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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첸 Apr 17. 2019

#25  낮 동안 자신과 화해한 사람만이 깊은 잠에..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어려운 가족(이라는)여행


 하루에 두 번 있는 게더링 시간. 12지파 사람들은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 오랜만에 만난 것 같은 반가운 얼굴들을 하면서 말이다. 상대와 악수를 한 채 나의 오른쪽 어깨를 상대의 오른쪽 어깨에 마주 대는 독특한 인사법으로 주고받았다.

  얼추 인사가 끝나자 샤벳이 마흔여 명의 식구들에게 우리를 소개했다. 그 순간 환영의 박수갈채가 사랑이 담긴 마흔 가지 표정으로 우리 넷을 향해 쏟아졌다. 부담스러워 이제 그만해도 된다는 예의 차린 미소를 보내었지만 그치지 않았다. 답인사를 해야 끝나나 싶어 우리 넷은 파도타기로 인사를 했다. 하지만 되레 박수소리만 더 키웠다. 이런 낯선 스포트라이트에 어쩔 줄 모르며 나는 바지 밑단만 내려다보았다.

  잠시 후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어보았다. 우리를 향해 서 있는 그들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여전히 박수를 보내는 그들의 눈빛에 따뜻함이 느껴졌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왜 여기에 왔는지 내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가 떠나온 지난 몇 달을 아무 말 없이 토닥여주는 것 같았다. 네가 여기에 있어 줘서 기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처음 받아보는 긴 박수 세례에 뜻 모를 눈물이 벅차올랐고, 박수 소리는 끝나질 않았다.


  ‘고맙습니다.’


  잔뜩 긴장으로 솟아있던 어깨가 스르르 무너지며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박수 소리는 때가 되어 흥겨운 노래로 바뀌었다. 누군가 첫마디를 시작하자 모두가 따라불렀다. 탬버린을 흔드는 꼬마 아이, 기타를 치는 할아버지, 젬베를 두드리는 젊은 친구의 반주가 한데 어우러졌다. 다들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우린 부끄럼타는 소년 소녀처럼 바깥에 서서 지켜만 보았다.

  어느새 해가 지고, 사람들은 찬송을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6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일어나 말했다.


  “저는 오늘 엄마 말을 듣지 않았어요. 음… 음… 그래서 엄마를 속상하게 했어요. 어… 앞으로는 말을 잘 들을 거예요.”


  양손을 반듯하게 내려놓은 그 아이는 말도 반듯하게 하고 싶었는지 띄엄띄엄 열심히도 말했다.

  다음에는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청년이 일어나 성경책을 피며 오늘 하루 품고 있던 구절을 나누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이 계속 떠올랐어요. 매 순간 혼자가 아닐 텐데 왜 자꾸 잊어버리는지… 다시 되새깁니다.”


  어깨를 흔들며 노래하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모두들 눈 깜빡일 새 없이 서로의 신앙고백에 귀 기울였다. 9개월 된 아기도 엄마 옆구리에 걸터앉아 똥그란 눈을 깜빡이며 경청했다. 눈이 파란 사람, 피부가 검은 사람, 팔뚝만 한 갓난아기를 안은 할아버지.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이들은 모두 한 가족이었다.

  게더링의 피날레는 모두가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하는 기도로 마무리되었다.


  “낮에 찻집에서 만났던 아주머니에게 사랑이 깃들기를 기도합니다.”


  “프랑스로 떠난 야돈이 지금쯤 무사히 잘 도착했길 기도합니다.”


  “오늘도 하루를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루가 주어지는 것만큼 당연하게 여기기 쉬운 일이 또 어디 있을까. 매일을 이렇게 기도하며 살면 어떨까. 문득 낮 동안 자신과 화해한 사람만이 깊은 잠에 들 수 있다는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19세 여동생은 학교를 자퇴하고,
53세 엄마는 교회를 그만두고,
55세 아빠는 밭을 맡기고,
26세 나는 가족과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어려운 가족(이라는)여행
성질부리는 큰 딸이 302일 간 기록합니다.

숨겨둔 장면은 여기에서
https://www.instagram.com/travel_of_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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