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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첸 Mar 30. 2019

#20  서울에서 살았더라면


  “루시 아들도 여기에서 같이 살아요?”


  “런던에서 살아요. 일찍이 여길 떠나고 없지. 여기서 살기 싫대요. 줄곧 도시로 나가고 싶어 했어요. 아무래도 시골에서는 하고 싶은 걸 하기가 어렵잖아요. 여기 식구 중에 트레이시가 열아홉 된 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도 나가서 살고 싶대요. 대학도 가고…”


  루시는 말동무가 생겨 기쁜지 거침없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냈다.


  “루시 아들은 다시 여기로 돌아올 생각은 없대요?”


  “없대요. 돌아오면 참 좋겠는데….”


  다 비워진 그녀의 찻잔은 쓸쓸해 보였다.

  루시의 아들도 시골을 떠나고 싶어 하던 수빈이와 같은 마음이었을지 모르겠다. 많은 곳을 이사 다녔던 나와 다르게 한 시골 동네에서 자라와서일까. 수빈이는 오래전부터 서울에 살았던 나를 몹시나 부러워하였다. 서울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밥 먹듯 하던 수빈이는 방송국 대기 줄 앞쪽을 차지해서 ‘우리 오빠들’을 마음껏 보고, 유명한 맛집들을 매일 가고 싶어 했다.


  “루시는 그러고 보니 나랑 이름이 같네요.”


  루시는 가만히 듣고만 있던 수빈이에게 말을 걸었다.


  “하하… 네.”


  수빈이는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엉거주춤 대답을 했다.


  “루시는 앞으로 뭐 하고 싶어요? 한국은 대학입시 분위기가 엄청 엄격하다고 하던데, 맞아요?”


  “아아… 한국이요. 그렇죠… 저요? 음… 기자??”


  이마저도 수빈이는 마지못해 대답하는 눈치였다.

  이후에도 할머니 루시는 아랑곳하지 않고 작은 루시에게 질문 공세를 폈으나 그 대화는 머지않아 미적지근하게 끝나버렸다.         







           

  수빈이는 방안에 들어오자마자 씩씩대며 성을 냈다.


  “그런 질문은 도대체 왜 하는 거야? 진짜 싫어. 그게 왜 궁금해? 남 일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아?”

  도리어 우리에게 화를 낼 판이었다.


  “짜증 나. 나 이제 중졸이라고. 어떡해?”


  이제 알았나 보다.


  “뭘 어떡하긴 어떡해. 중졸 겁나 멋있네.”


  나는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누가 중졸이라고 하면 기존 교육제도의 틀을 깨고 자유롭게 살아가길 선택한 용감한 사람으로 바라보곤 했었으니까.


  “장난해? 내 친구들은 곧 모의고사라고. 걔네들은 수능 때문에 엄청 공부하고 있다고.”


  “대신 너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여행을 지금 하고 있잖아.”


  엄마가 동생에게 말했다.


  “그러면 뭐해. 한국 돌아가면 입시 준비해야 하잖아. 나는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안 돼. 될 수가 없어. 이미 늦었어. 이게 다 내가 시골에 살아가지고 학원을 못 다녀서 그래. 지금 반에서 1~2등 하는 애들하고 나는 애초에 시작부터가 달라. 걔네들은 어렸을 때부터 시내에서 온갖 과에 다 받아서 기초가 튼튼할 수밖에 없다고.”


  수빈이의 말에는 울퉁불퉁한 감정이 마디마다 서려 있었다.


  “겨우 졸라서 난생처음 하게 된 과외도 여행가야 한다고 그만두고…. 다른 엄마들은 학원 못 보내고 과외 못 시켜서 안달인데 엄마는 완전 방임이야!!”


  계속되는 짜증을 듣고 있자니 내 얼굴은 점점 굳어갔다.


  “이놈아~ 엄마처럼 훌륭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다 뜻이 있고 길이 있는 거야.”


  아빠가 낙낙한 목소리로 달래 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됐어. 뭘 해주지도 못할 거면서 그렇게 말하지 마. 집에 돈도 없으니까 이것저것 해달라고도 못해. 무슨, 아빠든 엄마든 맨날 다 길이 있대. 완전 추상적이야. 하나도 도움이 안 돼.”


  나는 안에서 불쑥 튀어나오려는 화를 참느라 애꿎은 입술을 깨물었다. 동시에 쿵쾅대는 심장은 하고 싶은 말이 혀끝까지 차올라왔음을 알려주었다.

  ‘대학에 꼭 가야 해? 대학에 왜 가고 싶은데? 넌 뭘 하고 싶은데? 괜히 부모 탓하지 마. 그전에 네가 뭘 정말 하고 싶은지 그것부터 생각해. 그게 더 중요해. 추상적인 거? 어쩌면 그게 더 현실적인 거야!’라고 차마 말하지는 못했다.

  손에 들고 있던 컵에 물은 다 마시고 없는데 그 자리에 생각이 들어찼는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19세 여동생은 학교를 자퇴하고,
53세 엄마는 교회를 그만두고,
55세 아빠는 밭을 맡기고,
26세 나는 가족과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어려운 가족(이라는)여행
성질부리는 큰 딸이 302일 간 기록합니다.

숨겨둔 장면은 여기에서
https://www.instagram.com/travel_of_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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