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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첸 Apr 10. 2019

#23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어려운 가족(이라는)여행


  나는 한참 후에야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켜 엄마 방으로 왔다. 엄마는 침대에 걸터앉아 정적 속에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야기 좀 해 봐. 왜 그렇게 짜증이니?”


  올 것이 왔다. 그동안 나를 두고 참고 넘어갔던 것들이 자잘하게 쌓여 기준치를 넘어선 것이다.


  “몰라. 알면 내가 이럴까.”


  나의 싸늘한 온도가 급속도로 주변을 휘감았다.


  “뭐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나는 거야?”


  “……”


  “네가 뭐 때문에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아까처럼 그렇게 무시하고 짜증 내는 건 아니야.”


  입술을 질끈 깨문 엄마는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았다.


  “짜증이 났는데 어떡하라고.”


  나는 조금도 굽히는 기색 없이 빳빳이 고개를 세웠다.


  “너도 이게 한두 번이 아닌 거 알지. 언제부턴가 너는 뭐만 말해도 화를 내. 이렇게 더 가면 정말 안 될 것 같아.”


  “……”


  “교통편 알아보고, 목적지 찾아가고, 사람들 만나면 소통하고… 그런 거 다 너 혼자 하다 보니 부담이 커져서 그런 거니?”


  “……”


  엄마는 내 짜증을 근래에 시작된 단순한 것이라 여기고 싶은 걸까.


  “가족들이랑 있는 게 싫어.”


  한참을 침묵하던 나는 엄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말한 김에 더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행 자체가 싫어. 가족들이 제일 싫어. 엄마는 사람들한테 용건이 있을 때만 말 걸고 다른 땐 대화도 안 하고. 그러려면 뭐 하러 여행 온 거지? 박수빈도 억지로 일하고, 아빠는 자기 혼자 다 책임지려고 하고. 다 짜증 나고 다 싫어.”


  이런 나도 싫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내가 그동안 말을 안 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좀 해야겠다.”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던 아빠가 말을 꺼냈다.


  “내가 아마 너한테는 여행 와서 한 마디도 뭐라고 한 적이 없을 거야. 그렇지? 나는 네가 다 큰 딸인 줄 알았어. 여행 오기 전에는 얘가 이제 어른이 다 됐구나 하면서 자랑스럽게 여겼어. 근데 아니야…. 내가 지금도 생각하면 말할 수 없을 만큼 속상한 게 많아. 너는 상처 받을 말들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해. 내가 그것 때문에 일 끝나면 힘든데 방에서 쉬지도 못하고 매일 얼마나 멀리 걸어갔다 오는지 몰라….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혼자 감당할 줄도 알아야 해.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고 막 대하고 그러는 거 아냐. 지켜야 할 예의란 게 있어. 이렇게 부모한테 짜증 내고 화풀이하는 건 그냥 징징대는 거야.”


  아빠의 묵혀두었던 이야기는 나를 깊숙이 찔렀다.

  엄마도 저번에 그런 말을 했었다. 여행 오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너무 다르다고. 어려서 때 한번 안 쓰던 순둥이가 커서도 매사 혼자서 잘 해내고, 무슨 일이든 가족들을 먼저 배려하고 믿음직스러웠다고.

  난 여태껏 부모님이 부탁하지 않아도 당연히 집안일과 밭일을 돕던 어른스러운 큰딸이었다. 그랬던 내가 이렇게도 차갑게 돌변할 줄은 나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어. 알아. 징징대는 거야. 근데 내가 이런 적 있어?”


  내 말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제발 울지 않기를 바랐지만 일치감치 눈물이 고인 내 눈은 말을 듣지 않았다.

  이 여행은 자꾸만 내 안에 어린아이를 흔들어 깨웠다. 일곱 살짜리 꼬마아이가 아빠와 같이 걷고 싶어 종종걸음으로 걸었던 옛 기억들이 떠올랐다. 커다란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아빠는 그 아이의 작은 걸음을 고려하지 않는 듯, 바쁜 사람처럼 혼자 걸어가곤 했었다. 아빠에게 같이 걸어가자는 부탁도 하지 않고, 그저 아빠 걸음에 자신을 맞추려던 아이가 보였다.


  “아빤 할 말 없어. 뭘 안다고 그래. 엄마도 다 똑같아. 뭘 알지도 못하면서 징징거린대.”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던 외로운 아이가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며, 나는 왜 늘 혼자냐며 서럽게 우는 것 같았다.

  가족들 그 누구도 나의 어둡고 움츠렸던 시간들을 함께해주지 않았었다. 가장 필요로 했을 때 그들은 내 곁에 없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 모른다. 가까이에서 추측할 뿐 구태여 묻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오늘의 대화도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난 이제 할 말 없어. 갈게.”


  지끈거리는 왼쪽 머리를 누르며 자리를 떠났다. 결코 오늘 하루에 끝나지 않을 대화란 걸 알았다.          






 


19세 여동생은 학교를 자퇴하고,
53세 엄마는 교회를 그만두고,
55세 아빠는 밭을 맡기고,
26세 나는 가족과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어려운 가족(이라는)여행
성질부리는 큰 딸이 302일 간 기록합니다.

숨겨둔 장면은 여기에서
https://www.instagram.com/travel_of_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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