다 인터넷을 소중히 여기는 친구였다.      








  방에 들어왔는데 웬일로 녀석이 보이질 않았다. 우빈이 침대 위 이불이 곱게 직사각형으로 펴져 있었고, 심지어 태블릿도 탁자에 고이 놓여있었다. 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기에 다급하게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 우빈이가 없어!”


  “우빈이? 어디 갔나 보지.”


  “맨날 방 안에서 태블릿만 하는 애가 가긴 어딜 가.”


  “글쎄, 나도 모르겠어.”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때마침 동생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야! 너 어디 갔었어?”


  “나? 산책하고 왔는데?”


  “산책?”


  “응.”


  아무래도 믿기지가 않아 되물었다.


  “마야가 산책하자고 해서 갔다 왔어. 브루더호프 주변은 다 돌아다닌 거 같아.”


  마야는 우빈이의 룸메이트이자 열아홉 살 동갑내기 친구였다.


  “그랬구나..”


  내 대답은 건조했지만 속으로 마야에게 고맙다는 말을 연신하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이놈을 어떻게 하면 동굴에서 끄집어내 탁 트인 언덕을 거닐게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내심 어땠는지 궁금함을 눈동자 뒤로 숨기고 우빈이의 표정을 살폈다.

  동생은 멍한 기색으로 침대에 철퍼덕 누워 천장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언니, 근데 여기에 있는 애들 말이야…. 얘들은 핸드폰도 안 쓰고, 컴퓨터도 안 하고 살잖아. 나는 얘들이 평생 여기에서만 살아서 그런 건 본 적도 없는지 알았다? 그게 아니면 이 좋은 걸 놔두고 안 하는 게 말이 안 되잖아. 그래서 내가 아까 마야한테 물어봤어. 너네는 왜 핸드폰도 없고, 컴퓨터도 안 하냐고. 근데 뭐라는 줄 알아?”


  이 녀석, 귀신같이 내 마음을 읽었다.


  “뭐래?”


  “할 수 있대. 근데 그게 삶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대.”


  우빈이의 응시하던 눈동자는 천장을 지나 창문 밖에 머물렀다.


  “마야랑 이야기 나누면서 느낀 건데, 여기 내 또래 애들, 아무것도 몰라서 여기서 살고 있는 게 아니야. 다른 삶도 알고 있어. 스스로 자기가 이 삶을 선택한 거야. 내가 마야한테 여기서 사는 게 행복하냐고 물어봤거든? 행복하대. 행복할 수 있는 많은 이유들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라면서 말하는 게, 대중매체나 인터넷에 빠져있기보다 다른 것들을 더 소중히 여기는 거래. 친구와 같이 산책하거나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 같은 것들 말이야. 어떻게 그렇게 쉽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지? 나는 행복이 뭔지 아직 잘 모르겠는데….”


  동생의 저울추가 갸우뚱거리기 시작했다.


  “언니, 여행기들 읽어보면 다 그러잖아.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삶의 의미를 찾았다, 뭐 그런 거.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진짜 많다? 나도 그렇게 될까? 나도 이 여행이 끝나면 마야처럼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도 달라질까?”


  “그러게~.”


  이번에도 내 대답은 짧았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게~. 우리 넷의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게 될라나!’









19세 여동생은 학교를 자퇴하고,
53세 엄마는 교회를 그만두고,
55세 아빠는 밭을 맡기고,
26세 나는 가족과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어려운 가족(이라는)여행
성질부리는 큰 딸이 302일 간 기록합니다.

숨겨둔 장면은 여기에서 
https://www.instagram.com/travel_of_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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