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보다 더 언니 같았던 내 막내 이모
나에게는 '이모'만 엄마 아래 줄줄이 넷이나 있다.
특히 열네 살 차이의 막내 이모는 어릴 적 주말마다 같이 배 깔고 그림도 그리고 보드게임도 만들던 내 언니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털털했던 이모가 이제 엄마가 되어버린 사실은 아직도 좀 실감이 나질 않지만, 아무튼 요즘도 우리는 가끔 만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 그래 만나. 너 나이에 2년은 더 만나봐도 되겠네. 다 경험이지 뭐. 근데 참고로 '아리'였으면 난 반대했다.
- 뭐야. 난 조카라 괜찮다 이건가.
<한때 만나던 남자친구 이야기를 듣더니>
- 아리가 그렇게 이뻐?
- 비밀인데. 사실 이모부보다 좋아.
<타코 전문점 앞에서 포장을 기다리며>
그리고 저번 주 토요일은, 이모가 나를 집으로 초대한 날이었다. 그 날 아침에는 가야지 하다가 한 번도 가지 못했던 집 앞 유명 빵집에서 통식빵 두 봉지를 샀다. 그리고 봉지를 들고 비바람을 헤쳐 찾아들어간 이모의 새 동네는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함께 착 가라앉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 왜 이렇게 뭘 계속 먹여? 외갓집 온 줄 알았네... 할머니야?
- 그러게. 계속 먹이게 돼. 아리 때문에 습관이 돼서 그런가.
나는 아리와 쉴틈 없이 놀아주다 이모가 차려주는 볶음밥과 식빵을 잔뜩 먹고 다시 아리와 함께 호들갑을 떨면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한참 후 아리는 지쳐 잠들었고, 곧이어 나도 덩달아 잠이 쏟아졌다. 이모부가 돌아오시기 전까지만 잘까. 하고 침침한 안방에 들어가 아리 옆에 웅크리고 눕는데, 뒤따라 방문을 열고 들어온 이모가 소근대면서 내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애가 둘이네.
이모가 조심스레 방문을 닫고 나가고 나서 나는 몸을 돌려 자고 있는 아리를 바라보았다.
문득 어릴 적 이모가 나를 한 번쯤은 이렇게 바라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시간은 많이 흘렀는데. 다 자란 게 당연한 나이의 나는, 이유 없이 조금 쓸쓸하다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