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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리어스 Jun 17. 2021

딱히 아침형 인간이 되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얕고 짧은 잠을 가진 사람의 괴로움과 이로움

어제는 커피를 세 잔 넘게 마신 데다 저녁을 충분히 먹지 못하고 잔 탓인지 열두 시쯤 누워 새벽 세 시경 선잠에서 깨어났다. 아마도 나는 다시 잠들지 못하겠군. 하는 생각에 몇 시간 누워있다가 이대로는 무리라고 생각해 처음으로 운동을 취소하고 오전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이유를 알 수 없이 꿀잠에 빠져들었던 초딩 사촌 동생의 침대, 2020



나는 종종, 아니 아마도 일주일에 많으면 두세 번쯤은 이렇게 새벽에 눈이 떠지곤 한다. 다시 잠에 들 때도 있지만 보통은 그대로 일어나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슬슬 하다가 아침을 먹고 운동을 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주말이라고 열 시 넘어서까지 달콤한 잠을 잔 적도 그다지 많지 않고. 원하든 원치 않든, 빨간 날이건 휴가이건 일고여덟 시쯤 눈이 떠지는 일상이 익숙하다.


그런데 어느새인가부터  아침형 인간, 미라클 모닝, 새벽 4시에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슈퍼스타(개인적으로 드웨인 존슨의 팬이다) 등... 사회적으로 자연스레 '오전의 부지런함'에서 오는 미덕을 많이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속에서 우리의 일정한 루틴을 유지하면서도, 부가적인 자기 계발이나 자아실현을 위해 그리고 나를 알아가기 위한 시간을 확보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이겠지.


나 역시 하루의 시작이 아주 일렀던 지난 수년간, 돌이켜보면 많은 것들을 사부작사부작 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임에 틀림없다. 물론 내게는 '미라클' 같은 멋진 말은 붙일 수 없을 정도로 반 강제적이기는 했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일상은 부지런한 삶의 태도를 갖추게 해 주는데 보탬이 되었고 잘 활용한 날엔 고요한 자유로움 속에서 무한히 창의적인 일들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기도 하고, 짧은 일기나 글을 쓰기도 하며, 고등학생 때처럼 갖고 싶은 것들의 리스트를 작성하거나, 미루었던 책 읽기 또는 어학 공부를 하기도 했다. 아침은 분명 다양한 것들을 시도할만한 고급스럽고 멋진 시간이고 지금의 나처럼 지금 오전 일곱 시 삼십팔 분, 이렇게 조악하나마 글 한 편을 호로록 써내려 갈 수도 있는 것이다.



격리의 시간, 2020


하지만 내게 아침을 기다린다는 것은 동시에 두려움이기도 하다. '나 오늘은 잠을 잘 잘 수 있을까?' '오늘은 커피를 두 잔 마셔서 잠을 못 자는 건 아닐까' '배가 고프지 않은데 지금 뭘 좀 먹어야 새벽에 깨지 않을 수 있을까' 등등의 고민들. 수면장애가 심했던 사회초년생 때에는 진료도 받고 치료도 잠시 했었지만 조그만 고민이나 일 생각, 아이디어의 끄트머리, 심지어 사소한 추억거리만 떠올라도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내게는 개선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맑은 정신으로 선잠을 자다가 핏기도, 붓기도 없는 얼굴로 일어난다던지,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 많은 생각 속에 빠져 있다가 푸르스름 밝아오는 커튼 아래서 결국 1초도 못 울린 알람을 단숨에 꺼버린다던지 하는 일이 흔히 일어나곤 했다.


다행히 최근에는 이전보다 점차 나아져  자고 났을  찾아오는 일들에 감사함을 느끼기도 한다. 예를 들어 팔에 이불에 눌린 ' 자국' 남아 있다던지, 아니면   자고 싶다는 나른한 생각이 든다던지, 얼굴이 부은 채로 머리가 제멋대로 헝클어져 있을 .  깊게  날은 아침에 허기도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 듯하다. 이런 일들은 자주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겐 흔한 일상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게는 많이 반가운 일이다.


아침의 포근한 단잠이
누군가에겐 나처럼 간절히 원하는 삶의 일부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까 나로서는 달콤한 잠에 빠져들어 아침에 완전히 충전된 채로 하루를 맞이하는 것 역시 잠을 줄여 일찍 일어나는 것만큼 생산적이고, 또 소중한 삶의 일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깊게 잠들고 좀처럼 깨지 않는 아침의 포근한 단잠이란 누군가에겐 나처럼 간절히 원하는 삶의 일부이기도 할 것이다.


분명 아침형이 아닌 저녁형 인간이 있듯 세상엔 나처럼 잠 자체가 적은 잠없음형, 아니면 그냥 잠을 많이 자야 행복한 잠꾸러기형도 있는 것 아닐까? 살다 보면 또 이런저런 이유로 바뀌어갈 수도 있고 어쩌면 당신과 나는 서로를 아마도 당분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오늘 하루아침의 시작이 늦어서 부지런하지 못했다 야단치지 말고, 새로운 하루를 위해 잘 쉬어 주어서 고맙다고 말해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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