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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첸 Dec 24. 2018

#10  처음 본 아빠의 눈물


  브루더호프 사람들의 일상은 예배와 삶이 공존했다. 매일 가지는 티타임도 조용한 묵상기도시간 같았던 이들의 일요일은 어떤 모습일지 무척이나 기대되었다.

  보자기에 돌돌 감긴 갓난아기부터 휠체어에 몸을 뉘인 할머니까지 전 구성원이 거대한 원 안을 오밀조밀 가득 메웠다. 누구도 소외될 수 없도록 서로를 바라보는 원형 배치가 인상적이었다.

  예배가 시작되면 당연히 울려야 할 것 같은 피아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온 목소리가 수백 개의 악기가 되어 화음을 만들었다. 한 노래가 끝나면 누군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제 목소리로 자연스레 시작했다. 한마디 앞선 시작에 다시 또 이어지는 웅장한 합창은 몸에 닿을 때마다 진동이 되어 지르르 떨렸다.

  찬송이 울려 퍼지는 와중에 갑자기 몇몇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각각 누군가의 앞으로 걸어갔다.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한 사람 한 사람 앞에 섰다.

  어떤 사람은 바로 일어나서 자기 앞에 선 사람과 밖으로 나가고, 어떤 사람은 한참을 고민하다 마지못해 걸어 나갔다. 그리고 무슨 일인지 그들은 한참 후 노래가 끝나갈 즈음 안으로 들어왔다.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로 말이다.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시간을 가지는 거예요. 공동체 생활을 하다 보면 서로 다툼이나 갈등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 시간을 통해 당사자들이 직접 서로에게 손 내밀고 이야기를 나눠요.”


  예배 매 차례마다 브루더호프에 사시는 한국분께서 통역해주셨다.








  나는 평소보다 커다래진 눈으로 엄마를 콕콕 찔렀다. 아빠가 안경을 벗은 채 눈물을 닦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가만있으라는 눈짓을 보내곤 곧장 예배로 시선을 돌렸고, 나 또한 아빠가 혹여나 인기척을 느끼지는 않을까 모른 척 성경책에 얼굴을 파묻었다.

  예배가 끝난 후 방으로 돌아오자 아빠는 여전히 빨간 콧방울을 한 채 말을 꺼냈다.


  “내가 웬만해서는 이러지 않는데, 참…, 송경서 처음 만난 것도 대학 기독교 동아리에서였지. 내가 신앙생활을 얼마나 열심히 했다고. 군대에서도 군종병이었어. 근데 언제부터인가 회의감이 들면서 교회를 나가지 않았지. 그래도 나의 세계관을 형성해주는 가장 밑바닥에는 기독교가 있어. 기독교 신앙으로 내 삶을 돌아보고, 사회를 보기 시작한 거니까. 그런데 기독교인들, 말로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말하면서 정작 그렇게 못해. 예수 안 믿으면 지옥에 가는 거고, 서로를 얼마나 미워한다고. 근데 방금 그 사람들을 봐. 스스로 다가가서 용서를 구하잖아. 나는 예배 도중에 사람들이 일어나서 둘이 나가니까 속으로 저게 뭐지 싶었어.”


  우리 셋은 진지한 얼굴로 아빠를 바라보았다.


  “그들을 보니 성경구절이 떠올랐어. 너희가 하나님 앞에 나와 이야기하기 전에 서로 마음 상한 일이나 안 좋은 일에 대해 형제 이웃들과 먼저 화해하라. …. 이 사람들은 그걸 실천하고 있었던 거야. 정말 몇십 년 만에 죽은 활자 같았던 성서의 말씀이 현실에서 꿈틀대고 살아나 움직이는 걸 본 것 같아. 그러니까 갑자기 퍽 하고 눈물이 나왔네. 감동스러워서. 성서가 살아있구나. 되게 감격스러웠어. 코가 시큼한 게 진짜 오랜만에 울었네. 살아가면서 미운 사람, 화나게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다고. 그들에게 미안하다 말하고 껴안을 수 있는 거…. 그거 쉬운 거 같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야.”


  내 나이 스물여섯 살, 처음으로 아빠의 눈물을 보았다. 늘 밭에서 단단한 흙빛의 얼굴을 하고 있던 아빠가 오늘처럼 물렁물렁 녹아내리기는 처음이었다. 내가 이렇게 나이 먹을 동안 아빠는 어디로 눈물을 삼켜내었던 걸까.

  아빠는 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마음 한 구석에 묵혀두었던 인연들이 떠오르는지 시간여행을 떠난 사람처럼 깊은 침묵에 잠겼다.









학교를 떠난 19세 고3 동생
교회를 떠난 53세 목사 엄마
밭을 떠난 55세 농부 아빠
집을 떠났던 26세 오춘기 나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어려운 가족(이라는)여행
1년 간의 유럽가족여행기는 매주 토요일마다 찾아옵니다.

사진은 여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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