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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첸 Apr 14. 2019

#24  가족을 대하는 자세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어려운 가족(이라는)여행


  우리는 비 맞고 일했던 공동체에서 예정보다 4일 서둘러 나왔다. 떠나기 전, 아빠는 공동체 멤버 중 한 명에게 비 오던 그 날처럼 궂은일을 함께하지 않고 모른 척 떠넘기는 건 공동체가 아니라는 충고를 전했다고 한다.

  평소 같았으면 출발하기 전에 대략 동선과 어디서 몇 시 버스를 갈아타는지 브리핑을 했지만, 이번에는 내키지 않아 생략했다.

  다음 목적지인 12지파The Twelve Tribes 공동체로 향하던 우리는 우연히 마주친 동양인 관광객들처럼 쌔 하니 떨어져 움직였다. 난 엄마 아빠의 그림자만 봐도 인상이 찌푸려졌기에 타야 할 버스에 말없이 먼저 들어가 앉았다. 그 자체로 이 버스를 타라는 충분한 신호였다.          



     





  우리를 마중 나온 한 남성은 단발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채 인디언이 썼을 법한 얇은 끈을 이마에 두르고 있었다. 12지파 공동체의 커뮤니티 홀에 들어서기 전까지 나는 그만의 패션인 줄 알았다.

  잠시 기다리라는 말에 우린 의자에 앉았다. 점심식사를 위해 테이블에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이 우리 앞을 지나다녔고, 나는 힐끔힐끔 그들을 쳐다보았다. 한 번으로는 부족했다. 남자들은 아까 우리를 마중 나온 남성처럼 똑같은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수수한 집시풍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대동소이한 그들의 옷차림은 21세기 이전의 어느 다른 시대에 와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정말 잘 왔어요! 저는 샤벳이라고 해요. 짐이 무겁겠어요! 먼저 방부터 안내해드릴게요.”


  성경에서 툭 튀어나온 인물처럼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였다.

  샤벳이 안내해준 첫 번째 방은 부모님이 사용하게 될 방이었다. 문을 열자 여린 하늘빛 꽃무늬 이불이 덮인 침대와 아담한 나무 테이블이 보였다. 엄마는 농장과 산을 배경으로 한 창문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특히나 창틀에 놓인 환영 메시지와 들꽃 송이는 작은 감동을 주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여기에 머무는 동안 저희 가족이 대표로 여러분들을 모시게 되었어요. 언제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저를 찾아주세요.”


  샤벳의 ‘모신다’라는 표현이 생소하게 다가왔다.

  12지파는 초기 기독교 문화 그대로 옷차림, 안식일 등 생활의 모든 것을 성경 말씀대로 실천하는 신앙공동체이였다. 이곳 사람들은 손님을 맞는 역할을 자신의 수행이자 기회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극진한 귀빈 대접이 낯설어 내가 혼자 알아서 하려고 하면 그들은 오히려 서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허울이 아니었다.               








  수빈이와 나는 다락 이층침대로 안내를 받았다. 할머니 두 분과 함께 쓰는 방이라 비좁은 데다가 한낮인데도 볕이 잘 들지 않은 방이라 그리 달갑지 않았다.


  “나는 엄마 아빠 방에서 지낼래.”


  침대에 잠시 앉은 수빈이는 실망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됐다. 그냥 지내라~”


  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려는 수빈이의 욕구를 원천봉쇄하겠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수빈이도 내가 만만치 않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언니, 나 잠깐 엄마 아빠 방에 갔다 올게.”


  수빈이가 다른 묘안을 생각한 모양이었다. 눈치 빠른 나는 두세 걸음 느리게 수빈이를 뒤쫓아갔다.


  “엄마, 나 저 방 싫어. 엄마가 저 방 쓰면 안 돼? 아니 왜 엄마 아빠만 좋은 방 써? 아, 짜증 나.”


  역시나 수빈이는 부모님 방문을 열자마자 엄마에게 하소연했다. 나는 슬그머니 문 가까이에 있는 소파에 앉아 둘의 대화를 엿들었다.


  “왜, 네 방이 별로니?”


  엄마의 말에는 뭐라도 해주겠다는 의도가 다분했다.


  “응. 어떤 할머니들이랑 같이 써야 돼.”


  “한 번 물어볼까? 다른 방은 없는지?”


  예상했던 엄마의 말에 나의 온 신경이 곤두섰다.


  “야!! 네가 필요한 건 네가 직접 말해! 너 또 엄마한테 부탁하기만 해 봐. 어??”


  나는 화가 솟구쳤다.


  엄마는 내 말에 놀랐고, 수빈이는 태블릿을 두드리기만 하고 대꾸가 없었다.


  “진짜 죄다 맘에 안 들어.”


  그렇게 말 한마디를 남기고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성난 마음을 다독이다 낮잠에 들었던 나는 화들짝 잠에서 깨어났다. 침대 발치를 비추고 있는 한 줄기 햇살을 보고서야 마음을 놓았다.


  ‘다행이다. 엄청 잔줄 알았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려 이불을 껴안은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끼익 끼익.

  철로 된 오래된 이층침대가 흔들거리며 조용한 방안을 시끄럽게 했다. 왠지 이상했다.


  ‘나는 가만히 누워있는데 왜 이층침대가 흔들리지?’


  나는 조심스레 침대 밖으로 나와 위를 올려다보았다. 웬걸. 수빈이가 뒹굴거리며 숙면 중이었다.


  ‘참나. 싫다면서.’


  침대 주변에는 수빈이 짐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바구니마다 분류된 옷과 가방, 책과 노트를 보니 제대로 살림을 차려놓았다. 이 녀석은 투덜거리기만 하지 결국 이렇게 불편함을 받아들였다.

  언니라는 게 동생의 투덜거림에 꼬여 들어 똑같이 화를 냈으니. 잠이 달아났다.

  내가 처음으로 다른 사람과 한방에서 살게 된 옛 기억이 떠올랐다. 기숙사 고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입학하고 며칠 후 모두가 자는 밤에 눈물이 귓바퀴를 적시고, 코가 막혀 입으로 뻐끔뻐끔 숨을 쉬며 남몰래 울었던 적이 있었다. 우리 집 안락했던 내 방이 몹시도 보고 싶던 밤이었다.

  평생 자기 방을 쓰다 남이랑 같이 생활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이 녀석, 나 울던 그때처럼 잠든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다락방 지붕에 난 하늘창을 비스듬히 열었다. 산 위를 미끄러져 내려온 선선한 바람이 그 사이로 들어와 방 안의 공기를 환기했다.


  “야, 박수빈. 일어나. 저녁 먹을 시간이야.”


  밥이라면 벌떡 일어나는 놈이었다.


  “너 싫다면서 짐 정리 다 해놨더라?”


  나는 잘했다는 말을 거꾸로 했다.


  “거기 바구니 하나 남아있는 거 언니 쓰라고 남겨둔 거야. 언니 써.”


  눈 비비적거리며 일어나서 하는 수빈이의 말이 참, 누구 것보다 훨씬 나았다.









19세 여동생은 학교를 자퇴하고,
53세 엄마는 교회를 그만두고,
55세 아빠는 밭을 맡기고,
26세 나는 가족과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어려운 가족(이라는)여행
성질부리는 큰 딸이 302일 간 기록합니다.

숨겨둔 장면은 여기에서
https://www.instagram.com/travel_of_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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