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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Y Feb 04. 2024

몰래 먹은 야식이 불러온 결과

남편이 집으로 들어온지 3일차.

가장 큰 변화는 '야식'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자발적이지 않기에 항변하는 배꼽시계의 울림은 밤 12시에도 '배고파'라며 쉬이 잠들지 못하는 아이들의 찡얼 거림으로 이어졌다.


올해 13살이 된 큰 딸은 유독 식성이 좋다. 그러나 2시간마다 배가 고프다며 식욕을 참지 못한다. 나와 똑닮은 체형을 보면 한숨이 나오지만 나도, 딸도 야식의 유혹을 이기기 어려워 매번 다이어트에 실패한다. 큰 딸에게 내 잔소리는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져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았는데 남편이 야식을 금지시키면서 배가 고파도 참기는 참았다. 문제는 고작 이틀이었다는 것이다.


이른 저녁을 먹고 남편은 방에서 TV를 보고, 나는 곁에서 책을 읽다가 거실에 나와보니 큰 딸이 고추참치에 밥을 비벼 먹으려고 하고 있었다. 잘 참고 있던 셋째 딸과 넷째 아들이 보다가 내가 나타나니 '배가 고파. 뭐가 먹고 싶어.'라고 말한다. 방에 있는 아빠의 눈치를 제법 보면서도 본능을 억지로 이기기엔 너무 어린 아이들이다.


마침 무슨 일인가 싶어 나온 남편의 표정이 굳어진다.

'오늘만이다. 배고프면 먹어. 먹고 싶은 것.'이라고 하니 눈치 보며 씨리얼과 우유를 찾는 셋째와 넷째.

그리고 방에서 컴퓨터 게임하던 둘째는 아빠의 부름에 나와 늦은 저녁을 먹는다.


평소 밥 먹을 때에도 시끄럽게 TV를 켜두었던 아이들인데 아빠가

'내일부터 9시 30분 이후에만 먹어봐. 그리고 밥 먹을 때는 집중해.'라며 전원을 끄고 가자 정적이 흐른다.

식기에 부딪히는 숟가락의 금속음만이 들릴 뿐이다.


몰래 먹은 야식이 불러온 결과가 이렇게 눈칫밥 먹을 일인가.

아이들의 건강을 생각하여 당연히 시행했어야 하는 일인데 내심 반가우면서도 이런 방식으로밖에 아이들의 행동을 교정해야 하는 건가. 남편은 주말에만 오며 아이들의 성장을 제대로 지켜보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아버지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실 경험한 바가 없는데 무섭게만 하는 게 정상일까. 이런 저런 원망과 후회도 해보지만 한켠으로는 아빠가 호랑이짓을 한다면 나는 여우짓으로, 토끼짓으로 아이들을 품어내야겠다며 앞으로 내 포지션에 대한 계획을 세워본다.


살얼음같은 일상이 익숙해지기까지. 많이 부딪히는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겠구나.

에효.

한숨은 나오지만 잘 이겨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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